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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니 Sep 27. 2023

자아와 가상화 기술

반도체 잡식 (4)

 모든 문제는 내 안에 있다. 때문에 어떤 문제로 전전긍긍하고 있다면, 먼저 나를 살펴야 한다. 나는 누구인지. 왜 나는 이것을 문제 삼는지. 왜 나는 이 문제로 고통스러운지. 나에 대한 점검, 나에 대한 올바른 인지는 모든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내가 굳이 내 모습을 인지해야 하는 이유는, 자동으로 인식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실제와 많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 설정된 나의 모습에는 오류가 많다. 이 같은 오류는 여러 욕구에 의한 결과이다. 스스로의 얼굴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자신의 실제 얼굴보다 보정된 모습에 더 끌리더라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사람들은 실제와 가까운 사진과 아름답게 보정된 사진을 두고, 보정된 사진을 더 선호했다. 심지어, 보정된 사진이 자신의 실제 모습과 가깝다는 착각도 보였다.


 모든 문제가 '나'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이해하면,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 문제가 불러일으키는 여러 가지 나쁜 감정들에 휘말리지 않고, 일련의 논리적 해결 과정으로 문제를 대처하게 되는 그 시작점이다. 이 문제가 나의 어떤 부분에서 시작된 것인지를 알고 나면, 앞으로 그 문제를 어떻게 취급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다. 나와 함께 갈 문제인지, 혹은 배제할 문제인지 판단할 수 있다. 가기로 판단이 섰다면, 이제 그 문제에 얼마큼의 중요도를 부여할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으며, 누구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는 게 좋을지와 같은 것들을 추가로 판단을 세울 수 있다.

 


 문제가 '나'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는 조현병이다. 상태가 많이 악화된 조현병 환자들은 스스로에 대한 모습을 완전히 잘못 그리곤 한다. 스스로의 모습이 실제보다 훨씬 더 특별하거나, 위태로운, 위험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미국의 비밀 요원들이 본인을 납치하거나, 살해할 목적으로 한국에 들어왔다는 등의 망상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문제들로 인해 엄청난 분노와 고통을 호소한다.  

 

 감시당하고 있거나, 주위 세력으로부터 의도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 환자들을 보면서, 그들이 겪는 고통을 감히 상상하자면, 그 고통의 핵심은 출구가 없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특정 대상 때문이 아니라, 잘못 설정된 '나'에서 그 모든 고통과 위협, 불안이 기인하기 때문에, 벗어나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조현병 환자의 경우를 보니, 우리의 진짜 자아는 무엇인지, 또 우리가 진짜 자아를 인지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일반인들 또한 어느 정도는 잘못된 자아에 갇혀 살아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나는 진짜 나인가?

     


  페르소나는 자아가 쓰는 가면, 혹은 옷으로 비유되는 심리학 용어인데, 본래의 자아를 가리는 다른 모습의 인격을 말한다. 사회적 요구에 따라 학습되기도 하며, 남들이 보는, 혹은 보이기 위한 모습이다. 마치 가면을 바꿔 쓰듯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아무래도 더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함이 클 것이다.

 

페르소나가 작용하는 것은 거의 자동적이고, 본능적(사피엔스의 사회성은 DNA에 각인되어 있다)이라, 페르소나는 단지 자아의 껍데기쯤이 아니라, 자아의 가변적인 면모라고 볼 수도 있다. 누구와 함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누구냐 진짜 나는?



 컴퓨터에게 너는 누구니? 하고 물으면, "어떠어떠한 운영체제이며 이런 CPU 칩셋과 이런저런 스펙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틀렸을 수 있다. 컴퓨팅 기반이 클라우드로 옮겨가면서 가상화 기술이 널리 적용되고 있다. 요즘 대부분의 컴퓨터는 가상이다. 마찬가지로, 요즘 반도체는 대부분 가상이다.

   

 가상화 기술은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오래된 소프트웨어 기술로, 실제 물리적 리소스(하드웨어 등)를 개념적 리소스로 추상화하는 기술을 말한다. 주로 여러 컴퓨터가 공통의 리소스를 공유해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용되는데, 예를 들면, 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모두 '혼자' 버스를 타고 간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가상화는 왜 할까? 가장 큰 이유로, 물리적인 리소스를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소스를 활용하는 여러 컴퓨터들(간단히, 운영체제 혹은 게스트라고 할 수 있다.) 중 어떤 것들은 상호 공존이 어려울 수 있다. 물과 불이 공존하기 어렵듯, 한쪽에 맞춤하면 다른 한쪽은 살지 못한다. 또한, 물리적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실제로는 100인승 버스더라도 200명의 예매가 가능할 수 있다. 물론, 실제로 100인승 버스에 200명이 타면 안 되지만, 이런저런 조율과 조정 방법을 통해(허수 예매도 있고 하니까..) 이를 가능하게 하면, 사람이 몰리더라도 우선 대처할 방법이 생긴다. 추가로, 보안에도 도움이 된다. 혼자 버스를 타고 있다고 착각을 하면, 서로 간에 알지 못한다 (누가 있을 거라 생각도 못한다). 또, 버스를 타는 입장에서도 굳이 좌석 번호를 외울 필요가 없어서 편할 것이다. 어차피 모두의 자리는 1번일 테니.


 가상화 기술에서 게스트들이 착각을 하도록 하는 장치를 하이퍼바이저라고 하는데, 이전에는 이 구현을 소프트웨어로 했으나, 최근에는 성능의 이슈로 인해 하드웨어(반도체)에서 직접 이를 구현해 제공한다. AMD에는 AMD-V라는 반도체 가상화 지원 기술이 있고, 인텔에는 VT라는 기술이 있다. 이 같은 기술들은 클라우드 컴퓨팅의 발전과 함께 최근 더욱 부각되고 있다.


 사실 컴퓨터 공학이 전공이 아닌 터라, 이런 개념들을 최근에 알게 되면서 묘한 동질감이 들었다. 가상화된 리소스를 점유한 게스트들은, 나의 고유한 설정이라고 믿던 것들이, 사실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작된 설정이라는 것을 깨우치기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아무리 노력해도 진짜 나의 모습을 마주하기란 어려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절묘한 동질감이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콤플렉스 같은 것들이 마치 하이퍼바이저 처럼 기능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


 모든 문제는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내 모습을 올바로 성찰 해야 한다. 나에 대해 올바로 인지하는 것은, 가지고 있던 여러 착각들과 가면들을 벗기는 것과도 같다. 거기에 더해, 진짜 내 모습을 완전히 가리고 있는 하이퍼바이저와 같은 것이 있지는 않은지도 점검해야 한다. 나를 제대로 깨우칠 수 있다면 많은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제발 그렇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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