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 편지 못 부쳐서 미안해. 하지만 당신의 새 주소를 모르는 걸.
리처드 파인만이 사별한 아내 알린 파인만에게 쓴 편지의 추신이다.
보낼 수 없는 편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사람이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쓴다.
'서간체 에세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편지다. 편지는 오롯이 그 사람을 위해 쓰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서로를 위해서 편지를 쓴다. 상대방에게 닿을 수 없을지라도.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해. 내 아내는 죽었지만'
라고 담담하게 인정하는 마지막 문장 이후에
추신: 편지 못 부쳐서 미안해. 하지만 당신의 새 주소를 모르는 걸
라고 썼다.
좋아하는 문장을 공책에 써본다.
내 손에서 피어난 문장이 마치 내 문장 같다.
그는 왜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썼을까. 편지의 본문에 이런 문장이 있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문장이 많은 편지다.
'여보. 나는 당신을 사랑해.
당신이 이 말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 하지만 당신이 좋아하기 때문에 쓰는 것만은 아니야.
이 말을 쓰면 내 마음이 온통 따스해지기 때문에 쓰는 거야.'
그는 아내를 위해, 자신을 위해 편지를 썼다.
편지 내용이 꼭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편지를 쓰는 동안 온통 그 사람 생각에 잠기고 그 사실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 편지의 본질이지 않을까.
그는 전달할 수 없음에도 썼다. 자신의 마음이 온통 따스해지기 때문에.
그가 왜 편지를 썼는지, 왜 보내지 못했는지
아마 오랫동안 내 안에 남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때면 상대방과 함께 이 편지의 추신을 떠올릴 것이다.
언젠가 닿을 수 없는 편지를 쓰게 된다면, 그럼에도 쓸 수 있음에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