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스카 Jun 27. 2022

(Take #1) 42세, 혼자만의 제주

걷고 먹고 걷고 자고

잠을 푹 자도 아직 피로가 가시지 않는다. 뒷 목은 뜨거운 제주 태양을 그대로 받아 화상으로 약간 따갑고 종아리와 허벅지는 올레길의 여운을 충분히 느낄 만큼 아직 단단하다. 입안의 달달한 느낌은 내 몸이 아직 정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육지사람의 본연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랄까. 한편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는 걸 느낀다. 꿈꾸는 듯한 3일간의 제주여행. 정확히 말하자면 훌쩍 떠나버린 제주로의 도망. 잠이 덜 깬 정신이지만 꿈속의 시간이 잊힐까 키보드 앞에 앉는다. 그리고 타이핑을 남긴다.


<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바라본 광치기 해변 - 햇빛이 반사된 해변의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


 처음 제주여행을 홀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떠나오기 전이었다. 우리 팀의 유일한 동기이자 공감력이 높은 이프로가 꼭 한번 제주도에 혼자 여행을 가보라 했다. 가서 게스트 하우스에서 자보기도 하고 저녁에 모르는 사람들과 바비큐 파티도 해보면 여행의 색 다른 즐거움을 경험할 거라고. 그 말을 고이 간직한 채 육아휴직 3개월의 막바지에 나는 다다르게 된다. 사실 결혼 이후 나 홀로 여행이 엄밀히 말하면 처음은 아니다. 중국 천진에 현장 전문가로 파견되었던 기간에 주말이면 혼자 천진 시내 또는 베이징과 상하이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때 느낀 자유와 편리함은 내가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도 혼자 여행이라는 것을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레 이끌었다. 여하튼 육아휴직의 막바지에 들어선 6월의 어느 날. 나는 지금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임을 직감하고 결심을 한다. 혼자 제주로 떠나기로. 물론 사전에 가족들에게 약(?)을 쳐놓기는 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1주 전부터 "아빠 혼자 여행 잠시 다녀와도 돼?"라고 자주 물었고 우리 아들과 딸은 "응"이라고 흔괘히 답했다. 아내에게는 사실 한번 간다고 선언했다가 취소한 전례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효과인지 별 신경을 안 썼다. 사실 혼자 가는 여행에 좋은 호텔, 비싼 렌터카, 높은 항공료 등을 소비하고 떠나면 아내에게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숙박은 가장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자고(무력 1박에 2만원), 뚜벅이로 생활하며, 비행기는 그간 쌓아둔 마일리지도 구매한다고 말하니 별 말없이 허락해주었다. 그렇게 다는 6.20일 오후 4시에 최종 승인(?)을 받고 비행기 티켓을 구매한다. 바로 6.21일 06:50분 아시아나 8911편. 비행편의 숫자에 911이 들어간 것을 보고 내 마음의 비상사태를 이 비행기가 잘 알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을 먹고 아들과 느지막이 산책을 하기로 약속했기에-이미 어제 약속한 것- 밤 12시가 다 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잠시 감았던 눈을 다시 뜨니 새벽 3시 반. 공항버스를 타러 갈 시간이었다.


 버스는 4시 50분에 서현역에서 출발하는 공항버스 첫차인데 놀랍게도 만석이었다. 나처럼 새벽부터 여행을 떠나 하루를 온전히 즐기고 싶은 분들이 이렇게 많구나. 여하튼 놀랐다. 버스는 아무도 없는 경부고속도로와 올림픽대로를 신나게 달려 5시 45분에 나를 김포에 내려주었다. 체크인을 위해 바삐 내려서 출발층으로 이동하는 사람들과 달리 모바일 체크인을 해둔 터라 나는 일부러 보라는 듯이 여유있는 발걸음으로 패스트푸드 점을 향한다. 6,600원의 불고기 버거 세트로 아침을 때우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탑승구로 향한다. 그리고 정확히 1시간 후 제주에 발을 딛는다.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우도로 가는 차편을 알아봤다. 25살, 청춘의 한가운데에 있을 적에 와이프랑 한번 방문해본 그곳. 신비한 동굴과 아름다운 해변이 기억나지만 온전히 구석구석 보지 못했다. 한데 어느 부자 예능프로에서 배우 김현성 씨가 아들과 우도를 다녀온 장면을 보고 우도를 가보고 싶었다. 가족들과 여행을 온다면 잘 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하고 차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또한 우도 옆의 비양도-비양도는 동쪽 끝에 1개, 한림 쪽에 1개 총 2개가 있다-가 백패킹의 성지라던데 얼마나 좋은지 가보고 싶었다. 만약에 가서 좋다면 나중에 아내와 단 둘이서 캠핑을 하러 한번 오리라.


 제주공항에서 우도로 가기 위해서 110번 버스를 탔다. 서울에서 쓰던 카카오 교통카드를 여기서도 쓸 수 있는 게 조금은 신기했다. 버스에 타자마자 설렘도 잠시 새벽부터 걸음이 나를 졸음으로 빠져들게 한다. 한 참을 자고 일어나니 버스는 성산일출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종점인 성산포항에 내려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었으나 사람들이 아무 말하지 않고 모두 향하는 곳으로 나도 총총 따라갔다. 우도 배편을 왕복으로 끊고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로 발걸음을 향한다. 곧 배에 오르니 모두들 3층으로 가는 게 아닌가. 배의 제일 위에서 바다를 즐길 참이었던 것 같다. 역시 나는 따라간다. 우도로 향하는 배는 거침 바람을 마주하고 갔다. 태양은 강렬하고 파도는 거칠었고 바람은 거세였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나의 설레는 마음을 막지 못할 것 같다. 우도에 내려서는 걷기로 결심했다. 걷기가 건강에도 좋지만 우도의 구석구석을 자세히 보고 싶었다. 존경하는 나태주 시인께서 자세히 봐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도 오래 자세히 보고 싶었다. 올레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길가의 활짝 핀 수국이 나를 반겼고, 어느 담벼락의 산딸기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산딸기는 어릴 때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본 이후로 근 30년 만인 것 같았다. 걷길 잘했다고 다시 한번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우도 등대에 내 몸은 다다른다. 이마와 목덜미의 땀은 나를 축축하게 적셨지만 시원한 바람은 그걸 상쾌하게 만들어주었다. 바람이 신기했다. 바람 속에 따뜻한 여름과 시원한 가을이 같이 느껴진다. 어떻게 이렇게 반반이 섞여 있을 수 있을까? 아무리 좋은 선풍기, 에어컨도 이런 바람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 같다. 만약 제주 바람을 구현해 선풍기나 에어컨을 출시한다면 그야말로 대박이겠다.


< 우도의 올레길에서 만나 꽃들과 들판, 그리고 바다 >



 우도의 산과 들, 그리고 바다는 너무나 포근하게 나를 안아 주었다. 마치 엄마같이. 우도 한 바퀴를 걸어야 하기에 나는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동굴을 지나고 해변을 지나 묵묵히 걸었다. 걸으면서 계속 오른쪽만 보다 보니 목이 살짝 아팠지만 괜찮았다. 지나가는 자전거와 스쿠터에는 가족과 연인, 친구들이 3355 같이 타며 여행을 즐기고 있어 조금은 부러웠지만 나 스스로 걷는 것에 대한 뿌듯함도 있었다. 나는 혼자지만 뿌듯했다. 우도에 갔던 목적 중 하나가 우도 끝에 있는 비양도를 가보고 싶어서였다. 항구에서 2시간 정도를 걸으니 비양도에 도착했다. 내 다리와 배낭을 멘 어깨는 무거웠고 더운 날씨에 탈수 증상도 있었다. 비양도 입구에 설치된 쉼터에서 신발을 벗고 누워본다. 쉬워하고 편했다. 딱 10분만 누웠다 가리라. 10분 후 나는 힘차게 일어나 비양도로 들어간다. 비양도는 우도 옆의 아주 작은 섬. 섬이라 하기도 민망한 언덕 같은 곳이었다. 비양도에서 캠핑으 하는 모습을 TV와 사진으로 접하고는 너무 부러웠는데 그 현장을 가본다니 신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캠핑을 할 수 없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자리만 잘 봐 두고 다음에 아내랑 같이 꼭 오리라. 비양도의 바다는 너무나 애매랄드 빛이었다. 바람은 시원했고 해녀분들은 물질을 막 하고 올라오고 계셨다. 나는 섬의 끝에서 바다를 보다 돌 사이에서 삐쭉 나와 있는 '게'를 만났다. 실로 내가 본 돌게 중에 최고로 컸다. 한번 잡아보고 싶었다. 주변에서 짝대기를 하나 주워서 20분 정도 그 게랑 실랑이를 했다. 하지만 절대 쉽사리 나에게 그의 몸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집게발을 앞세워 공격했다. 실랑이 끝에 원정팀인 내가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본인의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십분 살려 게는 돌 사이를 이리저리 빠르게 뛰어다니고 물속으로 도망 다녔다. 나는 게가 이렇게 빠른 것은 처음 본다. 돌 사이를 다리는 모습은 단독 찬스를 맞이한 손흥민의 움직임이었다. 나는 손흥민에게 완벽한 골을 얻어맞은 번리의 골키퍼처럼 옆에 주저앉고 만다. 내가 졌다. 


< 비양도 >


 아참. 점심은 대체 무얼 먹었냐고? 비양도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해변을 마주했다. 그 해변에서 '해물라면'집을 발견하고 나는 곧장 들어간다. 우도에 걸으면서 많은 해물 라면집을 만났지만 간판을 보고는 썩 달갑지는 않았다. 너무 해물라면 글자와 사진이 커서 마치 '저희 맛은 없는데 관광 오셨으니 드세요~'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깔끔하면서도 간판이 요란스럽지 않은 곳을 찾았다. 딱 그 해변에 그 가게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두 번 놀랬다. 하나는 해물라면의 가격-한 그릇에 15,000원!!! -과 또 다른 하나는 시원한 국물 맛. 정말 국물은 일품이었다. 만약 어제 거하게 술을 한잔 했더라면 오늘 이 라면은 더 끝내주었으리라.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해물라면을 마시고 있는 내 모습이 실감이 나질 않았다. 언제 또 살면서 혼자 이곳에서 이런 라면을 먹고 있을까. 실로 감격스러웠다. 


 

< 우도에서 먹은 해물라면 >

 

 해물라면을 먹고는 나는 다시 항구로 향한다. 10시 반에 섬에 들어왔고 한 4시간 정도 돌았으니 이제 돌아갈 때도 되었다. 3시 배편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바삐 발걸음을 옮긴다. 뜨거운 태양 앞에 내 팔, 다리는 이미 잘 익은 고기가 되었지만 상관없다. 이 태양도 이 뜨거움도 고맙게 느껴지는 하루다. 이상하게 돌아오는 배에서는 모두들 경치를 구경하기보다 객실에서 쉬었다. 너무 사람이 많아서 앉을자리도 없을 정도로. 왜 다들 시작과 끝은 이렇게 다를까. 명절에 어느 라디오에서 들은 적이 있는데 가장 사고가 많이 나는 시기는 명절 이후 집으로 돌아오는 시점이라 한다.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조급한 마음에. 돌아오는 길도 여행이라 생각하면 조금은 그런 사고가 줄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도 돌아오는 배편에서는 힘없이 꼬꾸라진다. 


작가의 이전글 #4 나는 이제 그만 열차에서 잠시 내려오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