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 막다른 길

나쁜 남자, 강한 여자

by 해원

남편이 죽었다. 11년 전에 죽었다는데, 나는 얼마 전에야 알았다. 굉장한 충격이다.

21년 전에 이혼한 전남편이다. 타인이다. 영어도 어눌한 50대의 나를 미국이라는 낯 선 땅에 버린 사람이다. 이 광활한 타국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게 한 나쁜 인간이다.


일가친척들의 노여움을 이겨내고 선택한 남자였다. 직계가족과 절친들만 참석한 결혼식이었다. 마흔 두 살의 늦깎이들이었지만, 반백 년이 아닌 한백 년을 약속했다.

“고작 10년도 못살거면서 그 난리를 쳤어?”

그런 소리 들을까 봐 극비로 갈무리한 이혼이었다.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행복한 목소리로 연기를 했다. 즐겁고 행복한 사진들만 보여주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바뀌지 않은 남편의 성으로 살고 있었기에 가능한 연기였다. 해외출장이 잦았던 사람이라 외국에 있다는 핑계도 자연스러웠다.


남편이 내세운 이혼사유는 엉망이 된 자신의 건강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치매를 내세웠다. 마누라도 몰라보는 끔찍한 꼴은 보일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웃기는 소리, 궁색한 변명이라며 코웃음을 쳤다. 다른 여자가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런 이혼은 더군다나 숨겨야 했다.
나는 분노했고 그는 울먹였다.

"내 기필코 너보다 잘 살거다! 보란듯이 살거다!"

그 보다 잘 사는 것, 그를 능가하는 것, 그게 복수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를 갈았고 그는 침묵했다.


그는 우리 노후를 위해 사 두었던 땅 문서를 내 손에 쥐어 주고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쌌다.

"해원아, 넌 마음이 약해서 돈 가지고 있으면 안 돼. 이거 처분하면 바로 집을 사, 알았지? 집이 있으면 최소한 홈리스는 아니잖아. 그리고 집은 누가 훔쳐가지 못해."

"떠나는 인간이 웬 걱정? 나는 집보다는 잘 사는 길을 닦을 거야. 너를 이기는 길을..."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어금니를 힘주어 깨물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그의 언어, 이 나라의 언어를 익히는 것이었다. 침묵은 금이 되겠지만 무지로 인한 침묵은 장애일 뿐이니까.

ESL과 전문학교를 동시에 다녔다. Pharmacy Technician 자격증을 땄다. 그러나 약학은 나의 길이 아니었다.

주립대에 들어가 심리학을 선택했다. 그러나 상담 교수님은 Sociology and Criminal Justis가 내 적성에 맞을 것이라 했다. 졸업 후 일자리도 더 많을거라 했다. 교수님의 조언에 따라 전공을 바꾸었다.

죽어라 공부했다. 꿈속에서도 공부했다. 꿈을 꾸는 게 아니라 자면서도 공부를 했다. 그 말을 이해하는 사람도 있기는 했었다. 그도 그랬던 적이 있다면서 웃었다. 나는 속으로 울었는데, 그는 웃었다.


강의를 녹음한 녹음기가 네 개나 망가졌다. 남부 토박이 교수님들의 사투리 강의는 수십번을 반복해 들어야 했다. 음식을 하고 빨래를 하고 운전을 하고 길을 걸으면서도 녹음된 강의를 들으며 공부를 했다. 7년을 그랬다. 3.9/4 포인트의 장학생으로 학사학위를 받았다.

주립대학 캠퍼스에서

남편은 가지지 못한 박사학위를 겨냥했다.

장학금을 주겠다는 대학원으로 갔다.

1년 후, 졸업에 필요한 48학점 가운데 24학점을 채웠는데 일이 벌어졌다.

독감이 유행한다고, 예방주사를 맞으러 간다는 class mate 들을 따라 가 나도 주사를 맞았다. 그로부터 나는 졸음에 겨워 혼미한 상태로 흐느적거렸다. 책을 펼쳐 놓고도, 컴퓨터를 켜놓고도, 5분을 버티지 못하고 잠에 빠졌다. 내 주치의가 펄쩍 뛰었다. 세상에 둘도 없을 심각한 알레르기 체질이 그런 주사를 맞다니…” 정신 나간 짓이라고 야단을 쳤다.


학업을 중단했다. 2년여가 지나도 여전히 혼미했다.

혼미한 머리를 강타하는 또 다른 일이 벌어졌다. 동포 부부가 사업에 필요하다며 돈을 빌려갔다. 대학원 다닐 자금이라고 말했다. 걱정 말라고 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또 다른 동포도 그랬고 또 다른 이도 그랬다.

"자매님, 누가 돈 빌려 달라고 하면 없다 그러세요. 절대로 빌려주지 마세요. 절대로!"

나를 아끼신 교회 사모님이 보다못해 당부를 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남편이 쥐어 준 돈은 흐지부지 흩어지고 날아가고 사라졌다. 그를 이기기 위해, 그보다 더 잘 살기 위해, 집이 아닌 은행에 맡겼던 돈이었다.

몸과 정신은 혼미하고, 돈은 사라지고, 남편과의 연결도 완전히 끊어졌다. 사람이 두려워졌다. 특히 같은 핏줄이, 가슴속 검붉은 피멍이 되었다.


학업을 포기했다. 그러자 삶도 포기하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어떻게 죽을까 궁리했다.

청둥오리들이 종이배처럼 떠도는 호수가에서였다. 동남부 특유의 거대한 참나무, 허연 수염을 치렁치렁 늘어뜨린 거대한 나무를 보았다. 물구나무를 선 육중한 몸뚱이가 물 속에 잠겨 있었다. 물살이 일렁일 때 마다 거대한 그림자의 윤곽도 기우뚱거리며 일그러졌다. 흔들리는 그림자는 나무가 아니었다. 물결을 따라 흔들렸지만 물도 아니었다.


문득 내 꼴이 저 나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호숫가에 서서 물속에 투영된 그림자만 보는 나무. 똑바로 선 모습이 아니라 거꾸로 선 제 그림자만 보는 나무. 흔들리고 일그러지는 건 나무가 아니라 물결인 것을 알지 못하는... 나는 그런 꼴이었다.

“나의 호수를 떠나자. 나는 걷고 뛸 수 있는 자유로운 나무야.”

베낭을 메고, 농가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농사 일로 여비를 마련하며 유랑하던 청소년기가 생각났다.

“가자. 그림자로만 곤두박질 치지 말고. 걷고 달리다가 길 위에서 죽자.”



작은 승용차에 텐트와 취사도구를 실었다. 방향도 목적지도 알 필요 없었다.

보이는 길을 따라 무작정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