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야 한다면 날자 했던 내 결단은 체념이 아니었다. 수용이었다.
“죽기밖에 더 하겠어?”
극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죽을 힘을 다한다’ 든가 ‘죽기 살기로’ 라는 말도 한다. 죽음을 끝장으로 여겨 최후의 수단을 강구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것은 기필코 살기 위해 담보로 잡히는 죽음이었다.
나의 죽음은 그 반대였다. 담보가 아니라 대출인 셈이었다. 그걸 자산으로 시도하는 비상飛翔이었다.
‘날아야 되면 날자’ 하고 마음에 날개를 틔웠더니, 금세 커다랗게 펼쳐진 날개가 자동차를 움직여 호숫가에 부려 놓았다. 수용은 체념보다 강하고 지혜로웠다.
그러나 전날 밤의 결단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Boondocking이라는 무료 야영지, 전기나 샤워시설은 물론 화장실도 없는 가난한 공터였다.
저 만치 구석에 텐트 하나가 보였을 뿐 사방은 어두컴컴한 침묵이었다.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조금 귀찮았고, 많이 두려웠다.
구석의 텐트는, 나 말고 누군가 더 있다는 안도감을 주기도 했지만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불안감이 더 무겁게 눌러왔다.
약육강식의 본능은 짐승이나 사람이나 같다.
내게는 텐트 속에 하나가 아닌 '사람들' 그것도 ‘남자들’일 것으로 지레 짐작되었다. 저들도 그럴 것이었다. 내 차에 덩치 작은 여자 혼자가 아니라 '덩치 좋은 놈들' 여럿을 생각할 것이었다.
압도적으로 강한 상대나, 전혀 모르는 상대는 공격하기 어렵다. 그러나 상대가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작은 존재인 걸 알면, 없던 폭력성도 생길 수 있다.
그동안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아주 많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고양이에게 잡힌 생쥐처럼 희롱 당하다가 먹히는 가련한 죽음 따위는 내 목록에 없었다. 해서 나는 그런 죽음의 근접을 아예 차단해 버렸다. 그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자동차 의자를 한껏 뒤로 젖히고 비스듬히 누웠다. 차 안의 불이 켜질 것을 것을 대비해 검은 색 모자를 깊숙이 눌러썼다. 뒷좌석에서 슬리핑 백을 끌어당겨 대충만 펴서 몸을 감쌌다.
어둠만 엷어지면 바로 떠날 것이었다.
살얼음 같은 잠을 들며날며 설치다가, 미명인지 안개인지 모를 뿌연 빛을 감지하자 곧장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배설을 하고, 허기와 갈증을 달랠 곳을 찾아야 했다.
호수의 표지판은 그럴 듯해 보였다. 외딴 곳의 허름한 곳이라면 그렇게 공들인 표지판 따위는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간단한 명패 같은 팻말이 고작일 터였다.
그 호수에는 분명 볼만한 무엇이 있고, 찾는 이들이 있고, 먹고 마시고 배설할 곳이 있을 것이라 믿어지는 표지판이었다. 그러나, 해발 2천미터나 되는 산 위의 호수, 눈 덮인 좁은 산길을 두 시간 가까이 기어올라야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푸르다 못해 암청색으로 반짝이는 호수가 맑고 경쾌한 표정으로 나를 반겼다. 그러나 호수와의 조우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긴장 풀린 몸이 다급한 본능을 깨웠다. 밤새 고였던 소변이 내 안에 파도를 일으켰다.
보는 눈이 없는 한적한 곳이었지만 엉덩이를 드러내고 주저앉을 공간은 없었다. 공간은 있어도 그럴 베짱이 없었다.
호수의 물은 두꺼운 도화지에 칠한 물감처럼 고요했지만 내 안에 고인 물은 다급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공기를 한 방울만 더 넣어도 터져버릴 풍선의 팽창이 아랫배에 느껴졌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죽겠다는 인간이, 엉덩이 드러낼 베짱도 없다는게 말이 돼?" 내 안에서 올라 온 비난이 물결을 일으켰다.
'에라, 모르겠다.’ 무릎을 꺾었다. 그러나 문득 떠 오른 산장의 표지판이 주저앉으려는 나를 멈춰 세웠다. 호수보다 조금 먼 거리에 산장이 있다는 머룬색의 흐릿한 팻말이었다.
구부리던 무릎을 펴고 위로 오르는 길을 쳐다 보았다. 별로 높아 보이지 않았다. 꼭대기가 그리 멀지 않으며, 거기 있을 산장도 가 볼만한 짧은 거리로 짐작되었다.
산장을 발견했을 때의 환희의 맛, 그러나 그 보다 강렬했던 맛...
건물 가까이에 자동차를 세우고 안으로 뛰어 들었다. 산장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기념품 가게도 식당도 모두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화장실 문도 잠겨 있었다. 건물안은 물속처럼 고즈녘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숙소 건물일 것 같은 문을 향해 참새처럼 쫑쫑쫑 다가갔다. 이제는 뛸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복도에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이자 대뜸, “restroom!” 하고 푹 내 뱉았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상황을 짐작한 몇 사람이 나 보다 더 다급한 손짓으로 같은 곳을 가리켰다. 놀란 새끼 사슴처럼 후다닥 화장실로 뛰었다.
그들은 투숙객이었다. 막 아침식사를 끝내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었다. 식당 프론트에 두 개의 커다란 스테인레스 커피포트와 종이컵과 그 밖의 비품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따뜻한 인상의 품위 있어 보이는 매니저(나중에 알게 됨)가 서빙을 하고 있었다.
나도 줄을 섰다.
곧 내 차례가 되었다.
커피값을 물었다.
“Free.” 그가 말했다. 따뜻한 음성이었지만 투숙객도 아닌 나는 불안했다.
투숙객이 아니어도 마실 수 있느냐고 차마 묻지 못했다.
같이 서서 기다리던 투숙객에 의하면, 아침식사는 마감을 해 이제 커피만 마실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이 지불한 산장의 숙박비에는 식사와 음료가 모두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공짜로 먹고 마실 수 있지만 나는 아니었다.
내 뒤에는 아직 커피를 기다리는 투숙객들이 여럿 남아 있었다.
저들만 마실 수 있다거나, 뒤에 가서 기다리다가 남으면 마시라고 할 것 같았다.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뒤로 갈까 싶기도 했다.
입구가 있으면 반드시 출구가 있는 지상의 길처럼, 포식자의 신체도 그랬다. 섭취라는 채움이 있으면 반드시 배설이라는 비움이 있어야 했고, 비움 뒤에는 또 다시 채움의 요구가 있기 마련이었다. 나의 긴박했던 화장실 용무가 끝나자 밤새 웅크리고 있던 갈증과 허기가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요의를 참던 순간만큼이나 목마름의 욕구도 절박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은 귀하디 귀한 것이다. 그때 내 눈앞의 커피가 그랬다.
“큰 겁? 작은 컵?”
양 손의 컵을 번갈아 치켜들어 보이며 메니저가 물었다.
안도와 기쁨의 웃음이 함빡 터져 나왔다. 나는 한껏 들뜨고 행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The bigger, the better!”
“너, 커피가 무척 고픈 모양이구나.”그가 큰 컵에 커피를 부었다.
행복한 미소가 온몸으로 번졌다.
“아침에 올라왔어?”
컵을 채우며 그가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엊저녁 산 위에 눈 내렸는데, 조그만 아가씨가 참 용감하네.”
그래서였다. 그 길에서 나 말고는 아무도 볼 수 없었던 이유는 엊저녁에 내린 눈이었다. 산장에 있던 사람들도, 호수를 찾아오려는 산 아래의 사람들도, 눈길이 치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메니저의 용감하다는 말이 당혹스러웠다. 눈 내린 산은 고사하고 호수가 산 위에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걸 알고도 이 짓을 했다면, 그건 용감한 게 아니라 무모하거나 멍청한 짓이라고 말해야 했다. 일기예보도 안 듣는 여행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죽음여행자였지만, 메니저는 모른다.
그러나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such a brave little young lady' 라는 긴 호칭을 위로와 칭찬으로 즐기기로 했다.
매니저는 커피가 찰랑거리는 컵을 내게 주었다. 흔들려 한방울이라도 흘릴세라 나는 두 손으로 공손히 컵을 받아 들었다. "고생했으니까, 이제 저기 가 앉아서 고생한 보람을 느끼라구." 매니저는 호수가 가장 잘 보인다는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더 마시고 싶으면 얘기해. 얼마든지 리필 해 줄테니까."
나는 감사의 말보다 훨씬 진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그가 가리킨 테이블로 갔다.
아주아주 소중한 것을 다루듯
조심스레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한 모금의 커피를
천천히 입 안에 머금었다.
정신이 아뜩해지는 느낌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듯한 커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였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호숫가에 앉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있다니.
이 무슨 행운의 선물인가 싶었다.
축복인가도 싶었다.
“… 아직, 안 죽어서 다행이다.”
그런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한잔의 커피가 주는 엄청남 힘이었다.
눈물이 고이려고 했다.
그러나 눈물 대신 미소를 머금었다.
“죽었으면,
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못 먹을 뻔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