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간다던데, 바다로 갈 수는 없는 걸까
최근 10개 회사가 협업하는 프로젝트가 끝났다. 일정이 촉박했던 만큼 의사전달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고, 디자인 퀄리티에 있어서도 100% 만족하지는 못하겠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라는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물어 내 나름대로 분석해봤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 한 케이스를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1. 일정이 촉박한 경우
일정이 촉박해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못한 상태로 피드백을 전달한다 > 수정하는 회사는 다양한 의견 자체를 취합하는 데 시간을 쏟고, 상충하는 두 의견 중 어디에 초점을 둬야 할지 질의한다 > 미묘한 사회적 위치 때문에 두 의견 둘 다 중요하다는 논쟁이 벌어진다 > 의도가 사라진 결과물
2. 결정권자가 함축적이고 애매한 표현을 쓸 경우
표현에 대한 해석이 사람마다 달라진다. 그렇다고 다시 가서 이게 맞냐고 물어볼 사람은 없다 > 각자의 해석이 담긴 alt를 작업하느라 시간을 다 쓴다 > 퀄리티 하락
이번 프로젝트는 1번이었고, 우리는 1차 작업물 전달 후 추가 작업사항을 보내 최종 작업물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작업물을 받고 우리가 1차적으로 수정사항을 입력하면, 클라이언트가 가감해 피드백을 전달하는 프로세스로 진행했는데, 왜인지 우리의 의견은 일정 수준 이상 반영되지 않는 것이다. 왜 미반영되었냐고 물어보니 그 답변은 “일정상 모든 피드백을 반영할 수도 없고, 애초에 내용이 이해가지 않는다.”이었다. 같은 내용을 클라이언트가 전달하면 반영한 걸로 미뤄보아, 이 업체는 전략적 선택을 한 것 같다. ‘결국 돈을 주는 곳은 클라이언트이니, 클라이언트 의견을 위주로 반영하고 나머지는 적당히 뭉개고 넘어가자.’
저 답변에는 ‘우리가 1차 작업물을 늦게 넘겨줬다’는게
전제로 깔려있었는데, 이는 서로가 생각하는 1차 작업물의 완성도가 달라서 생긴 오해다. 상대 회사에서는 모델링이 거의 완성된 작업물을 받아 일부 수정과 렌더링만을 하겠다고 했고, 이로 인해 원하는 작업물이 넘어가는 시점이 늦었다고 오해한 것 같다. (참고로 일반적인 상황보다 높은 요구사항이었다.) 그러나 도면&마감&간단한 모델링&디자인 레퍼런스는 예전부터 넘어가 있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일정은 맞춰야 하고, 피드백을 반영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중요한 의견부터 반영해야 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1차 작업물의 수준을 협의하고 피드백 수정기간/범위를 미리 협의했더라면.. 우리가 이에 맞는 대응을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점이다.
작업 기간을 더 주던, 일정을 조율하던, 옵션은 무궁무진했는데 이 기회를 날려버려서 그게 참 아쉬웠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1. 프로젝트 프로세스와 대략의 일정을 파악한 후 수정 업체와 협의한다
2. 수정사항을 반영하지 못할 정도로 일정이 촉박하지는 않은지, 수정사항이 어느 정도 양일 때 소화 가능한지, 최소 작업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등등의 디테일 내용을 조율한다.
3. 이때 업체가 말한 작업시간/범위를 어떤 형태로든 증거로 남겨둔다. (중요)
4. 합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피드백을 진행한다
이 과정이 (유선상으로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정이 빠듯하다는 이유로 이 과정을 소홀히 했더니, 업체에서는 작업 상황 공유를 해주지 않아 피드백이 느려졌고, 느려진 피드백을 무기로 부실한 결과물을 내밀었다. (받았을 당시에는 화가 나는 걸 넘어서 허탈했지만.. 일은 어떻게든 해야지 어쩌겠는가)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프로젝트였고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지만 참 많은 걸 배웠다. 다음에는 더 노련하게 대처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