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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란 Jun 17. 2022

김씨의 덕질일기 9 : 입덕썰

♪ 정세운 - JUST U


* 이 글은 2021 공식 입덕썰 이벤트 신청기간을 놓쳐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한 행운의 뒤늦은 구구절절문입니다..


2017년 상반기. 대부분의 20대 여성들이 그러했듯 나 역시 국민 프로듀서의 길을 걷고 있었다. 시발점은 회색 맨투맨을 입은 남성이 여동생과 전화를 하는 영상이었다. 프듀1에서도 간신히 과몰입을 참아냈건만. 시험기간임을 망각하고 '어, 이거 재밌네?'하며 영상의 흐름을 타버린 후 나는 그대로 냅다 프듀판에 몸을 던져버렸다.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고정픽 몇 명이 정해졌지만 지금의 최애는 그 명단에 없었다. 예전에 덕질할 뻔 했던 모 그룹의 멤버 한 명이 너무나도 나의 이상형에 가까웠던 터라 분량도 적었던 현 최애가 눈에 들어올리 만무했다. 다만 학교 커뮤니티에는 프로듀스101 시즌2를 보는 사람들이 모인 <프로듀숙>이라는 게시판이 있었는데, 한 학우의 닉네임과 글에 정세운이 가득해 포뇨를 닮은 그의 존재 정도는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포지션 평가가 시작됐다. 최애가 들어가 있는 팀의 조합이 꽤 신선해 주목을 끌었다. 엠넷도 이를 캐치했는지 그동안 없던 분량까지 끌어모아 악마의 편집을 선물해줬고, 덕분에 무던하고 말랑하기만 할 줄 알았던 최애의 강단을 보았다. 이런 모습도 있네?싶어 흥미롭게 여기던 중 그가 흰 셔츠와 빨간 리본 초커를 두른 채 무대에 등장했다. 강렬한 노래에 일렉도 치고 인상도 찡그리고 머리도 쓸었다. 얘.. 진짜 뭐지? 그렇게 고정픽 명단에 정세운을 들였다.


시간이 흘러 마지막 생방송만을 남겨둔 때였다. 그 무렵 프듀판에선 생방송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온갖 이벤트를 열곤 했는데 제법 사람이 많았던 <프로듀숙>에서도 하나둘 소식이 전해졌다. 학교가 시험기간임을 겨냥해 작은 간식부스를 만들고 홍보물을 함께 게시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광경은 처음이라 신기해하면서 습관처럼 <포게(학교 커뮤니티 내 정세운 팬 게시판. 풀네임은 '포뇨의 스케치북'이었다.)>를 들어갔다가 이벤트 디자인 총대를 급히 구한다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홀린 듯이 지원했다.


아직도 그때의 내가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디총이 되어 포스터 시안을 그리고 있었다. 강의 시간 구석 자리에서 열심히 머리를 굴려 아이디어를 짜내다 문득 '나 지금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직전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진심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 이렇게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건지. 하지만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포스터 말고도 정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다시 말하지만 시험기간이었던 그 시절, 나는 잠까지 줄여가며 홍보 포스터를 뽑아냈고 포게 사람들(애칭 포송이)과 함께 한 투표 장려 이벤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다.


직접 만든 포스터(왼쪽 사진) 외에 스티커나 투표방법 안내문은 원작자에게 허락을 받은 이미지를 사용했다.


뉴스까지 탄 서포트 사진과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후기들을 보며 흐뭇해하다 깨달았다. 아 나 얘한테 진짜 입덕했나봐. 나의 최애는 어느새 다른 연습생이 아닌 정세운이 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뒤늦게 입덕을 인정하고 친구들과 함께 모여 막방을 보았던 날, 최애는 12등이 되어 탈락했다. 속상한 마음에 며칠을 멍하니 보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다행인 일이지만 그땐 소속사에 수납 당할까봐 무서웠다. 유일한 덕메였던 포송이들과 초조해하기를 2개월이 지나 정세운은 솔로 가수로 데뷔했고 나는 생애 처음 팬싸인회에도 다녀왔다. 그렇게 4년이 흐른 지금, 나는 여전히 정세운을 덕질 중이다.


프듀2가 시작할 때만 해도 이다지 진심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역시 사람 일은 알 수가 없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사실 망쳤다기 보다는 덕분에 즐거운 경험이 더 많긴 한데 2017년도 1학기 성적을 생각하면 아주 조금 눈물이 나기는 한다. 그래도 무사히 졸업했으니 됐다. 그리고 솔직히 포스터는 지금 봐도 비전공자치곤 깔끔하게 잘 만들었다. 정세운의 별명이었던 마이구미를 선택해 포송이들과 손수 스티커를 붙였던 일부터 두세 곳으로 나누어 배치했던 간식 상자가 금새 비어 중간에 몇 번 더 채워넣어야 했던 일, 나도 모르는 사이 과방 의자 뒤에 붙어 있던 스티커를 발견한 일 모두 여전히 뿌듯하다. 앞으로 내 인생에 이렇게 열렬히 덕질할 순간은 아마 두 번 다시 없을 듯하다.


쓰고 보니 무척 길다. 입덕썰 이벤트 기간을 놓치지 않았더라도 아마 글자수 초과로 게시판에 미처 다 못 썼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나의 이 장황하고도 버라이어티한 입덕썰을 꼭 세운이에게 알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사진을 찾느라 옛 인스타그램을 찾아보았는데 그때도 지금도 나의 소망은 같다. 정세운 혹은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분들 혹시 이거 보고 계시면 제 마음 좀 전해주시고 제 사랑이 담긴 포스터도 꼭꼭 세운이 보여주세요.. 원본 파일 제공 가능.. 사랑아 세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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