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를 하는 중에 아파트 안내방송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공지 사항은 차를 막고 주차된 오토바이를 빨리 빼 달라는 것이고, 두 번째 공지 사항은 내일 물탱크 청소가 예정되었으니 미리 준비하라는 것이다. 안내방송을 하고 있는 사람은 경비실 터줏대감인 반장 아저씨였다. 이름이 김 아무개인데 사람들은 그냥 반장 아저씨라고 부른다. 우리가 이 아파트에 이사 온 지가 10년이 넘었다. 우리가 이사 왔을 때 반장 아저씨는 5년째 근무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반장 아저씨를 무한 신뢰하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시장에서 장을 봐 오면서 경비실 앞을 지나가는데 반장 아저씨가 얼른 나와서 어머니 손에 든 시장바구니를 들어다 현관문 앞에 놓고 내려가셨다. 어머니는 너무 고마운 분이라고 두고두고 말씀하셨다. 그 후로도 반장 아저씨는 어머니께서 성당에 다녀오는 길에 경비실 앞을 지나면 꼭 나와서 인사를 나눴다. 언젠가는 어머니께서 입원한 적이 있는데 아저씨는 나를 만날 때마다 어머니는 괜찮은지 안부를 물었다. 아저씨는 사람을 대할 때 참 성의 있게 대한다.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저씨의 진심이 느껴진다. 반장 아저씨는 아파트 주민들과 사이가 아주 좋다. 주민들은 아파트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반장 아저씨부터 찾는다.
아파트 경비 일이라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세 명이서 돌아가며 24시간 근무를 하는데 밤 근무를 한다는 것은 무척 고된 일이다. 그보다도 더 고된 일은 다양한 아파트 주민들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다수 주민들과 안부를 물으며 잘 지내지만 간혹 냉정하게 대하는 방문자들도 있고, 재활용 분리수거나 이중주차 때문에 소리를 높이는 주민도 있다. 다른 아저씨들은 이런 것들을 견디지 못하고 그런 일이 있고 나면 곧장 그만두기 일쑤였다. 아파트 경비 일을 하기 전에 나름대로 전문 분야에서 30년 넘게 일을 해오다가 은퇴를 하고 집에서 노는 것보다 활동하기 위해 아파트 경비 일을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자신의 삶에서 평생 겪어보지 못했던 대우를 받다 보면 인생이 서글퍼지고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내가 이 나이에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나왔나, 이런 수많은 생각에 휩싸여 일을 그만두고 만다. 언젠가는 관리실 아저씨들이 하도 자주 그만둬서 아파트 입주민 대표회의에서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경비 아저씨들에게 따뜻하게 대해달라고 부탁까지 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반장 아저씨는 빈자리를 메꾸느라 고생하셨다. 아저씨의 나이는 이미 일흔이 넘었다. 아저씨는 관절이 좋지 않아 걸을 때마다 통증을 느낀다고 했다. 통증에 도움이 되는 푹신한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데도 통증은 별반 차도가 없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에게 아저씨의 통증이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다. 그래도 반장 아저씨는 쉽게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아저씨가 그만둔다고 할 때마다 주민들이 여러 차례 간곡히 부탁했기 때문이다. 아저씨도 주민들과 정이 들어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벌써 15년이 넘었다고 한다.
아파트 재활용 분리수거하는 날이면 반장 아저씨는 오는 주민들을 늘 유쾌하게 맞아준다. 웃는 얼굴로 서로 안부를 묻고 돌아서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아파트라는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에서 살아가지만 결코 마음이 차가워지지 않는 것은 바로 반장 아저씨 같은 어른이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