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은 선을 넘어
어느 대학의 졸업 축사를 할 영광스러운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가요?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의 모교로 유명한 시러큐스 대학의 2013년 졸업 축사에 선, 조지 선더스 작가는, 친절한 사람이 될 것을 당부하는 따뜻한 축사를 전했습니다.
친절하라는 메시지는 졸업 축사 치고는 조금 특이한데, 이는 잘 알려진 졸업 축사들이 대부분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 어떻게 실패를 이겨낼 것인가 하는, 새로운 출발선에 선 이들에게 삶의 성공 노하우를 담는 것과 조금 다르기 때문입니다. 친절,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히 갖춰야 할 소양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지 선더스가 친절을 주제로 졸업 축사 주제로 다룬 것은 어쩐지 재밌습니다.
(참고로, 미국의 대학 졸업식은 당대 유명 인사가 직접 축사를 하며, 졸업생들은 이 축사를 듣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고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uJWd_m-LgY
우연한 기회로, 이 축사를 보고 나서 저는 최근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동안 잊고 지낸 중요한 것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은 나 홀로 주인공인 무대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 얽혀 이야기를 풀어내는 곳입니다. 그동안 '나의 앞가림' 하나 하기 어렵다며,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작은 울타리 속을 열심히 지키던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적은 나의 소유를, 그마저 잃지 않기 위해, 주먹을 꽉 쥐고 사느라 정작 다른 사람들의 손을 잡아줄 생각은 하지 못했던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게 됐습니다.
조지 선더스는 자신의 삶을 통틀어 가장 후회되는 일로, 어린 시절 마주친, 외로워 보이던 이웃집 친구에게 친절(이 대목에서는 연민, empathy가 더 어울리네요)을 베풀지 못한 것을 꼽습니다. 이는 그가 축사의 주제로 친절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의 말을 빌리면, 나이 많은 어른이 삶에서 가장 후회되는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 바로 졸업 축사의 전통이니까요.
그에 따르면 친절은, 우리가 사회적 성공을 위해 품는 열망만큼, 혹은 그보다 더 큰 의지와 노력을 들여 추구해야 할 목표입니다. 친절은 우리가 이 세상이 오직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포함해, 귀중한 깨달음을 얻고 나면(우리가 흔히 가지게 되는 어리석은 생각들로부터 벗어나면) 그 의미와 가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절은 우리가 진심을 다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만 하는 어려울 일입니다. 어쩌면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하나 다행인 것은,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친절을 배울 기회가 점점 더 생긴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고 여러 사람들과 지내고 여러 가지를 깨달으면서 우리는 친절해질 수 있습니다. 손더스는 이를 마치 날카로운 것이 점점 마모되어 부드러워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명절을 맞아 여러 어른들을 뵙고 오면서 조금은 그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왜 어른들이 서로에게, 남에게 관심을 가지곤 하는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고, 제가 먹지도 않을 사탕이며, 고구마, 단 것들을 자꾸 건네는지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요즘은 특히, 친절을 베푸는 것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실례가 될 수 있는 세상이라 특히 이 축사 내용이 인상 깊게 다가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너무나 빠르게 개인주의가 퍼졌기 때문에 가정과 일터에서 모두 세대 간 갈등이 자주 빚어졌습니다. 친절이 되려 선을 넘고 실례가 될 수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친절이 '메너' 수준에서 그쳤던, 친절이 메말랐던 저의 최근의 삶을 돌이켜보니, 그럼에도 저는 친절을 배워 행하는 삶을 살기로 마음이 기웁니다. 원래 어려운 일이라고, 원래 맞는 길이라고 손더스 작가가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이 축사의 내용을 제 멋대로(진짜 멋대로) 요약해서 써두려 합니다. 제가 이해하고 받아들인 대로 요약해서 실제 내용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여러 우수꽝스러운 일들이 많은 나의 인생이었지만, 그중 가장 후회하는 것을 꼽으라면 나는 어렸을 때 한 친구를 외면했던 것을 꼽습니다. 7학년일 때, 내가 살던 동네로, 우리 학급으로 옮겨온 한 여자 아이는 수줍음이 많고 사회적으로 서툰 모습을 보이는 외로운 친구였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특별히 못되게도, 친절하게도 대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곧 그녀는 다른 곳으로 떠났고, 이것이 제가 가장 후회하는 일, 이야기의 끝입니다. 이것은 제 삶에서, 친절함이 실패했던 기억입니다.
여러분은 부디 친절한 사람이 되어, 후회 없는 훌륭한 삶을 살길 바랍니다.
친절하지 못하는 이유를 먼저 알려드리자면, 그것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당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고, 세상은 '당신'과 분리된 무언가가 아닙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은 영원히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오해를 바탕으로 늘 더 성공적인 삶을 살려고, 개인의 욕심을 우선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친절을 배울 방법은 여러 알려진 것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친절을 교육받거나, 기도하고 명상을 해 삶을 돌아보거나, 친절에 대한 고민을 좋은 사람들과 나눠보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다행히도, 우리는 나이가 들 수록 더 친절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이가 더 들면, 우리를 이기적으로 만드는 생각들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점점 더 친절해져, 결국 멋 훗날 우리는 서로 더 많은 사랑을 나누게 되겠네요. 천천히 그렇게 될 테지만, 부디 서두릅시다.
친절한 삶을 사는 것은 어렵고, 우리 삶의 목표로 삼을 만큼 대단한 일입니다. 부디 더욱 친절한 사람이 되어 후회 없는 훌륭한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