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망 Jul 25. 2021

[책]상처도 대물림된대요

<굿바이 가족 트라우마>

가족, 짙게 뿌리내린 애증

부모님이 동화 속 인물처럼 평면적이라면 차라리 좋을 것이다. 선과 악으로 망설임 없이 나눌 수 있다면, 그래서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과 나를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것, 그 두 가지 선택지 중에 손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사람은 너무나 입체적이고, 덕분에 나는 무수한 상처와 무심한 듯 따뜻한 애정을 동시에 받고 자랐다. 잘 지내려고 해도 한 번씩 울컥할 때가 있다. 내 상처가 어디서 왔는지, 악의 없는 행동을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을 내내 고민해왔던 것 같다.

이 책은 가족을 향한 짙은 애증이 문득 죄스럽게 느껴져 고민하는 과정에서 읽었던 책이다.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기에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을 위해 이렇게 추천하고자 한다. 나처럼 자식의 입장으로 읽어도 좋고, 부모의 입장으로 읽더라도 가족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치유의 시작, 상처의 원인 알기

불행한 가정의 불행한 이유는 제각기 다르다고 했다. 흔히 가정폭력 하면 떠올리는 행위들뿐 아니라 다양한 불행의 씨앗이 존재한다. 아이에게 왜곡된 역할을 요구하거나, 감정을 지나치게 여과 없이 드러내는 등의 행동으로 아이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정환경이 아이의 성장 과정, 또한 성인이 되고 나서의 여러 가지 성향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건 누구나 안다. 중요한 건 부모 역시도 성인인 채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어린 시절이 있었고,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영향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트라우마도 대물림되고, 그렇기에 상처를 알기 위해선 부모뿐 아니라 그 윗 세대의 상처까지 함께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포인트다.

사회 교육학자이자 아동청소년 심리치료사인 저자는 현대인의 상처를 치료하고자 할 때 가족의 삶과 ‘마주 보라고’ 제안한다. 부모는 욕구가 누구의 것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다른 가족원을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하고, 자식은 그것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믿고 생의 중요한 부분을 포기한다. 책에 따르면, 그것을 이해하고 되돌리려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원래 되어야만 했던 사람이 될 수 있다.’

     

부모와 자녀 간의 충성 계약

우리의 이전 세대, 그 이전 세대는 전쟁과 같은 여러 가지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다. 그들의 괴로움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아이는 부모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알아차린다. 아이는 부모에게 의존해야 하는 존재기 때문에, 부모를 치유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이 부모의 상처를 보상해주려고 한다. 아이의 정체성 일부는 그 시점에서 더 이상 형성되지 않는다.     

부모 자신의 감당하지 못한 감정을 아이에게 보관하면 아이는 부모의 트라우마 경험을 담는 저장소가 된다. 그래서 본래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속하는 불안 증세가 아이에게서 나타날 수 있다. 말하자면 아이가 부모를 위해 대신 감당하는 셈이다. 아이는 스스로 부모의 필요를 채우는 해답이 됨으로써 애착의 대상을 잃지 않길 바라며, 관찰자들의 시각으로 보면 부모를 위해 부모가 필요로 하는 역할을 떠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스스로의 (기본적) 욕구는 충족하길 포기한다.    

실제 예시를 살펴보자면, 리사의 엄마 리케는 리사가 어릴 때 그녀에게 안정감과 친밀감을 주지 못했고, 딸이 자신의 결핍을 대신 채워주길 바랐다. 자신이 어렸을 때 조건 없이 행복하지 못했고 친밀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리케는 예상치 못하게 생긴 늦둥이였고, 리케의 엄마는 리케 때문에 자신이 성공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리케는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엄마 때문에 평생 다른 곳에서 인정을 구했으며, 리사를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서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도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애썼다. 그리고 리사에게 그와 관련된 인정을 받고자 했다.

이는 이 책의 저자가 내린 결론이 아니다. 저자는 상처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했을 뿐, 리사와 리케, 아버지가 저자와의 상담을 통해 직접 찾아나간 답이다. 어떤 충성 계약을 맺었는지 알기 위해 그들에게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다.     

-관계 속 어느 부분에서 어머니를 능가하면 안 되는가?

-어느 시점에서 어머니를 홀로 내버려 두면 안 되는가?

-어느 부분에서 아버지를 실망시키면 안 되는가?     


그 질문으로 어느 정도 문제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내면에 떠오른 장면을 바탕으로 대사가 있는 역할극을 해본다. 자신이 되어보고,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되어 본다. 리사는 역할극으로 즐거운 상황을 떠올렸지만, 행복을 있는 그대로 누리지 못하고 엄마에게 자신이 즐거워도 되는지 허락받고 싶어 했다. 엄마의 역할을 할 때는 딸(자신)에게 자신의 결핍을 채워달라고 말했다. 그 역할극은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좀 더 구체화시킨다.

 

앞서 적은 것은 한 가족의 이야기로, 관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알아가는 첫 번째 단계다. 당연히 오랜 시간에 걸친 문제는 한 번의 상담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리사와 리케, 그의 아버지는 몇 차례의 상담과 노력을 통해 상처를 분명히 마주하고 그곳에서 걸어 나온다. 우리의 삶 한 부분과 닮은 이 이야기는 실제 사례고, 우리 또한 어떠한 변화를 꿈꿀 수 있다. 이 책 속에서 꽤나 공감 갔던 문장을 몇 가지 더 공유한다.     

폭력적인 부모의 자녀들은 부모의 이런 폭력적인 측면을 자신의 정신 그리고 행동의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가해자였거나 자기가 키운 자녀가 가해자가 되어 무력감을 경험한 환자들에게서 우리는 가해자 편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끔찍한지, 그리고 이들이 가해자의 범죄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많은 경우 이들은 나중에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가해자가 된다.     
내가 부모를 놓아 보내고 나 자신의 ‘보호자’가 될 때 비로소 자기애가 생겨난다.     
아이는 희생했던 ‘자아’를 다시 되찾는 일을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배신으로 느낀다.
트라우마 연구자들은 감당하기 어렵고 생명을 위협하는 일을 직접 겪은 환자들이 그 경험에 전형적으로 침묵하는 경향을 정신적 외상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주요 원인으로 여긴다. 외상을 남긴 사건이 그대로 봉인되어 전혀 치유되지 못한 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건네지는 것이다.


우리의 탓이 아닌 것 때문에 자책하지 않길

이 책을 읽으며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가 마음의 병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아직도 편견이 가득하고, 무작정 참고 이겨내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을 읽고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족 상담은커녕 진득한 대화조차 가능하지 않은 집이 얼마나 많을까. 이런 상처를 드러내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부모님도, 그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는 자식도 많을 거다. 그렇게 상처는 치유될 가능성을 영영 제거당한 채 다른 사람에게로 건네 진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고 거창한 대화를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는 틈틈이 물었다. 생각보다 내가 모르는 사건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서로 주고받았던 상처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자기 연민을 멈추고 해결책을 찾아나가고자 할 때 멈췄던 성장이 시작된다는 생각이 든다. 더는 나와 같은 사람이 우리의 탓이 아닌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자책하지 않기를 바란다. 새로운 시각에서 당신의 상처를 마주하길, 서로를 상처 입히지 않는 대화의 기회를 찾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가끔은 나와 작별하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