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에 대한 동경과 의구심

견디는 것에 대하여 ep.04

by 조수연

꽤 오래전, 처음 직장을 잡고 월세방을 구하던 때가 생각난다. 학교를 막 졸업한 상태였기에 수중에 돈은 없었고, 되려 학자금 대출만 가득 진 채 무거운 마음으로 이리저리 집을 둘러봤던, 막연하고도 서글프던 그 기억. 나의 대학시절 역시 이사에서 이사로 이어지던 기억밖에 없다.


낭떠러지 같은 계단으로 겨우 짐을 지고 올라갔던 옥탑방과 풍파에 찌든 나이 든 길 고양이처럼 사납게 생긴 할머니가 내 방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잔소리를 하던 작은 셋방, 그리고 옥상 가장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위치한 조금 더 저렴한 옥탑방으로. 그런데도 늘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해서 집주인의 짜증 섞인 연락을 받아야만 했다. 매 학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롤러코스터 같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스릴의 즐거움 대신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에 멀미를 심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게 늘 고달프고 힘이 들어서였는지 20대 중반까지의 기억은 딱히 남아있는 게 없다. 내 기억에도, 내 마음에도. 4학년이 될 때까지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고 등록금을 마련해도 늘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가족 모두 열심히 돈을 벌었지만, 끝내 '고만고만'한 삶에 탑승하지는 못했다.


돈이 사람을 미안하게 만든다는 것을 나는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늘 미안해했고, 나는 월세를 내지 못해 집주인들에게 매달 미안해했다. 나에게 있어 돈은 누군가에게 항상 미안해해야만 하는 것이어서 하루빨리 미안해하지 않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했지만, 그날은 그리 쉽게 오지 않았다.


그 무렵 아빠는 소규모로 운영하던 공장에서 크라운산도 모양의 전자 부품을 만들었었다. 크라운산도 모양 외에도 투명한 유리구두처럼 생긴 뾰족한 부품, 긴 사각형의 크래커처럼 생긴 부품 등 모양은 늘 다양했는데, 손바닥 보다 작은 크기의 동글 납작한 부품 두 개를 잘 포개어서 납품 박스에 담아내야 하는 그 제품이 내 기억에 가장 생생하다.


어떤 때는 일이 없어서 빚독촉에 시달렸고, 어떤 때는 파도처럼 들이치는 물량에 잠잘 새도 없이 노동에 시달렸다. 대부분의 가난한 서민들의 삶이 그러하듯 우리는 계속해서 무언가에 시달렸다. 이유를 알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정해진 환경과 그 세계 속에 내던져졌기에,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낙오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충실히 받아들여도 삶은 별로 편해지지 않았지만, 낙오하면 그 끝은 가늠할 수 없는 바닥이었다.


나는 지금도 이 시절을 무어라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행복하게 살았다 생각했지만, 사실 그런 건 애초부터 행복하기 힘든 환경이라는 것을 이제야 인정하겠다. 마음과 자세가 중요하다는 건, 달콤한 자기 최면이 아닌가. 기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었다. 내가 현재 처한 상황을 개선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사람은 그때부터 그 환경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게 중요하지만, 희망이라는 그 아름답고도 원대하며, 추상적인 대상을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희망을 가진 자는 사는 동안 희망에 대한 동경과 의구심을 반복하며 살아갈 뿐이다.


그래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아무도 만져본 적은 없지만, 그것마저 사라진다면 삶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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