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여행의 좁은 길

by 해원

종일을 달려도 길은 계속되었다. 대륙이었다.

첫 날엔 무작정 달리기만 했다. 허기진 자동차를 위해 주유소에 멈춘 것이 전부였다.

언제 어느 때 영화 속 여자들 ‘델마와 루이스’처럼 절벽을 부웅! 떠 오를지 알 수 없었다. 절벽에 다다르기 전 한치라도 더 나가보자는 생각이었다.


조지아와 플로리다의 접경지에서 출발, 국도를 번갈으며 도착했던 앨라배마의 어느 야영지는,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도 그 지독했던 더위의 기억은 생생하다. 하늘의 별들까지 녹아내리는 것 같던 찐득찐득한 열기, 몸서리 치던 내 암울과 꼭 닮았던 그 밤의 그 어둠. 무엇이든 시작과 끝의 기억이 강렬하다는데, 첫날의 기억이라서 이렇게 선명한 걸까?


앨라배마와 미시시피의 허리를 가로질러 아칸소를 비스듬히 타고 오르는 길은, 언덕과 숲과 약간의 늪으로 평탄하게 이어졌다. 바다보다 망망한 농지를 헤엄치듯 거슬러 올라 국유림에 가까워지도록 길은 대체로 그렇게 순한 평지였다. 자동차가 솟구쳐올라 비행할만한 절벽 같은 건 없었다. 그런 건 아마 서부에나 있을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이 땅을 가로질러 서부까지는 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좁고 한적한 길을 따라다녔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 7:13)…

생명으로 가는 문은 작고 그 길이 매우 좁아 그 곳을 찾는 사람이 적다(마 7:14)”

그 분의 좁은 문은 생명으로 향하지만 내가 가는 좁은 길은 죽음의 길이었다. 그러나 찾는 이들이 적은 조용한 길이라는 것에는 맥락을 같이 했다.


내가 따라다닌 좁은 길은 협착하고 외진 길들이었다. 새 도로가 생기면서 버려진 옛길, 사람들이 모두 떠난 유령마을의 진입로, 사유지로 드나드는 개인 도로 같은 것들도 있었다. 막히고 끊어져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길도 자주 만났다. 그러나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못 가면 방향을 틀거나 돌아서면 될 일이었다. 목적지가 없는 길에는 넉넉한 선택의 자유와 여유가 널려 있었다.

“들어가는 길이 있으면 반드시 나가는 길도 있다. 되돌아 나와도 출구는 출구니까.”

어줍잖은 좁은 길 깨달음(?)도 여유롭게 웅얼거렸다.

그 때의 내 거처: 어떤 이는 홈리스 체험이라고 했다


떠나기 전에 중형자동차를 소형으로 바꾼 건 참 잘한 일이었다. 고장을 걱정할 일도 없고 연료도 아주 적게 들었다. 긴 하루에도 한번의 주유로 충분했다.


아칸소에서 국유림으로 향하는 표지판을 보았을 때, 자동차의 연료 탱크가 절반 가까이 차 있었다. 몇 시간의 주행은 거뜬할 것 같아 주유소를 그냥 지나쳤다.


좁고 한적한 산길은 문명과 인간이 배제되어 마냥 평화로웠다.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는 길 양편에는 자그마한 야생화들이 화동이 뿌린 꽃가루처럼 널려 있었다.

자동차 속도를 한껏 줄였다. 가끔은 차에서 내려 꽃잎 감상도 했다. 천천히 꽃 길을 흐르면서 잠시 신부가 되기도 하고,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겹겹으로 두르고 있는 정경을 보면서는 든든한 성벽 안에서 보호받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안도감은 오래 가지 않았다. 연료 계기판에 노란 불이 켜졌다.

‘설마, 멈추기 전에 주유소가 나오겠지’ 생각했지만, 가도가도 똑 같은 봉우리들만 끝없이 이어졌다. 집도 없고 사람도 없고 지나가는 차도 없었다. 하다못해 들짐승도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내 가슴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아이구 주님, 주유소 까지만 무사히 데려다 주세요.”

근래에는 찾지 않았던, 분노와 원망만 퍼부었던 그 분을 간절히 불렀다.


불쑥 낮아진 언덕 자락, 광활한 농지 한구석에 버려진 듯 웅크리고 있는 낡은 건물 하나가 저 만치에 보였다. 반가움에 앞서 으스스한 느낌이 먼저 들었다. 오코너의 ‘좋은 사람은 드물다’가 문득 생각났고, 탈옥수들이 숨어있던 그 위험한 오두막의 이미지가 겹쳐졌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분위기가 불러낸 기억의 파편인 것 같았다.


밍그적이는 마음으로 가까이 갔다. 좁은 흙마당에 지저분한 녹색의 길쭉한 철제 깡통 하나가 놓여 있었다. 호스에 연결된 손잡이가 있는 걸로 보아 구식 주유기가 분명했다. 뿌연 흙먼지가 더께로 앉은 더러운 손잡이를 보자 그냥 지나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자동차의 노란 경고등이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아주 멈춰버릴 것이라고.

주유기 앞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말 그대로 촌스럽기 짝이 없는 중년의 남자가 배부른 소처럼 멀뚱하게 나를 맞았다. 갖가지 잡동사니들이 아무렇게나 진열되어 있는 걸로 보아 만물상 구멍가게로 짐작되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농가들을 위한 시골 편의점인 모양이었다.

“저거, 자동차 기름 맞나요?”

내 물음에 남자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나 내가 나오려고 하자 느리게 말문을 열었다.

“That’s 100% homegrown corn fuel. I make it myself.”

(그거 직접 재배한 옥수수로 정제한 순도 백퍼 기름이야. 내가 만들어.)


옥수수 순기름은 휘발유 가격보다 두 배는 비쌌다.

나는 잠시 말설였다. 일주일을 대륙의 길 위에 떠돌면서, '세상은 넓고 볼거리는 많다'는 생각이 스며들고 있었다. 역마살이 끼었다는 망아지같은 나였다. 어린 망아지가 세상으로 나가기를 조르듯, 나도 이 넓은 세상을 더 달리고 싶어했다. 그러러면 망아지의 편자같은 자동차의 건재는 필수였고, 자연히 얼마큼을 더 달릴수 있을지 계산하게 되었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 부근에 주유소가 있는지 물었다. 고속도로로 나가면 주유소는 많다고 남자는 말했다. 쪼오끔만 가면 고속도로가 나온다고 덧붙였다.

Just a piece further.” 남자는 ‘쩌어~스트’에 힘을 주며 가까운 거리임을 강조했다.

나는 옥수수 기름을 조금만 넣었다.

잘못된 결정이었다.


시골 사람들의 거리 감각이란, 미국이나 한국이나 같은 모양이었다. ‘조금만 가면 된다’는 한국의 시골 길이 십리는 되듯, ‘쩌어스트 어 피스…’라는 미국의 시골 길도 그랬다. 흙먼지가 날리는 시골길이 한없이 계속되었다. 언덕이 계속되던 국유림의 불안이 되살아나고, 이러다 진짜 탈옥수들이라도 만나는 게 아닌가 무섬증도 들었다. 옥수수 기름을 좀 넉넉하게 넣었어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주유소만 보면 기름을 넣었다.

미터기가 절반만 내려가도 주유소를 찾았다.

시골길.jpg
안개길.jpg


크레이터 레이크 (Crater Lake)로 가는 길은 계절이 바뀌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아직 반쯤 눈을 감은 이른 아침, 오레곤의 안개는 두꺼운 마분지 같았다. 내 안에도 그런 안개가 자욱했다. 이정표도 보이지 않았다. 홑이불을 씌운 듯한 윤곽만 보였다.


안개가 질어질수록 호수에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믿으며 자꾸자꾸 앞으로 나아갔다. Crater가 분화구라는 건 생각하지 않고 Lake가 호수라는 것만 생각한 탓이었다. 플로리다 평지의 호수만 생각한 탓이었다.

한참을 가다 보니 사방이 하얬다. 양 옆으로, 아득히 솟아 있는 눈 덮인 높은 봉우리들이 보였다.

“뭐지, 이건?”

도깨비에라도 홀린 듯 당혹스러웠다.

모르는 사이에 나는 눈에 덮인 좁은 산길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분화구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느 산 위에 있는 특별한 호수인가 보다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겨우 내 작은 자동차를 세울만한 공간을 발견하고 길섶에 차를 세웠다.

차 문을 여는 순간 나는 악! 비명을 지를 뻔했다. 아득한 절벽이었다. 영겁의 세월이 쌓아왔을 만년설이 고인 까마득한 낭떠러지였다. 몸이 떨렸다. 안개에 속아 여기까지 왔지만 더는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눈에 덮인 좁은 산길을, 이 작은 자동차로 오르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내려가는 것은 더 힘들 것 같았다.

골짜기의 깊은 눈 웅덩이 속으로 내 차가 추락하는 환영이 보였다. 아득한 눈 웅덩이 속에 파묻히면 수천, 수 만년이 지나가도 발견되지 않을 것이었다. 먼 미래에, 내 차와 내 시신을 발견한 학자들이 우리를 연구, 관찰하는 상상도 해 보았다.

전화기는 불통이었다.

소꼽친구 명재에게 남길 메시지를 찍었다. ‘내가 사라져도 걱정마라. 나는 이 아름다운 곳에서 수천, 수만 년을 썩지 않고 남아, 후손들에게 역사의 흔적이 되어 줄 것이다. 얼마나 행복한 죽음이냐…’ 그런 내용이었다.


메시지를 작성한 전화기를 내 허벅지에 놓고 차창문을 내렸다. 그리고 가만히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가다가 추락이라도 할 것 같으면 재빨리 전화기를 창밖으로 던질 작정이었다. 길가에 떨어진 전화기는 조만간 발견이 될 것이다.


자동차가 끄르러엉! 울음소리를 내며 덜덜 몸을 떨었다. 시동이 걸렸다. 덩달아 내 몸도 흔들렸다.

“괜찮아. 날아오르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야.”

델마와 루이스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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