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문제로 첫 유럽 여행을 시작하다
내가 유럽에서 가고 싶었던 여행지는 딱 두 곳이었다. 런던과 파리. 두 도시에 대한 환상이 너무 컸어서 그랬든지, 아니면 원래 여행을 즐겨하는 편이 아니라 그랬든지 남들처럼 유럽에 갔으니 전역을 돌아보겠다는 당찬 포부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몰랐다. 영국에 도착한 지 사일만에 다시 떠나게 될 줄은.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학생 등록을 하려고 학교에 찾아갔다. 내 비자를 한참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는 담당 직원. 그녀의 미간이 조금씩 더 깊어질 때마다 내 속은 불안해서 타들어갔다. 직원이 다른 동료에게도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음.. 너 다른 나라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나는 그저 직원만 바라보았다.
"네? 저 지금 여기 온 지 사일 됐는데... 대체 어딜 가요?"
"미안, 그 방법밖에는 없어. 그냥 주말 동안 여행 가는 셈치고 다녀와!"
알고 보니 내 학생 비자에 문제가 생겨서 비자를 다시 활성화하려면 공항에서 비자에 도장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게 진정한 유러피안 마인드인지 직원은 너무 대수롭지 않게 해외여행을 다녀오라는 말을 했고, 그날 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아니, 비자에 불이 떨어진 나는 비행기 티켓과 숙소를 예약해 다음 날 새벽 바로 길을 떠났다.
내가 고른 곳은 네덜란드. 그것도 튤립이 아름답게 피어있는 암스테르담이 아니라, 생전 처음 들어보는 뉘넨이라는 소도시였다. 다행히 마침 여행을 가보고 싶어 했던 학교 후배가 같이 가주어 동행자를 구할 수 있었다. 우리는 두세 시간 정도 눈을 붙인 뒤 새벽 6시 기차에 올라 히드로 공항으로 향했다. 억지로 하게 된 여행이지만 우연한 기회라고 낙관했던 나는 조금 들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쳤던 설레발이 실수였던 건지 공항 면세점에서 립스틱 하나를 사고 돌아다니다가 비행기 탑승 티켓을 잃어먹었다. 혹시 자기 혼자 가게 되는 거 아니냐며 후배는 불안해했지만, 동분서주 뛰어다닌 결과 다행히 아무 문제 없이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이 쉽지 않겠구나...' 하는 불안이 마음속에서 서서히 피어올랐다.
네덜란드 공항에 떨어진 우리는 국제 미아였다. 급하게 온 터라 뉘넨은 물론 네덜란드에 대해서도 찾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믿을 구석이라고는 한국에서 환전해 온 유로와 다른 나라에서도 터지는 영국 유심뿐. 공항 한복판에 서서 부랴부랴 구글맵을 뒤져 숙소까지 타고 가야 하는 버스를 알아냈다. 버스조차 어떻게 타는지 몰랐지만 주변에 있던 사람에게 물어 무사히 버스에 올랐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면 잔잔한 노을이 비추는 길이 보였다. 평화롭고 여유로운, 바쁜 기색이나 불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도시. 빛이 지나가버리고 까맣게 칠해진 유리창 속에 내가 비췄다. 전날까지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도시에 와 있는 나. 하루의 고난을 소화하지 못한 채 앞으로만 가는 나. 그런 내 모습이 참 낯설고 웃겼다.
에어비앤비에서 예약한 숙소에 다다르자 문가에서 서성거리는 호스트 할아버지가 보였다. 그는 우리가 오는 시간에 맞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제일 싸길래 예약했던 이층 집에는 테이블부터 옷장, 침대, 선반까지 할아버지의 취향이 엿보이는 물건들로 가득했다. 우리가 묵을 방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고 테이블에는 게스트를 위한 마을 책자와 둘러보면 좋을 추천지 목록이 놓여 있었다. 손님 맞을 준비를 손수 하셨을 할아버지의 모습이 상상됐다. 고작 집 한 번 둘러본 게 다지만 할아버지의 섬세하고 철두철미하면서도 친절한 성격이 느껴졌다. 할아버지를 철석같이 믿게 된 우리는 할아버지 추천에 따라 식당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길가에 정갈하게 정리된 화단은 푸릇푸릇했고, 길에는 쓰레기 하나 없었고, 집집마다 꽃으로 창틀을 꾸며놓았다. 때마침 하늘에는 새빨간 구름이 떠있었고, 동네는 조용했고, 길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존재가 평소의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을, 무모하면서도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되었다는 생각에 가슴속에 무언가가 싹트듯 간질거렸다. 피곤이 쌓인 탓에 자꾸만 생각이 느려졌고, 모든 것이 더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다.
조그마한 상가들이 모여있는 곳에 다다러 우리는 새파란 간판이 인상적인 지중해 음식점에 들어갔다. 푸르른 외부와 다르게 내부에서는 캔들의 아늑한 빛이 일렁이고 부드러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주인아주머니는 작은 동네에 찾아온 이방인이 신기한 눈치셨다. 주인아저씨는 살랑살랑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셨다. 우리가 갖고 있던 카드로 결제가 안 돼서 중간에 유로를 가지러 홀로 숙소에 다녀와야 했지만, 끝까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더 놀랍지도 않았다. 얼렁뚱땅 지나가는 첫 모험의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할아버지와 티 타임을 가졌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함께한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겠다는 후배를 따라 나도 덩달아서 찍었다. 사진 속 퉁퉁 부은 얼굴을 보니 이 사진은 영원히 사진첩에 잠들어있겠구나 싶었다. 전날 밤 알고 보니 이 마을에서 반 고흐가 잠시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마을을 둘러보러 나갔다. 그제야 반 고흐 이름이 쓰여 있는 거리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아늑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레스토랑이 줄지어있던 지난밤과 달리 거리에는 문을 연 가게들이 아침 특유의 활기찬 에너지를 품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찾아갔던 반 고흐 미술관은 아주 작았지만 직원들이 친절했고 우리에게 뭐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작은 미술관을 끝으로 우리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예전부터 영국이 꿈의 나라였던 탓에 자연히 나는 유럽을 떠올릴 때마다 영국을 먼저 그렸다. 빅벤, 타워브릿지, 버버리 코트,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창백한 낯빛을 한 사람들. 하지만 돌아와서 다시 보는 영국은 어딘가 달랐다. 내가 믿고 있던 유럽의 풍경이 달라졌다. 영국은 유럽의 유일한 도시가 아니었다. 유럽 어딘가에는 나보다 키가 훨씬 크고, 자전거를 자주 타고, 집집마다 반 고흐 그림이 그려진 접시를 가진 사람들이 살았다. 그곳에 머물렀던 시간은 48시간이 채 안 됐지만, 정체 모를 모험심으로 여행을 꿈꾸는 싹을 틔워내기엔 충분했다. 거기다 예상치 못하게 알게 된 지혜가 늘어났다. 아무런 준비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숙소 호스트와 꼭 대화를 나눠볼 것, 여행에서는 많이 걸을 것, 그리고 네덜란드 어딘가에 고흐의 그림처럼 진한 노을빛이 드리우는 마을이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