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폭풍우와
에이브

by 해원

절정의 맛 커피를 선사해 준 매니저는 다음 행선지들의 정보도 선물했다.

그는 아름다운 길과 굉장한 명소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이야 말로 진짜배기 인생여행자였다.

그 산장과 같은 근사한 장소들만 골라 일을 했기때문에 안 가본 명소가 없을 지경이라고 했다. 미국뿐 아니라 해외 여러 나라들을 그렇게 다녔다고 했다. 정말 멋진 삶, 최고의 인생이다 싶었다.

‘그래서 커피 맛이 그토록 기가 막혔나 보다’ 지나친 비약도 서슴없이 생겨났다.


많은 추천명소들 가운데 두 곳을 선택했다. 미국에서 가장 경치가 좋다는 101번 도로와, 거기서 연결되는 요세미티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가위 눌릴 듯 웅장하고 경탄스러운 바위 절벽을 떠나며 다시 내 방식의 좁은 길 유랑으로 돌아섰다.

그 매니저는 나를 유유자적 모험을 즐기는 베테랑 여행자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커피 맛의 환희에 소스라치는 내 모습에서 죽음을 연상할 그늘 따위는 없었을 테니까.


좁은 길은 나를 네바다의 시골로 이끌었다.

막힘도 휘어짐도 없는 길, 움직임이라곤 없는 부동의 세상, 마른 사막풀들이 듬성듬성 굴곡을 만드는 아득한 평원, 도로는 그 아득함을 긋는 실선같았다.


저 만치로 보이는 검푸른 산줄기들은 유령인양 희뿌연 너울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곳에서 창조주를 만났다.


“당신이 빚기 시작한 태초의 땅이, 이런 모습이었나요!?"

그 분이 귀머거리라도 되듯 있는 힘껏 목청을 터트렸다.

“이런 곳은 아직, 인간이 아닌 아버지만의 땅이겠네요! 그러면, 막내딸인 제 땅도 되는 것이지요?”


나는 늘 막내이기를 고집했다. 응석을 부려도 좋을 영원한 철부지이고 싶었다.


온전한 침묵의 세상, 창조주를 향한 나의 외침과 그 분의 깊은 숨결만 깃든 그 찰나들은, 시간이 멈춰버린 영원의 조각들이었다.

그분이 침묵으로 대답했다.

"이 길은, 너를 위해 내가 차려놓은 잔치상이란다."


눈 닿는 모든 것이 내것이었다.

힘껏 페달을 밟아 사막의 가운데를 바람처럼 가르며, 미친듯 빼액 빽 고함을 질렀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땅부자다아!”


나를 위해 차려진 순전한 자유의 잔치가 버겁도록 신이 났다.

죽음조차도 그 순간에는 다만 신바람이 되었다.


후에도 가끔 그 길을 찾아 달려가는 나를 사람들은 한심해 한다.

볼 것 없는 황량한 사막여행은 한번으로도 넘친다고 했다.

그들에겐 내가 가지지 못한 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막의 자유는 영원하지 않았다.

길을 바꿀 때마다 공기의 색이 달라졌고, 그 변화는 내 마음의 색도 시시각각 바꾸어 놓았다.

급기야 애리조나의 사막길에 닿았을 때, 그 자유는 흥건한 눈물이 되어 쏟아졌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물이 흘러, 길가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꺼이꺼이 울었다.


가을이 늙어가는 건조사막은 영양실조로 죽은 노인의 피부색 같았다.

수 천리길 죽음의 행진을 해야 했던 원주민들이 생각났다. 사시사철 푸르름으로 젖어 있는 동남부의 비옥한 땅에서 죽음 색깔의 메마른 서부에 닿았을 때, 그들의 심경이 어땠을까 짐작해 보았다.


대부분의 부족들이 몰살을 당하고, 남은 자들도 삶의 터전과 자유롭던 영혼과 오랜 전통을 모두 잃었다.

알래스카의 얼음이 아직 육지였던 수만 년 전, 걸어서 이 땅에 들어왔다는 몽골족의 후손들. 우리 조상의 피가 섞였을지도 모르는 그들의 운명과 파란 많은 내 나라의 역사가 겹쳐져 아프게 울었다. 그 가엾은 운명이 내 것으로 여겨져 더 크게 울었다.


호호캄 부족들의 자취가 새겨져 있다는 페인티드 록 암각화 유적지 및 야영장(Painted Rock Petroglyph Site and Campground)을 찾았다. 그들이 남긴 바위의 그림들을 둘러보며, 거기 스며있을 영혼들을 마음으로 다독였다.

그리고 사막의 추운 밤, 모래알 닮은 별들을 헤며 야영을 했다.

(‘죽음여행’이라, 기록도 흔적도 거의 남기지 않아 순전히 내 기억에 의존하는 글쓰기다. 그런데도 페인티드 록의 기억만큼은 바위에 새겨진 암각화처럼 선명하다. 아마도 그곳에 쏟았던 눈물의 무게가 기억의 갈피를 무겁게 눌러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뒤, 뉴 멕시코의 어느 산중턱 야영지에 들어갔다.

오피스로 보이는 건물도 있고, 군데군데 지붕이 덮인 정자들도 있었다. 음식을 먹으며 쉴만한 벤치와 테이블도 그 아래 놓여있었다. 이용료가 꽤 비쌀 것 같은 깨끗한 곳이었다.


그런데 너무 조용했다. 조용함을 넘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오피스 문에는 ‘Closed’ 라는 사인이 붙어 있었다.

천천히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야영지 한 켠에 버스형의 RV 한 대와 자동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는 캠퍼가 보였다. RV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캠퍼 안의 남자가 문을 반쯤 열고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반가웠다. 남자나 여자가 아닌, 그냥 사람의 온기였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남자에게 물었다.

“오피스가 닫혔는데 어떡해야 될까요?”

50대로 보이는 순한 인상의 남자는, 일단 자리를 잡으라고 말했다. 그의 말투가 어눌했다.


사방이 트인 평평한 자리 하나를 골라 텐트를 꺼냈다. 방수포를 바닥에 깔고 가방에서 텐트를 꺼내려는데, 그가 다가오며 고개를 저었다.

“에에… 여긴 안돼요.”

의아하게 쳐다보는 내게 남자가 말했다.

“오, 오늘 밤에 폭풍우 온다는데, 여긴 막아주는 게 하나도 없어서 안돼요.”

모두들 폭풍우를 피해 산을 내려갔다고 한다. 이런 날은 호텔이나 모텔같은 곳이 안전하니까.

그러나 오래 떠돌이 생활을 한 그는 토네이도만 아니면 두렵지 않다고 했다.

누군가 두렵지 않다면, 나도 두렵지 않았다. 두렵대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산을 내려가기엔 너무 늦었다.


그는 내 작은 텐트를 걱정스럽게 보다가, 자신의 캠퍼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가제보를 가리켰다.

“저 아래가 좋겠어요. 줄을 기둥에 단단히 묶으면 텐트가 날라가지는 않을거예요. 비도 피할 수 있고...”


나는 그의 도움을 받아 테이블과 벤치에 바싹 붙여 텐트를 쳤다.


그가 캠퍼에서 뜨거운 커피 두 잔을 가지고 왔다. 우리는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자신은 에이브라함인데, 그냥 '에이브'라 부르라고 그가 말했다.

마크 트웨인 동굴 안내도

“쌤.” 나는 짧게 대답했다. 마크 트웨인의 본명인 사무엘 클레멘스에서 생각해 낸 이름이었다.

어릴 때 ‘톰 소여의 모험’을 읽으면서, 나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한 위인이었다. 어린 나의 위대한 영웅이었다. 미국에 오자 맨 먼저 미시시피 강으로 달려가 스팀보트로 강물을 떠 다니던 그의 환영을 만나고, 미주리 주의 동굴로 가서 소설 속 주인공들을 만났다. 내가 톰이 되고 베키가 되고 핀이 되어, 인디언 조를 훔쳐보기도 했다.


그날 밤의 폭풍우는 굉장했다.

‘수퍼 럭키’라 할 만큼 운이 좋았던 나였다.

미국 땅 절반을 넘게 돌아다녔지만 온갖 자연재해들을 용케도 피했다. 경미한 사고조차 없었다. 그 밤의 폭풍우가 처음이였다.


기둥에 묶인 텐트는 소금을 뿌린 미꾸라지처럼 야단스레 몸부림을 쳤다. 지붕이 있었지만 바람에 떠밀린 빗줄기가 사정없이 텐트를 후려쳤다. 내게 있던 모든 짐을 텐트 바닥에 쟁여 놓았지만, 탠트는 마른 종이처럼 흔들리고 구겨졌다. 두 손으로 문의 지퍼를 부여잡고 온 힘을 다했다.


하늘의 혼쭐에 기가 다 빠져버린 기나긴 밤이었다.

텐트를 움켜잡고 꼬박 앉아서 버틴 밤이었다.


아침이 되자 폭풍우는 약 올리듯 자취를 감추었다.

지퍼를 열고 비실비실 밖으로 나왔다.

텐트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기우뚱 모로 누워 있었다. 폴대 몇 개가 부러져 뒤틀리고 구겨진 모양새였다.

“고생 많았다. 그동안 잘 견뎌 줘서 고맙다.”

텐트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구입한 가격을 생각하면 참 오래, 참 유관하게 잘 썼다는 생각이었다. 산을 내려가면 가까운 도시를 찾아 새것을 장만하리라 마음 먹었다.


“...생각보다 심하게 망가지지는 않았어요.”

에이브였다. 몇 개의 폴대를 손에 들고 있었다. 아침에 내려가 사왔다고 했다. 왕복 두 시간은 족히 되는 거리인데... 푸석한, 그러나 내 깊은 곳에서 올라온 쫀득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또 웃었다.


그는 캠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인형의 집 같은, 예쁘지는 않았지만, 갖출 건 다 갖춘 작은 살림집이었다.

조그마한 식탁도 있고 침대도 있었다.

식탁에 앉은 내 앞에 뜨거운 커피가 놓였다.

“이거 마시고, 저기, 침대에서 좀 자요. 그동안, 텐트를 수리해 놓을게요.”


말도 안된다는 생각은 마셔버린 커피와 함께 비워졌다. 밤새 폭풍우와 싸운 몸이 혓바닥에 닿은 솜사탕처럼 녹아내렸다. 침대 모서리에 살짝 걸치려고만 했는데, 어느새 침대 가운데로 기어들어가 있었다.

세상 모르고 곯아떨어졌다가 한 낮이 지날 무렵에 눈을 떴다.


에이브는 말끔하게 고친 텐트 앞에 앉아 새로 창조해낸 듯 맑고 깨끗한 하늘을 보고 있었다.

나를 돌아보는 그의 시선도 새하늘처럼 깨끗해 보였다.

견고하던 내 마음의 빗장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전 03화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신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