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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스카 Jun 15. 2022

#4 나는 이제 그만 열차에서 잠시 내려오기로 했다.

처음에 정말 미쳤었다.

 행복한 가정은 그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리나의 첫 문장이다. 행복할 때는 이 문장의 의미를 머리로만 이해했으나 이제 불행해보니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불행은 모두의 불행이 아니라 오직 나에게만 오는 불행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시작된 생활은 시작부터 엄청난 파도를 몰고 왔다. 가자마자 그간 처리되지 못한 일들을 당장 1,2주 안에 풀어야 했다. 가장 중요한 건 큰 행사가 2주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 실무자도 구성은 하고 있었는데 실질적인 진척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윗 분들은 해야 한다고 재촉만 하고 실제로 지원해주는 것 또한 없는. 그런 샌드위치 같은 상황을 나는 이직한 다음날부터 마주하게 된다. 전쟁 같았다. 긴급하게 행사 일정표를 담당자들과 모여서 짜고 각각의 프로그램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며 바로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보고서라는 게 알다시피 생각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보고서의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한 줄 한 줄 확인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할 사항이 얼마나 많으랴. 그렇게 2~3일에 걸쳐 보고서를 완성하고 보고를 무사히 마쳤다. 하지만 더 큰일이 닥치고 있었다. 행사 때 나누어줄 단체 유니폼이 수백 개가 필요했는데 가을 날씨도 감안해야 하고 신세대 임직원들의 기호와 작년과 겹치지 않게 해야 하는 미션까지. 예전에 같이 일했던 곳의 후배가 그 당시 패션업에 종사했는데 그에게 긴급히 타전을 했다. 단기간에 수백 벌의 고퀄리티 바람막이를  사이즈별로 딱 맞게, 그리고 아름다운 회사 로고를 박아서 납기에 구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 역시 불가능은 없었다. 그렇게 후배를 재촉하고 애걸하며 우리는 행사의 가장 물리적 손품이 많이 들어가는 유니폼 건을 처리한다. 이걸로 큰 일은 끝난 것 같았다.


 헌데, 행사 1주 전 토요일. 아침 9시였던 것 같다. 주말이라 대학원 수업이 있어 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중 윗 상사가 임원이 시킨 것이라고 다른 색상의 유니폼을 별도로 100장 정도 주문하라는 것. 지시사항이라는 딱딱한 텍스트만 내 휴대폰에 나타났다. 머릿속은 복잡하다. 나의 직속 상사는 개인일이 있어 잠시 지방에 가 있어 연락도 어려웠고 나는 판단해야 했다. 일단 내질러 본다. '가능합니다. 팀장님. 준비하겠습니다.' 직장인으로서 항상 이렇게 'Yes Man'이 되어야 하는 게 답답하다. 그 후배에게 또다시 연락해 말도 안 되는 주문을 한다. 그 후배를 비밀스럽게 수량은 맞출 수 있는데 일부 작은 사이즈가 없어서 조금 큰 사이즈만 있는데 어떻게 안 되겠냐고 넌지시 제안한다. 나는 수량만 맞출 수 있으면 조금 커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했다. 일단 수량과 날짜를 맞추라고 했다. 그렇게 난리통을 치르고 실제로 옷이 도착하니 '오 마이 갓' 똑같은 색의 수백 벌이나 되는 옷이 사이즈 구분 없이 섞여서 온 게 아닌가. 오 마이 갓.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밤늦도록 분류작업을 몇 번이고 해댔다. 또한 그 뒤에 주문한 옷들은 여자 S을 주문했는데 사이즈가 없어 남자 M이 온 게 아닌가. 한 사이즈 차이지만 남/여의 체형 차이가 있기에 두 사이즈 큰 거랑 다름이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엎질러진 물이다. 


 우리는 그렇게 급하게 행사 준비를 했고, 당일 행사도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런데 이 모든 준비와 진행 과정은 윗 상사에서 메신저로 일일이 보고해야 했는데 그 상사는 제대로 보고 내용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뒤에 가서 나한테 왜 안 알렸냐고 핀잔과 갈굼을 주기 일쑤였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에게 똑같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행사가 끝마치면 '성취감' 보다는 큰 욕 안 먹고 끝났다는 '안도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직한 지 2주 만에 나는 이 공간에서 성취감을 느끼기보다 안도감을 느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두려움과 안도감을 반복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강한 의문이 들었다. 실제로 내가 이 조직을 온다고 했을 때 알고 지내던 주변의 많은 분들이 거기가 유난히 퇴사자가 많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 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아닐 거다.", "나는 세상 적응력 최고인 사람이다." 등으로 무마하였고 나 스스로 별일 아니라고 치부했던 것 같다. 혹 힘들더라도 앞서 말한 직장생활을 유지하게 하는 4C 중 1개라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 이직을 앞두고 떠난 제주 한림에서 - 텅 빈 항구와 텅 빈 마음이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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