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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멘탈이슈] 병가를 쓰면 좋을까?

당신은 아는가, 병자의 마음을

by 첫둘셋

오늘 나는 병가를 썼다.


6주째 항생제 먹는 삶이 무색하게 7주째 항생제 먹는 인간이 되어 돌아왔다.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고 믿었던 나의 면역력은 진짜 미친놈이 이렇게나 태만해도 되는 것인지 돌아올 생각을 안 하고 일요일 저녁 다시 발열이 시작되었다. 이제부터는 멘탈 이슈다.


분명 나는 체력이 많이 올라와서 목요일 저녁에 야식을 먹었다. 나는 평소 야식을 잘 먹지 않는데, 역류성 식도염이 있어 조금만 늦게 뭘 먹어도 새벽까지 눕지 못하고 앉아서 소화가 되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꽤나 다음날 컨디션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진짜 어지간하면 저녁 7시 이후로는 잘 먹지 않는다. 거의. 진짜로.


그런데 야식을 먹을 정도의 컨디션이 되었다는 것은 어쨌든 꽤 늦은 밤까지 깨어 있을 수 있는 체력이 되었던 것이고, 그래서 좀 살아난 기념으로 6주째 항생제 먹는 삶을 쓰기도 했고, 금요일에는 간만에 즐겁게 배드민턴도 쳤다. 스스로 게임을 잘했다고 느꼈고, 확실히 예전보다 타율(?)이 올랐다고 생각했으며, 꽤나 민첩해진 자신에 의기양양한 마음도 들었다. 배드민턴 언니들(?)이랑도 조금은 가까워져 함께 맛있는 국숫집에서 들깨 수제비를 먹고, 또 티타임까지 갖고 돌아왔다. 매우 만족스러운 하루가 아닐 수 없었다. 드디어 정상인처럼 사는가 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랬지, 자만하지 않고 토요일에는 정말 충만한 휴식 시간을 갖었다. 하루 종일 잠을 잤는데 11시쯤 한번 깨고, 3시쯤 한번 더 깨고, 딱 애들 밥때만 일어나서 밥 차려주고, 먹고 또 잤다. 하루 종일 자기가 머쓱해서 영화도 한편 봤는데, 요즘 대세인 박정민이 나오는 [변산]을 봤다. 이준익 감독 작품 중에 몇 없는 흥행 실패작이라 박정민이 아니었다면 안 봤겠지만,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작품성과 흥행은 또 아주 비례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나는 그와 개그 호흡이 잘 맞는 것 같았고, 예측 불가능한 싱싱한 캐릭터들의 열연에 아주 만족했다. 박정민 때문에 봤지만, 이준익에게 반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좋은 컨디션을 가지고, 이제 드디어 항생제는 없겠구나 하며 실비청구도 다 마친 상태였다. 자주 아픈 사람들은 마지막 병원 방문일에 모든 실비처리를 한다. 편도염과 질염 모두 실비청구를 하고, 전에 받아두었지만 잃어버린 비뇨기과 영수증을 찾다가, 아니 그냥 다시 발급받으러 또 가자, 하던 참이었다.


다이어트고 나발이고 일단 살아야 해서 먹어댄 결과 체중계에서 54kg라는 숫자가 찍힌 것을 보았고, 절대적으로 큰 수치는 아니지만 놀랍게도 이것은 나의 만삭 몸무게여서 약간의 타격을 받았지만, 아직 덜 회복되었으니 또 잤고, 주일 아침에는 얼굴이 어찌나 빛이 나던지 잘 먹고 잘 자면 이렇게 윤이 나는구나 싶었다. 그러게, 기름 좔좔 흐르는 잘 익은 찐빵 같았다. 남편도 오랜만에 정말 개운해 보인다며 나의 회복을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주일에는 특별히 일 년에 한 번 있는 교회 김장이 있는 날이었다.


중국 친구들이 아무리 우리 문화를 앗아간다 한 들, 절대로 빼앗을 수 없는 한 가지를 고르라면 나는 당연히 김장을 꼽겠다. 한복은 뭐 잘 안 입고 다니니까, 그리고 요즘 현대화도 많이 되어서, 그리고 조선의 한복과 또 고려의 한복과 신라의 한복은 다 다른데, 그 사이에 중국의 영향이 없다고 하기도 애매하기도 해서, 그렇다고 한복이 우리께 아니라는 게 아니라 그냥 그들이 우긴다면, 아니 우기는 것도 웃기지만 그렇다면 또 똥 싸고 자빠졌다 하겠는데, 이건 절대 건드릴 수 없는 문화가 바로 '김장'이라는 것이다.


사실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커서 보니, 그리고 지방으로 오고 나니 정말로, 겨울을 알리는 소리는 집집마다 진행되는 김장소리 되시겠다. 배추 뽑기부터 진짜로 밭에서 시작하는, 놀랍게도 지방은 집집마다 다 자기 밭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의 김장은 이 날을 위해 모두가 일 년 전부터 준비한 듯이 착착 진행된다. 약간 제주도 사람들이 다 자기의 감귤밭이 있듯, 강원도 사람들이 가족 친척 중에 반드시 감자나 옥수수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듯,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한 다리만 건너도 배추를 뽑을 밭을 보유한 것이다. 이것이 어찌 우리의 문화가 아닐 수 있으랴!


심지어 교회에서도 김장을 한다. 가족끼리도 김장을 하고, 기관에서도 김장을 하고, 교회에서도 김장을 한다. 이 시기에는 아파트 현관문을 열면 옆집의 진한 고춧가루 냄새가 난다. 돼지고기 앞다리 뒷다리가 무진장 잘 팔린다. 인스타그램에 각자의 김치 속이 속속 올라온다. 캬, 이게 케이 컬쳐다, 이 말이다. 무튼 그래서 건실하고 튼튼한 중고등부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 2층 주방으로 갔다. 우리의 귀한 영혼들은 하나하나 컨베이어 벨트의 중요한 부품들이 되어 배추를 날랐다. 이제 막 배추 밭에서 뽑혀온 배추의 싱싱함을 당신은 아는가.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자신의 위치를 이탈하지 않는 중고등학생의 성실함을 당신은 아는가. 이들의 젊음과 장년부의 노련함으로 완성되는 교회 김장이 얼마나 숭고한 모양인지 당신은 아는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배추들의 모양새에 뿌듯함과, 밑에서 들려오는 "나머지 30개"에 희망과, "선생님 언제 끝나요."에 새어 나오는 미소를 삼키며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우리는 마늘을 깠다. 마늘 가격이 왜 이렇게 비쌀 수밖에 없는지 중학생들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마늘은 나름 항염효과가 있으니, 마늘 냄새에 눈이 매우면서도 내심 안심이 되었다. 내 몸에 염증들을 물리쳐주렴 마늘아, 이런 마음으로 한알. 집에서 한 번도 마늘을 까 본 적 없다는, 그렇지만 비닐장갑을 끼고 열심히 까대는 아이들의 모습에 귀여워하며 또 한알. 그렇게 커다란 다라이 반절까지 매끈한 마늘을 깠다.


눈이 따가웠다. 마늘이 매콤해서. 미세먼지가 안 좋아서. 날이 건조해서.


조금 피곤한 듯하여 3층 유아실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따끈따끈 보일러가 찌뿌둥한 몸을 녹여줬다. 눈이 따가웠다. 아직도 마늘이 매콤한 걸까? 그래봐야 한 시간 반 정도의 노동이었다. 그 뒤로 5시까지 휴식을 취하고, 애쓴 중고등부 친구들을 데리고 애슐리에 가기로 했다.


애슐리에 갔다. 못 먹겠다. 그제야 따가운 눈이 마늘이 아니라 열이 나서라는 것을 알았다. 왜 미리 알지 못했을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어제까지 너무 잘 잤으니까. 항생제 복용도 끝났고, 이제 컨디션은 오름세라고 생각했으니까. 6주간 항생제를 먹었다,라고 쓴 것은 완료형이었으니까. 다급하게 일요일에 진료를 보는 소아과에 전화를 했지만, 이미 진료가 마감되었다고 했다.


애슐리는 먹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서 내일은 반드시 병원에 입원을 하리라 다짐했다. 아픈 것과 별개로 정신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왜, 어째서, 이렇게까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만약 이게 독감이라면 나는 한 해에 독감을 세 번 걸린 서른여덟 살이 되는 거다! 밤새 뒤척였다. 이틀이면 될까, 팬티 두 개, 양말 두 개, 칫솔 챙겨서 입원하면 될까? 아이패드를 들고 가면 거기서도 일 할 수 있을까? 분명 아침에는 방어회가 먹고 싶었는데, 다 나았다는 신호가 아니었나? 내 면역력은 다 뒤진 걸까? 이건 사람이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일까? 항생제가 없이, 소염제가 없이, 수액의 도움이 없이 하루를 못 버티는 인간인데? 이게 맞나?


다행히 타이레놀 두 알에 열은 내려줬다. 하지만 침을 삼키지도 못할 인후통이 찾아왔다. 아침 일찍 연구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오늘 병가 내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죄송할 일 아니에요, 푹 쉬세요. 이렇게 월요일마다 병가를 쓴 게 벌써 4번째 인 것 같다. 최근 7주간 4번이다. 월요일, 화요일만 출근하는 주제에 월요일마다 아프고 있다. 병가를 쓰면 개꿀이라고? 내가 얼마나 무력했는지 당신은 아는가?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면 모르겠다. 대단한 일도 하지 않는다. 연구원으로 출근하면 그저, 6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온다. 물론 일을 한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출근해서도 하고 집에서도 한다. 틈틈이 작업한다. 내가 해야 할 분량의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무리가 될 것도, 스트레스를 받을 것도 없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 최소한의 분량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없을까. 어째서.


질염으로 아팠을 때 진료받았던 산부인과에 갔다. 안 그래도 주말에 한번 더 수액을 맞으러 오라고 했는데, 안 가서 그렇게 되었나 싶어서. 갔더니 그때 맞았던 마늘주사를 처방해 줬다. 편도가 부은 것 같다고 했더니 약도 지어줬다. 항생제, 소염제, 위장 보호제. 아무리 생각해도 이걸로는 안될 것 같아서 집에서 잠깐 쉬다 다시 이비인후과를 갔다. 우리 동네에 이비인후과라고는 말을 못되게 못 해서 안달인 늙은 노인네가 운영하는 곳뿐이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다. 내가 늘 편도가 아프다고 하면 그건 편도가 아니라 인후염이라고 정정하는 정정한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이다. 다른 이비인후과에서는 다 편도염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내게는 선택지가 없다. 그에게 인후염을 진단받고, 비강에 있는 진득한 다량의 콧물을 흡입당한 뒤, 새로운 약을 처방받아 집에 돌아왔다. 그는 독감 검사를 권했지만, 독감은 이렇게 타이레놀 두 알에 열이 내리지 않는다. 주사도 권했지만, 이미 산부인과에서 되게 많이 맞고 왔다.


그리고 시작되는 자책의 시간. 흘러가지 않는 시간 속에서 '살아있다.'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육체를 탓하는 시간. 건강하지 못한 신체에 깃들어 버린 건강하지 못한 정신으로 사고하는 시간. 아무리 삶이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죽음과 가까이에서 삶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있나.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벌써 자식보다 자주 아픈 엄마가 되어버린, 엄마보다 더 아픈 자식이 되어버린 비통함.


'폴 600미터'라는 영화를 보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모험을 하는 그들. 건장한 신체로 암벽을 타는 그들. 그들과 나를 같은 인간으로 분류해도 괜찮은 걸까? 그들은 커다란 도전 앞에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저 집에서 출근도 못하고 죽어가는 내가 같은 인간이 맞을까. 나는 '사람 같은 것'으로 분류해야 하지 않을까. 이 와중에 영어공부라도 하겠다고 자막 안 켜고 영화 본 게 웃음 포인트. 그래서 내용을 잘 이해 못 했다. 아임 쏘리, 이 정도 이해함.


그러니까 나는, 쓸모없어지는 감각을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다. 인간이 응당 가져야 할 덕목은 그의 쓸모, 필요, 존재의 이유 같은 것이고, 병든 나는 이 기본적인 인간의 조건을 굉장히 훼손한다. 말도 안 되는 생각 같지만, 내가 아플 때 하는 생각이고, 이 생각은 사실 몸이 괜찮아지면 또 사라진다.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 생기 있게 잘 살아가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 그냥, 이 시기가 얼른 지나가면 좋겠다. 인위적인 도움 없이 살아가지 못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큰일 났을 법한, "조금 더 심해지면 입원하셔야 해요."라는 말을 과를 가리지 않고 들어야만 하는 시간들이 지나갔으면 한다.


내일은 자주 가는 내과에 갈 것이다. 가서 피검사를 할 것이다. 염증수치야 높게 나오겠지만, 그간 항생제와 충돌우려로 고지혈증 약을 먹지 못했다. 큰 변화는 없겠지만 뭐라도 보고, 뭐라도 실마리를 찾으면 좋겠다. 가서 또 다른 수액을 맞아야지. 내 하루를 연명시켜 줄 현대의학의 혜택을 누려야지. 그리고 내일은 반드시 출근해야지. 목소리가 좀 나오면 좋겠다. 마스크를 쓰고, 추레한 모습으로 밖에 나다니고 싶지 않다. 걱정 어린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아.


내 평생소원은 '건강해지기'이다. 소소하게는 '한 해동안 수액 안 맞기'정도. 그냥, 그래보고 싶다고. 건강하지 못한 몸이 얼마나 정신에 해로운지, 다들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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