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의 추억

by 이광

며칠 전 한 택배기사가 아파트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서 올라오기 위해 그를 스쳐 계단으로 향했다. 왜냐하면 엘리베이터의 위치를 알려주는 숫자가 꼭대기 층을 표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다리느니 차라리 운동삼아 걸어 올라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내가 천천히 계단을 올라 6층에 이르렀을 때 엘리베이터가 우리 집이 있는 7층에 도착했다는 것을 안내 멘트 소리로 알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뭔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금세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내가 7층에 올라왔을 때 바닥에 떨어진 것은 택배 상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택배기사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않고 택배 상자를 문 앞에 던져놓고 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택배 상자는 우리 집 현관문 앞에 던져져 있었다. 그런데 내게 오기로 예정된 택배가 없었기 때문에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일단 택배 상자를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주소와 이름을 확인해 보니 다른 동으로 가야 할 택배가 우리 집으로 잘못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택배기사가 다른 동에 있는 우리 집과 같은 호수의 집으로 배달해야 할 물건을 우리 집으로 잘못 배달한 것이다. 이러한 일이 전에도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의 맥이 풀리는 기분이 든다.


다름이 아니라 광주에 사는 인심 좋은 누나가 김장김치를 택배로 보냈는데 택배기사가 다른 동에 있는 우리 집과 같은 호에 배달해 놓고 가버렸다. 그 집주인이 퇴근 후에 그것을 확인하고 경비실을 통해 그 사실을 알려왔다. 나는 그 집에 가서 무거운 김장김치가 든 스티로폼 상자를 끌다시피 해서 가까스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까지 내려왔다. 카트가 있으면 편했을 텐데 그때는 집에 카트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맨 손으로 들고 와야 했는데 너무 무거워서 열 발짝 정도 휘청거리며 겨우 걷다가 손목에 힘이 빠져 그대로 내려놓아야 했다. 사실 내려놓은 게 아니라 상자가 너무 무거워 손에서 미끄러져 그대로 낙하하고 말았다. 속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내가 일부러 던져버린 것으로 오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땅에 떨어진 스티로폼 상자는 박살이 나고 김치를 싸고 있는 비닐봉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다. 나는 퇴근 후 몸이 지친 상태에서 이렇게 무거운 짐과 시름을 하고 있으려니 택배기사가 아파트 동을 잘 확인했다면 이런 번거로운 수고를 안 해도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잘못 배달한 택배기사를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김치를 싸고 있는 비닐봉지가 두꺼워서 김치 국물이 사방으로 튀는 대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젖 먹던 힘까지 다 소환해서 김장김치를 커다란 돌덩어리처럼 끌어안고 엉거주춤한 걸음걸이로 조금 걷고 쉬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우리 동 엘리베이터에 도착했을 때 내 몸은 이미 내 몸이 아니었다. 온몸은 땀으로 젖어있었고 내 가엾은 두 팔은 스티로폼 상자의 파편조차도 들어 올릴 여력이 없었다. 그때부터 내가 두 발로 밀었는지 찼는지는 확실한 기억이 없지만 어떻게 해서 겨우겨우 김치를 집 안으로 들여놓은 후 오는 길에 떨어진 스티로폼 상자의 파편을 주으러 다시 내려갔다. 온몸의 기운이 바닥나는 순간이었다.


그때 힘들었던 기억을 생각하다가 우리 집에 잘못 배달된 택배가 무거운 김치라든가 생수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경비실에 연락해서 택배 주인에게 가져가라고 할까 생각하다가 전에 내가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주인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택배를 관리실에서 찾아갈 수 있도록 택배 상자를 관리실에 가져다 놓고 왔다. 사실 그렇게라도 하는 게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던 택배기사는 마스크를 턱까지 내리고 있다가 내가 들어가자 나를 돌아보며 마스크를 올렸는데 그때 잠깐 본 그의 얼굴이 몹시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그때는 밤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그 얼굴이 불현듯 생각나 잘못 배달된 택배 상자를 관리실에라도 가져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코로나19로 택배 물량이 예전에 비해 뚜렷한 증가세에 있고 오늘 주문하면 내일 받아볼 수 있을 정도로 택배서비스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처음에는 서비스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에 대해 이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편리하고 만족스럽다고 생각했지만 택배기사의 열악한 처우에서 비롯된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처음처럼 빠르다고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내가 편리하다고 느끼는 것이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 얻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일상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지양하자는 캠페인을 하는 것처럼 택배서비스도 머지않아 로켓처럼 빠른 fast 서비스 대신에 느린 slow 서비스를 이용하자는 캠페인이 생겨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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