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창 순대와 먹고 사는 일

견디는 것에 대하여 ep.05

by 조수연

"서울서 왔어? 여기 토박이는 아닌 거 같구."

뜨끈한 순대 한 접시를 내어주며 주인아주머니는 내게 물었다. 흥미로울 법했다. 평일 이른 아침, 아직 좌판이 깔리고 있는 시장에 혼자 찾아와 피곤이 저며든 얼굴로 순대에 소주 한 병을 달라 말하는 손님이.


나는 답을 찾느라 소주 뚜껑을 따려던 채로 잠시 어버버 말을 고르고 있었다. 순간 내가 어디서 여기로 왔는지 퍼뜩 생각이 나질 않았다. 서울, 충북, 대전, 경남, 파주, 전북, 경북…. 그간 헤매고, 떠나고 또 주저앉았던 도시들이 짧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이 도시로 오기 전, 어디에서 왔었던가. 첫 시작은 어디였나. 고향을 떠나온 지도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생의 절반을 고향에서, 나머지 절반의 생을 정처 없이 떠돌며 살았으니 나도 이제는 내가 어디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주인아주머니가 툭 던지는 그 심플한 질문이 내게는 꽤나 심오하고도 어려웠다.


"서울에서 왔어요. 일 때문에 여기서 지낸 지 1년 정도 됐습니다."

그냥 서울에서 온 것으로 해두자 싶었다. 어차피 내가 어디에서 왔는가는 저 아주머니에게도 내게도 그리 중요치는 않을 테니까. 그보다도 지금 이 순간 나에게는 뜨끈한 순대 한 점과 소주 한 잔이, 주인아주머니에게는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개시한 마수걸이가 훨씬 의미 있는 일일 테니까.

"자, 많이 드셔. 여기 뜨끈한 국물부터 먼저 잡숴요. 아직 날이 많이 추워."

핏발이 선 눈에 초췌한 얼굴로 대충 패딩을 걸친 내 모습이 스테인리스 테이블에 얼룩져 비쳤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식당 안에는 아직 냉기가 돌았고, 밤샘 작업으로 쌓인 피곤 때문인지 차가운 스테인리스 테이블을 짚는 손끝에서 짜르르- 몸살 같은 소름이 돋았다.


이번 제안서는 꽤 오랜만의 작업이었다. 한동안 여러 기관의 PM 업무를 쳐내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빴기에 입찰은 들여다볼 새도 없었다. 보통 11월까지 연간 과업을 모두 끝내고 나면 다시 제안서 작업으로 정신없이 바빠지는 게, 변수 투성이인 이 업계의 루틴이라면 루틴이었다. 이번 입찰 건은 K지역 도정 SNS 콘텐츠와 발간물을 제작하는 연간 과업이었는데, 대표가 작업 전부터 은근히 수주에 대한 압박을 주는 바람에 나도 제법 신경이 쓰였다. 제안서를 제출하고 회사를 나서니, 새벽 6시를 막 넘어가고 있었다. 연말 연초 무렵, 늘 연례행사처럼 치르는 밤샘작업이었지만 이번 작업은 유난히도 피곤하고 더디게 느껴졌다. 새로운 디자이너와 손발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거니와 평소에는 관여도 않던 대표가 손바닥 뒤집듯 기획 방향을 자꾸 수정하는 바람에 제안서 컨셉을 몇 개나 뽑아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닌 건 아니라고 무 자르듯 단칼에 잘라내는 성격이라면, 그는 볕에 꼬들꼬들하게 잘 말린 무말랭이 같은 성격이었다. 잘리는 듯하다가도 능글맞게 다시 달라붙고, 능청스럽게 요리조리 모양을 바꾸면서 질기게 고집을 부리는 그의 성격을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타고난 성격도 성격이겠지만, 어쨌든 이런 것이야말로 바로 무시할 수 없는 연륜일 것이었다.


"휴우-"

차가운 소주가 내 빈속의 장기를 하나하나 빠짐없이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 나온 국물에는 다진 파와 후추가 뿌려져 있었고, 모둠 순대 한 접시에는 막창 순대, 병천순대, 오소리감투, 염통 등 두 어가지의 순대와 여러 내장이 섞여 있었다. 쫀득하면서도 부드러운 막창 순대가 마른 입안을 감쌌다. 돼지의 창자 안에 이런저런 음식들을 다져서 꼭꼭 채워 넣어 먹을 생각은 처음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살코기 만으로는 모두가 나누어 먹기에 부족해서 시작된 음식이었을까. 누구의 머리에서 어떻게 시작된 생각이건 간에, 어찌 되었든 결국은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마음에서부터 출발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순대를 꼭꼭 씹으면서 먹고사는 일을 생각했다.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


제안서 PT 날이 되면, 나는 번호와 거짓말의 싸움장에 서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오로지 진실만을 이야기할 것이다. 이용하고 이용당하고 때로는 알면서도 그렇게 하고. 진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항상 진실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거론한다. 진실을 믿는 사람은 그저 뒤에서 조용히 침묵할 뿐이다. 침묵으로 연대하며 서로를 위로할 뿐. 나는 아직은 여전히 진실이 좋다. 내가 아는 진실이 이쪽에 있는지 저쪽으로 넘어가버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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