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언제 커지는가.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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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준 주리였다.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가 있는 일이었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양귀자, <모순>
인생의 큰 상실을 겪은 이에게, 그리고 때로는 나에게, 불행이 덮친 삶의 순간을 위로하고자 마음을 쓸 때면, 소설 <모순>에 등장하는 양감이란 단어가 떠오르곤 했다. 인생을 가늠하는 척도 중 양감이라는 것이 있다면, 적어도 불행한 순간들은 또한 인생의 양감이 커지는 순간이라고. 인생의 양감. 단조롭기만 해서는, 순탄하기만 해서는 도저히 늘어날 수 없는 이것은 삶 속에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가 담길수록 늘어나는 이야기의 양감이다. 특히나 애매함, 모순, 변덕, 예기치 못한 사건들은 인생의 양감을 부풀리는 중요한 소재가 되어줄 것이다.
마치 넉넉한 양감을 가질 운명을 타고난 것인 양, 하는 일마다 제대로 풀리지 않는, 때로는 일부러 망가뜨리기를 일삼는 작중 주인공과 그의 가족들. 주인공은 만취 상태가 되면 늘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고자 처절하게 발버둥 친다. 순탄한 방향으로 흘러갈 인생을 돌이켜, 모순이 가득한 양감의 길을 걷고자 하는 발버둥 인가, 혹은 이 지긋지긋한 고통의 운명을 벗어던지고자 하는 것일까. 작 중 양감이 큰 인생들은 늘 고단하고, 추하고, 아프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이를 통해 인생의 진짜 모습을 조금은 더 빨리 배우는 듯 보이기도 하다.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인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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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표제어에 덧붙여진 반대어는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의 이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양귀자. <모순>
인생의 양감에 대해, 불행할수록 커지는 그 모순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게 되면 조금은 위안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겪어온 좌절들과, 겪게 될 더 많은 좌절들이 사실은 인생의 풍성함을 더해주는 것들일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혹은, 또 그만큼의 성취와 행복도 따라오는 것이려니.
덴마크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그의 친구들과 진행한 아찔한 사회 실험 이야기를 다룬다. 그것은 바로, 혈중 알코올 농도를 항상 0.05% 정도 유지하는 것. 이는 인간이 그 정도의 알코올이 부족한 상태로 태어나 살아간다는 우스꽝스러운 가설을 바탕으로 시작된 것인데, 처음에는 술이 저마다의 곪아있는 삶의 갈등들을 조금씩 완화해 주고, 용기와 애정(compassion)을 더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다소 유쾌한 장면이 이어진다. 이후,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술은 여러 아픔들 또한 많이 낳는다. 아픔과 상실을 준 술을, 그들은 또다시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유쾌하게 끝나는 영화의 엔딩(아 몰라 술이나 마시자)을 통해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술 생각나게 만드는 이 영화를 몇 번 더 보고, 어쩌면 우리는 한계가 너무나 분명한 우리의 인생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꾸만 술을 찾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빌려, 잠시 더 대범하고 용감해지기도 하고, 실수와 사건 사고를 빚고, 더 많은 화합과 마찰을 동시에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끝이 명확한 유한한 인생을 살면서, 그 안에서 많은 양감을 빚어내기 위한 특단의 발명품이 바로 술이 아닐까.
술 얘기가 나온 김에, 한 잔만 하고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