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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스카 Jun 27. 2022

(Take #2) 42세, 혼자만의 제주

걷고 먹고 자고 걷고

 우도에서 돌아오는 배에서 내려 곧장 성산일출봉으로 갔다. 가까울 줄 알았는데 약 20분 정도 걸었던 것 같다. 체력도 바닥이 나 가지만 그래도 포기하기는 싫었다. 물론 성산일출봉은 가족들과도 많이 가 본 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혼자 가서 천천히 다시 느끼고 싶었다. 그리 정상이 높지 않은 터라 정상에서의 성취감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성산일출봉 아래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땀범벅이 된 몸을 식히고자 잠시 스타벅스에 들렀다. 지난달 여행사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받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쿠폰을 꺼냈다. 방전된 휴대폰도 충전하고 내 몸도 충전했다. 쉬는 동안 휴대폰을 여니 마침 시계는 오후 3시 56분을 가리켰고 곧 4시에 발사될 누리호 소식으로 뉴스는 가득 찼다. 나도 누리호 중계를 기다리며 잠시 유튜브를 켰다. 몇 분 뒤 누리호는 힘차게 땅을 박차고 올라 하늘로 향했다. 궤도에 완벽히 오르기까지, 아니 완벽하다고 확인될 때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이상하게 땅을 박차고 오르는 그 모습만 봐도 뭔가 성공한 것 같았다. 힘차게 내뿜는 그 연기들. 중력을 이기며 엄청난 무게의 몸체를 하늘로 향하는 누리호의 모습에 뭔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나도 내 어깨의 무게, 삶의 무게를 저렇게 견디며 시원하게 박차오를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의 도움. 그리고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 그리고 중력을 거스를 수 있는 강력한 엔진과 충분한 연료. 내 삶에도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이 제주에서 그러한 연료를 채울 것이고, 항상 나를 도와주는 JY님을 비롯한 주변의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간 15년간 회사에서 쌓아온 노하우도 있기에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성산일출봉 티켓을 사기 위해 매표소로 향했다.



 성산일출봉에 오르는 길은 험했다. 계단 하나하나의 높이가 예사롭지 않았고 딱히 중간에 쉴만한 공간적 여유도 없었다. 오르는데 25분 정도가 걸린다 했는데 수영에서 잠영을 하는 것처럼 숨 쉬지 않고 정상까지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 무리인가 싶었는데 '뭐 혼자인데 어때, 힘들면 내일 덜 걸으면 돼지'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래도 정상에 오르면 좀 기쁘겠지? 꾸역꾸역 사람들을 제치고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산이라고 나무들이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어서 시원한 느낌은 들었다. 역시 나무는 무한한 혜택을 우리에게 주는  좋은 식물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정상에 다다랐다. 약간은 아찔할 정도의 높이였지만, 내 눈앞에는 광활한 풍광이 펼쳐졌다. 이상하게 여러 번 와본 정상이지만 또 새롭다고 느껴졌다. 정상에 있는 계단에 앉아 땀도 식히며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대체 이렇게 좋은 곳이 왜 입장료가 5천 원 밖에 안되는지.. 제주에 그 많은 박물관과 관광지는 여기보다 무엇이 좋아서 입장료가 몇만 원이 넘는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제주에서 가장 가치 있는 곳은 도시에서, 육지에서 그리고 다른 해외에서 볼 수 없는, 오직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것. 이번 여행으 통해 나는 그것에 감사하고 그것의 가치를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30분을 멍 때리고 자연을 감상하니 너무나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러한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기 위해 계속 탐험하고 떠나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 성산일출봉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본 광치기 해변-카메라의 각도에 따라 변하는 태양이 신기하다- >


 이제는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예약해둔 성산포항 근처의 게스트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긴다. 태어나서 '게하'에 숙박을 하는 건 처음이지만 엄청나게 저렴한 숙박료에 놀라움도 느끼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 설렘도 느꼈다. 예약해둔 4인실 숙소에 들어서니 건너편 2층 룸에 한 젊은 친구가 미리 와 있었다. 20살이고 곧 군대에 갈꺼란다. 나는 20살 여름에 무엇을 했나. 그저 친구들과 놀고 미팅하기 바빴고, 매일 술과 당구로 정처 없이 지내온 청춘이었는데 이 친구는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제주에 왔단다. 나는 그에게 분명 인생에 큰 추억이 될 거라고, 그리고 군대도 사람사는 곳이고 겸손하게만 한다면 전혀 걱정없다고 격려했다-사실 진심은 아니었다ㅋ-. 근데 요즘은 군대가 1년 6개월이란다. 내가 2년 2개월을 군대에서 지냈던 걸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짧아진 복무기간. 물론 그 친구에게는 세상 어느 시간보다 길겠지만.. 그래 너 덕분에 나와 우리 가족이 편안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으니 고맙다. 군대 잘 다녀오고 그리고 갔다 와서 대학도 꼭 가! 그렇게 응원의 말을 남기고 나는 씻고 저녁 파티를 기다렸다.-그 20살 친구는 오늘은 파티에 안 가겠다 하더라- 


 나는 약속된 7시 30분에 1층 식당으로 향했다. 1층에 들어서니 쭈뻣쭈뼛 서있는 남자 4명이 있었는데 우리는 자리에 합석을 한다. 딱 봐도 20대들. 식당은 횟집이어서 파티 메뉴도 광어, 참돔, 딱새우등의 회가 나왔다.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소주를 한병 따려는데 여자 두 분께서도 합석을 하게 되었다. 한 친구는 대학생이었고 한 분은 나하고 연배가 비슷한 아줌마(?)셨다. 그렇게 우리 7명-나중에 8명이 되지만-은 첫 만남을 가졌고 그날 밤이 그렇게 길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무려 6시간 뒤에서야 자리가 파할 수 있었다. 남자 4명은 한방에 투숙하고 있었다. 그중 3명은 29살의 고등학교 친구들이었고 나머지 1명은 군대를 갓 제대하고 여행 온 22살. 그 29살 친구 3명 중 A, B군은 그야말로 연예인이었다. 자기 스스로를 '관종'으로 말하며 모든 대화의 시작과 끝을 주도하며 우리를 웃겼다. 내가 아들과 터키를 다녀왔다고 하니 자기도 형님 아들이고 싶다고 하며 그 뒤로 나를  '아버님'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아 정말 미친놈들 같았다. 그리고 대학생 여자 C님은 착한 성격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친구랑 둘이서 놀러 왔는데 친구는 회를 안 먹는다 해서 혼자 파티에 참석했단다. 역시 요즘 세대는 각자의 주장이 강하고 이렇게 서로의 다름을 존중해주구나 싶었다. 그렇지만 관종 A, B는 그 상황을 참지 못하며 계속 C님을 공격하며 아마 친구는 혼자 울고 있을 거라고 몰아세웠다. 


 1차에서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시간은 파티 종료 시각까지 삽 식간에 지나갔다. 우리는 식당을 나와서 2차를 가기로 했다. 교촌치킨에서 치킨을 사고 편의점에서 술을 무더기로 사 왔다. 그리고 성산포항 앞의 자그마한 공원-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 앞에 가면 있는 작은 공원이다-으로 가서 자리를 폈다. 2차에는 그 여자 C님의 친구 D님까지 불렀는데 야.. 시크하고 당돌하기 그지 않는 친구였다. 그 친구를 보니 왜 각자 먹었는지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그 친구도 관종 A, B의 놀음에 반응을 하며 공원에서 관종들과 같이 춤을 추었다. 관종들과 여자분 C, D님은 클럽에 온 마냥 신나게 공원에서 놀았다. 주변 몇 킬로 미터 안에 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은 단 우리뿐이었다. 20대 친구들은 나이는 다르지만 서로 반말을 했고 상대의 놀림에 손가락 욕도 서슴지 않았고 모두 그걸 즐거워했다. 관종 A, B는 무려 4~5시간 동안 그 짓을 하며 춤을 추었고 여자 친구들인 C, D님도 마찬가지. 모두들 소주에 취해 술을 마셨고 대화라는 걸 했지만 거의 지껄임에 가까워 스토리와 맥락은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면 기억나는 게 C님과 D님은 이대 수학과 동기생이며, C님은 아마존에 취직해 곧 입사할 계획이란다. 무려 개발자. 그리고 D님은 아직 4학년이며 취업에 목말라 있었다. 관종들은 각자의 직업이 있었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고 그들은 계속 춤을 추고 있었다. 


 특이한 건 요즘에 문신을 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 관종들은 몸에 다양한 캐릭터와 울라프 문신이 있었고 여자들인 C, D님은 좌우 팔뚝에 호랑이와 사자, 그리고 발목에는 3줄 문신이 있었다. 그 3줄이 뭐냐고 물으니 '평등'이란다. 역시 요즘 세대들은 진보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친구들이라 생각했다. 시간은 12시가 지나가고 나는 새벽 3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한 터라 몹시 피곤했는데 관종들은 지치지 않았다. 1시가 되어서야 관종들 친구인 F군이 들어가자고 외쳤고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서로 연락처도 묻지 않았고 인증샷도 남기지 않았다. 다들 내일이면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아갈 거라고 알고 있었다. 인스타로 팔로우 정도만 하며 서로 사는 모습을 지켜 보자고, 그렇게 사진으로 서로의 삶을 관찰하자고 했다. 관종들은 '좋아요'는 꼭 눌러달라고 당부말도 남겼다. 우리는 그렇게 숙소로 들어갔고 그렇게 뜨밤을 뒤로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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