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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스카 Aug 06. 2022

#11 나는 이제 그만 열차에서 잠시 내려오기로 했다.

이제 다시, 열차에 올라라.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몇 시일까? 6시일까? 생각하며 폰을 든다. 시계는 새벽 5시를 가리켰다. '아 오늘 5시에 일어나기로 했지.' 어제 잠자리에 들기 전 다짐이 생각났다.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간다. 상쾌하게 세수를 하고 안방 문을 열자 아직 아내가 잠자리에 들지 않고 있다. 그녀는 올봄부터 xxxxx 자격증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종일 방에 있는데 특히 밤에 공부가 잘 된단다. 자기는 선천적으로 야행성 동물이라고. 아내와 인사를 하고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내 방 책상에 앉는다. 8.17일에 있을 영어회화 시험 대비용 책을 펼친다. 예상 답변 스크립트를 입으로 중얼중얼 외우고 나니 시계는 6시를 가리킨다. 나는 6시의 시곗바늘과 함께 출근 준비를 한다.


 복직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내 회사는 그대로이다. 출근 버스를 타는 장소도 그대로이고 버스의 출발시각 마저 똑같다. 삼시세끼 무료인 회사 식당도 그대로이고, 휴직 전 같이 일했던 동료들도 그대로 일하고 있다. 바뀐 건 단 하나. '나'이다. 정확히 내가 하는 일은 바뀌었고 그로 인해 나의 동료가 바뀌었고 나의 상사도 바뀌었다. 그리고 나의 사무실도 바뀌었고 내가 일을 할 때 하는 언어(한국어 → 영어)도 바뀌었다. 그중에 가장 큰 건 아무래도 '동료'가 바뀐 게 아닌가 싶다. 사실 난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언제나 같이 일해왔던 동료들은 하나 같이 착했다.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도 강했으며 전문성도 높았다. 아마도 내가 그들과 완벽히 반대이기에 그렇게 생각한건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도 새로 만난 P프로님과 Y프로님. 이 두 분이 나를 도와 같이 일하게 되었는데 정말 하루하루 그들의 진가를 마주하고 있다. P프로님은 우리가 하는 직종의 경험은 일천하지만 새로 옮긴 이 조직에서는 '잔뼈'가 굵었다. 그래서 조직의 구석구석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물어보면 모르는 일도 없었고 해결 못할 일도 없었다. Y프로님은 이 조직에 온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회사에 6년 정도 있었던 지라 회사의 전반적 사정에 밝았고, 특히 인프라나 IT 측면에서는 전문가였다. 그래서 내가 아직 잘 모르는 회사의 시스템과 규정에 빠삭하였으며, 우리들이 하는 일에 걸림돌을 제거할 능력이 있었으며 지금 하는 일에도 전문성을 쌓아 나가고 있었다. 그런 든든한 2명과 나는 같은 팀이 되어서 일터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참, 새로 만난 나의 상사는 프랑스인. 살다 보니 외국인 상사를 만나게 되었다는... 모든 보고서와 자료를 영어로 작성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대화도 영어로 해야 했다. 하지만 나의 서툰 영어로는 하고자 하는 말의 10% 밖에 표현을 못하고, 프랑스 억양 덕분에 듣는 건 5% 수준. 덕분에 목표는 생겼다. 올해 안에 그와 편안하게 속 터놓고 이야기해보는 것. 영어라는 언어의 장벽이 아직은 그와 나를 가로막고 있지만, '일'적인 것에는 마음이 통하기에 언젠가는 장벽을 허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갈고닦을 영어라는 도끼로 그 장벽을 직접 부수고 쳐들어 가고 싶다.


 이렇게 나는 언제 휴직을 한 사람이었냐는 말을 들으며 일상에 녹아들고 있다. 달라진 게 또 하나 있다면 바로 내 마음. 휴직을 한 번 선언하고 다녀온 사람인지라 이상하게 회사에서 욕심을 내려놓게 되었다. 상사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심, 나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은 욕심, 승진하고 싶은 욕심. 이 3개를 내려놓으니 비로소 내가 원하던 삶이 보였다. 매일매일 무언가를 배우는 삶.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드는 삶. 힘들어도 성취감을 느끼는 삶. 바로 성장하는 삶. 이제 다시, 예전 가지고 있던 루틴을 찾아보려 한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온전히 나의 성장을 위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일터에서는 새로운 업에 대해 조금씩 배우고 성장하고 있고, 퇴근 후에는 온전히 쉬면서 내일의 성장을 위해 체력을 비축하고 있다. 무언가 대단한 '보상'보다, 내가 만족하면서 보낼 수 있는 '하루'가 있다면 나는, 아니 내 삶은 충분하다. 고속열차 타고 목적지에 빨리 가는 사람들과 같이 갈 수는 없지만, 나는 알프스의 관광열차를 탄 사람처럼 옆자리의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고, 멋진 풍경에 넋을 잃기도 하고, 인생 샷도 찍으며 조금 천천히 가려한다. 빨리 가면 분명 빨리 정상을 찍고 나보다 일찍 내려갈 것이기에 서두르지 않는다. 빨리가려면 혼자가고 멀리가려면 함께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지 않은가. 나는 내 삶의 모든 순간, 모든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다. 바로 그게 '나'이다. 아니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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