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세상이 멸망하지 않은 이유는 당신의 인내심 덕분이다.
오늘 나는 생리를 한다.
진짜 짜증 난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못해도 인류의 반의 반 정도는 족히 차지하고 있을 생리 하는 여성들이, 어째서 아직도 이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생리하는 여자가 얼마나 위험한데 어째서 그녀들은 이 지구를 부숴버리지 않고 크나큰 인내로 멀쩡한 척 살아가고 있단 말인가. 지금이라도 들고일어나서 생리혈이 나오는 모든 날은 출근을 금지시켜야 하지 않을까?
아, 물론 생리통을 전혀 모르거나, PMS가 전혀 없거나, 몸의 이상이 전혀 없어 그저 피가 나오는 것이 짜증 날 뿐인 축복받은 여자들도 더러 존재하더라. 하지만 나는 하와의 저주를 특별히 입었는지, 극심한 생리통에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치미는 짜증에다가 무려 생리기간 5일이라는 모든 악조건을 가지고 태어났다.
초등학교 6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 시작한 나의 생리는 중고등학교 내내 나를 괴롭혔는데, 그때에는 생리통이 정말이지 어마어마해서 생리를 하는 모든 날 병조퇴를 했다. 게다가 뭐가 그렇게 수치스러웠는지, 중학교 3학년때까지 '생리통'이라는 말을 하지 못해서 그냥 아프다고 울며 조퇴를 했다. 한의원에 가서 내 팔뚝만 한 침도 맞아보고, 한약도 먹어보고, 면 생리대도 써보고 몸에 좋다는 것은 다 해보았지만, 생리통을 이길 방도는 없었다.
생리통이 나아진 것은 임신, 출산 이후에 생리컵을 쓰기 시작하면서이다. 아마도 임신과 출산으로 몸 전체가 한번 뒤집어졌을 것이고, 생리컵의 사용으로 생리대의 화학물질의 영향을 덜 받아서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꼬리뼈가 얼얼해지는 느낌과 '나는 생산을 다 마쳤는데 왜 아직도 피를 흘리나.'의 억울함으로, 잔뜩 예민해진 장 활동과 유독 무겁고 축축한 뇌의 운행까지 겹쳐 컨디션은 진짜로 바닥 중의 바닥이다.
결혼 후에는 생리를 할 때마다 남편에게 미친 듯이 짜증을 내고 있다. 일단 이 고통을 죽었다 깨어나도 저자는 모를 것이라는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 치민다. 아무리 하와가 잘못을 했더라도, 아담 너도 잘못을 같이 했으면, 두 달에 한번 정도는 너도 생리를 경험해야 하지 않겠니?라고 따져 묻고 싶다. 생리를 해볼 수는 없으니 생리대로 인한 찝찝함이라도 느껴보라고 너도 한번 생리대를 착용해보지 않겠느냐 제안했지만 그는 완강히 거절했다. 이토록 나의 아픔을 몰라주는 매정한 남자라니.
근무방식도 잘못되었다. 지금의 생리휴가(보건휴가)는 월에 하루만 쓸 수 있다.(물론 나는 그마저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 하지만 도대체 이 세상에 생리를 하루만 하는 여자가 어디 있는가! 최소 3일~최대 7일을 자랑하는 나의 생리는 한 달의 4분의 1, 일 년이면 3개월이라는 시간을 앗아간다. 상상해 보아라, 당신이 일 년에 3개월간 피를 흘리는데 과연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런데 우리는 제정신으로 살 것을 요구받고 있다. 제일 걱정되는 사람은 수영강사님들이다. 그분들은 도대체 어떻게 한 달 내내 일을 하는 것일까? 그분들의 인권은 누가 보장해 주나? 탐폰을 쓰고 물놀이를 갔다가 새하얀 에어미끄럼틀에 나의 핏자국이 쥬르륵 펼쳐지는 것을 보고 생리 중에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 나의 사연은 나만의 일인 것인가!
PMS호소 게시물을 보면 호르몬 변화로 각자가 얼마나 세상의 파괴에 가담했는지 나열되어 있다. PMS로 인해 갑자기 휴학을 때려버린 대학생 친구부터, 응떡 시켜 먹고 응급실 실려간 용기 있는 위장 친구도 있고, 시시때때로 남자 친구와 헤어짐을 반복하는 관계파탄녀도 있다. 호르몬이라는 것이 자고로 하나만 삐끗해도 삶 전체가 망가지는 것인데, 세로토닌 그거 조금 부족하면 우울증이 오고, 테스토스테론 그거 조금 많으면 여드름 콸콸 나는데, 28일을 주기로 호르몬이 변하는 이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평온하고 단조로울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궐기해야 한다. 힘을 모아야 한다. 생리지원금이라도 줘야 한다. 아니면 그냥 생리하는 날에는 집 밖에 못 나가게 해야 한다. 생리는 옮으니까 다른 여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3일 내내 감금되어 있어야 한다. 생리 중인 여자는 엽떡, 마라탕, 요아정 할인쿠폰 줘야 한다. 생리 중에 아무에게도 욕을 하지 않거나 폭력을 쓰지 않았다면 상을 줘야 한다. 그녀는 친절한 여성상을 받을 가치가 있다. 생리통의 강도를 체크해서 강도 5 이상의 생리통을 느끼는 여성에게는 월 1회 브런치 카페 이용권을 줘야 한다. 3일 이상 생리혈을 쏟는 여성들은 모든 피트니스센터에서 회원권을 25% 할인된 가격에 팔아야만 한다. 기저귀값은 지원해 주면서 생리대값은 어째서 아직도 내 돈으로 사야 하는지 의문이다. 휴가를 주든지, 생리대 값을 주든지 결정해라.
죽지도 않고 매 달 찾아오는, 이미 알고 있지만 늘 새롭게 화나는 생리 첫날. 진짜 모니터 부술 것 같아서 참고 헛소리를 써 보았다. 대부분의 여성들의 뇌는 이 기간에 화가 많이 나 있으니 이해해 주길 바란다. 우리가 조금만 더 화가 나면 세상을 부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우리 모든 여성들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