태국 가수 콘서트장 불법체류자 158명 체포 뉴스를 보고
태국 내한 가수 콘서트장에서 158명이 불법체류 혐의로 붙잡혔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인스타 등 SNS에도 관련 영상이 확산되었다. 인스타의 한 게시물에 대한 댓글을 보다보면 대한민국 전국민은 혹시 판검사 출신인가 싶기도.
'어쩔 수 없는 이유'를 대며 불법주차와 짙은 썬팅 등이 당연시 되어온 한국. 약자(마이너리티) 앞에서는 갑자기 법률을 신봉하시는 한국인 메이저리티들(순수 한국인)의 반응을 보며... 참담함 속에서 2015년 시점에서 쓰인 한 원고를 마주쳤다.
엄마가 미안해. 조금만 기다려
4살 짜리 딸이 하나 있다. 손이 조약돌만했다. 볼은 불그스름한 게 통통했다. 곤히 자는 모습이 귀여웠다. 어느새 8살이 되어 있을 내 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던 아이. “엄마”라고 부르던 아이. 반 평생을 못 본 엄마를 아이는 기억할까. 소 페이한(35, 가명) 씨는 오늘도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음식을 나른다. “엄마가 미안해. 조금만 기다려.” 엄마는 애가 탄다.
소씨는 2011년 한국에 온 중국인 이주노동자다. 소씨는 남편과 이혼한 뒤 홀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 수업료도 필요했다. 누가 한국에서 일하면 임금을 괜찮게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몇 년만 일하면 아이가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가고 학교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씨는 한국으로 갈 수 있게 도와준다는 브로커를 만났다. 브로커는 수수료를 요구했다. 한화로 1000만원 정도 되는 돈이다. 있는 대로 끌어모았다. 친척에게 빌리기도 했다. 그만큼 한국에서 더 벌어야 했다. 딸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1000만원 만큼 늘어났다.
소씨는 E-7(이세븐) 비자로 한국에 입국했다. E-7 비자는 전문외국인력을 대상으로 하는 비자 중 하나다. 소씨는 요리사나 주방장으로서 한국에 왔다. 하지만 소씨는 3년 동안 울산의 중화요리, 국밥 등 음식점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서빙을 했다. E-7 비자로 한국에 들어오는 ‘중국 요리사’ 중 상당 수가 이렇다. 어떻게든 한국에 들어와야 했다.
소씨는 3년 동안 서빙을 했지만 생각만큼 돈을 모으지 못했다. 소씨는 하루 12시간 일하고 한 달에 두 번만 쉬었다. E-7 비자로 들어온 노동자는 임금이 월 150만원 이상이어야 하지만 사장은 약속한 만큼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소씨는 원래 받아야 하는 임금을 요구하기 어려웠다. 소씨는 사장에게 ‘목이 메여’ 있다. 사장이 아무리 임금을 적게 주어도 소씨는 그만두지 못한다. 소씨는 이 음식점에서 일한다는 조건으로 한국에 있기 때문이다. 소씨에게 직장을 선택할 자유는 없다. 일하던 곳에서 그만두면 소씨는 중국으로 추방된다. 중국에 돌아가려고 마음 먹지 않는 이상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
중화요리 음식점을 운영하는 중국 교포 김선광 씨는 “한국인 요리사에게 월 300만원을 줄 때 중국인 요리사를 고용하면 월 120만원만 줘도 된다. 한국인 한 명 고용할 때 중국인을 고용하면 두 명을 고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김선광 씨는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에게 퇴직금을 달라는 요구도 하기 어렵다. 그만두면 불법체류자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주노동자는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 한국에 오래 있을 수 밖에 없다. 소씨는 결국 불법체류자가 됐다. 임금이 적은 곳에서 언제까지 있을 수는 없었다. 하루 빨리 딸에게 돌아가고 싶었다. 김씨는 “이주노동자들은 빨리 돈을 벌고 돌아가는 게 간절하다. 이주노동자는 (한국에서) 4~5년 잠깐 벌어서 얼른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다. 자식하고 떨어져 있기 싫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이 처우가 좋지 않은 사업장을 나와 새로운 사업장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이 하루 빨리 고국에 돌아가려고 불법체류자가 된다는 말이다. 불법체류자인 소씨는 한 번 출국하면 한국에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소씨는 딸을 볼 수가 없다.
불법체류자 신분인 이주노동자들은 유흥업에 종사하는 경우도 많다. 유흥업에 종사하면 그나마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김씨는 “중국도 교육비가 만만치 않다. 자녀의 교육비를 미리 벌려고 한국에 더 남게 된다”고 사정을 전했다. 소씨는 요즘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사업주는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게 드러나면 벌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불법체류자를 꺼려한다. 소씨는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중이다. 불법체류자 신분이 드러나서 추방 될까봐 불안하다. 불법체류자인 소씨는 건강보험공단의 지원을 받지 못해 병원에 가기도 부담스럽다.
이주노동자는 사업장을 이동할 자유가 없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옮기는 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옮기려면 사업주의 동의가 필요하다. 법무부 출입국의 ‘사증발급 안내 매뉴얼’에 따르면 전문외국인력은 임금체불, 사업장의 휴업이나 폐업이 발생했을 경우, 또는 사업주의 이적동의서가 있을 때 사업장을 바꿀 수 있다. 비전문외국인력을 대상으로 하는 고용허가제법 제25조는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로 근로계약기간 중 근로계약을 해지하려고 하거나 근로계약이 만료된 후 갱신을 거절하려는 경우”에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다고 명시한다. 조돈희 울산이주민센터장은 “이주노동자는 사업장을 옮기기 위해 사업주의 ‘이적동의서’가 필요하다. 현대판 노예제”라고 꼬집었다. 조돈희 센터장은 “노동자는 누구나 사업장을 선택할 자유가 있는데 이주노동자만 사업장을 바꿀 자유가 없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가”라고 토로했다.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은 2005년 4월 창립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그해 6월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반려했다. 이주노동자 노조는 신고 반려를 취소하라는 소송을 했다가 2006년 패소했다. 2007년 2월 고등법원이 이주노동자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가진다며 이주노동자 노조의 손을 들었다. 대법원은 그 후 8년 째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10년 ‘다문화사회 정착과 이민정책’ 보고서를 발표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보고서에서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라 노동인력이 줄어들고 있다. 이 문제를 해소하고 경제성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생산성도 향상시켜야 하지만 외국인 노동력 유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이주노동자들. 조돈희 센터장은 “이주노동자 저임금 문제가 심각하다. 대자본이 노동력을 저임금으로 쓰려다보니 이주노동자가 희생된다. 이런 구조가 문제”라고 비판했다.
조 센터장은 “불법체류자를 양성화 해야 하고 강제추방이 없어져야 한다. 다만 중국인 불법체류자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중국인 이주노동자의 경우 관광비자(B-2)로 한국에 왔다가 눌러 앉는 경우가 많다. 한국 정부의 정책이 빚어낸 문제”라고 말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발표한 ‘2013년도 출입국, 외국인정책 통계연보’에 따르면 불법체류자는 18만 3106명이다. 중국인은 5만 129명으로 가장 많다. 한국계 중국인은 1만 9114명이다. 베트남과 타이, 필리핀인은 각각 2만 7240명과 2만 665명, 1만 2029명이다. 출입국 본부는 “고용허가제(E-9)가 만기된 노동자들이 불법체류하면서 2012년 초부터 불법체류자 수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고용정보원은 통계청이 발표한 ‘체류자격별 외국인 취업자 현황’에 따르면 2014년 외국인 취업자는 85만 2122명(2013년에는 76만여 명)이라고 발표했다. 전문인력비자인 E-1~E-7으로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4만 7478명이다. 이 중에서 E-7 비자로 한국에 들어 온 외국인 노동자는 1만 8213명이다. 그 중 중국인은 9650명으로 반을 넘긴다(출입국 통계 연보, 2013). 비전문취업 비자인 E-9으로 취업한 외국인은 24만 6658명이다. 외국인 비자에는 이외에 유학생 비자(D-2, D-4-1), 재외동포 비자(F-4), 결혼이민자(F-2-1, F-6) 비자 등이 있다. 고용정보원은 통계청이 발표한 ‘외국인 고용조사’에 따르면, 2014년 5월 기준 외국인 취업자는 9만2천명 증가한 85만 2천명이라고 발표했다. 2014년 5월 기준 전체 취업자 대비 외국인 취업자의 규모는 3.3%다.
참담함 속에서 관련 기사 검색하다보니 2022년에 태국인 불법 체류 문제와 관련하여 '차분히' 쓰인 취재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이들을 편견을 갖거나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여전하지만 정작 이들을 불법 고용하고 소비하는 모든 사람은 한국인이다." <[특파원 리포트] 불법체류 14만 명…태국인들은 어떻게 한국에 들어오나?> KBS, 2022.8.12.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318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