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행동을 보고 든 생각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현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결국 전공의 협회의 집단행동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에 대해 정부는 '법대로' 하겠다는, 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그야말로 강대 강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힘이다. 이 번 사태 전면에 나선 대한전공의협의회를 비롯해, 그간 의사들의 연대는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연대함으로써 여러 차례 힘을 발휘했다.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잘잘못은 별로 따지고 싶지 않고, 그보단 그들이 보여주는 힘, 자신감 같은 것들을 보며 감탄이 나올 따름이다.
특히나, 나에게 귀인과도 같은, 15년 지기 친구이자 은사님께서 몇 년 전부터 계속 의대 진학을 권하셨기 때문에(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도 아니지만) 의식 깊숙한 곳에 줄곧 '의사'가 각인되어 있던 터였다. 나름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열심히 맞는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다소 못 미덥게 보였나 싶기도 했고, 또 오죽하면 저러실까 싶었다. 다른 건 몰라도, 늦깎이 의대생이 되는 것이 엔지니어의 삶을 이어 나가는 것보다 훨씬 낫겠다는 권유는, 깊은 애정에서 나온 것이긴 했다.
(최근의 대한민국 내 의대열풍은 엄청나다. 이것저것 다 따져보니 이제 답이 나오는 길은 의대를 보내는 것뿐이려니. 속상하지만, 얼추 맞는 말이다.)
의사는 일단 전문직이기 때문에 힘이 세다. 전문직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자격증'은 국가, 그리고 전문직 종사자 협회를 통해 엄격히 관리된다. 그 수를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은 높은 사회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한편, '자격'은 국가에서 부여했더라도, 전문가 집단은 본인들이 가진 '전문성'을 무기로 쥐고 있다. 그 전문성은 '자격증'을 통해 독자적으로 관리되었기 때문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한 국가 내 따로 존재하기 어렵다. 특히나, 다른 '자격증'에 포괄되지 않는 고유한 영역을 차지한 전문가 집단일수록 그 힘은 세다(일부 자격증은 다른 자격증이 보장하는 자격 범위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 의사의 경우, 의사의 자격 범위는 다른 자격증에 거의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의사가 센 이유는, 그들이 연대를 잘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한의사협회(의협)로 대표되는, 한국의 의사 연대는 매 번 그들의 권한을 잘 지켜왔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 파업부터, 큼직한 단체 행동만도 이번이 4번째다. 한국의 의사는 연대를 통해 그들의 고유한 영역을 줄곧 잘 방어해 온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또 재미있는 것은,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단체 행동에는 학생까지도 동참한다는 것. 간호사도, 한의사도, 약사도 의사 연대 앞에서는 한 수 접어왔다. 이번 정부라고 별 수 있을까.
+ 딴 얘기지만, 전문직은 이 땅의 진정한 귀족이다. 한국에서 소위 전문직이라 불리는 몇 직군들(의사, 변호사, 변리사, 회계사, 감정평가사 등..)의 특징을 열거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우선, 그들의 대체로 돈을 잘 번다. 사업을 하지 않는 한, 특수 직위에 있지 않는 한, 단순 직업 활동 자체가 보장해 주는 수입은 전문직보다 크기 어렵다. 그리고 그들은 독자적으로 일할 수 있다. 고용된 형태로 일할 수 있는 대부분의 다른 직업들과 달리, 전문직은 '자격증'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직업 활동이 가능하다(개원, 개업 등). 그리고 그들은 은행에서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더구나, 결혼 시장에서의 가치 또한 높다. 그저 부럽다.
그런데, 뜬금없이 드는 생각은, 엔지니어들도 연대를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연대를 통해 스스로의 권리를 보호하고, 신장하고, 또한 전문인 집단으로서의 서비스 퀄리티 보장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노력했으면 하는 것이다. 사실 이 같은 생각은 이 번 도요타 발 엄청난 규모의 '조작' 사태를 보고 든 생각이긴 하다. 엔지니어들이 스스로 연대하지 못하면, 고용주의 요구에 늘 종속되기 마련, 사회적으로 너무나 큰 재앙을 몰고 올 수 있다. 서비스 퀄리티와 윤리 의식을 '스스로' 보장할 수 있는 자정장치로서 연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미국을 비롯해, 엔지니어링의 역사가 긴 나라들은 저마다의 연대가 존재하긴 한다. 협회 멤버십을 통해 나름 '자격'에 대한 관리를 하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윤리 강령(code of ethics)을 세우기도 한다. 놀랍게도, 제조업 강국인 한국은 엔지니어 협회가 없는 것 같다. (아래 wiki 백과 목록 내 한국은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실화?) 나라에서 나오는 자격증은 없더라도, 직업에 대한 전문성을 추구하고, 이를 존중받는 것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연대해야 한다.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engineering_socie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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