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회 다녀온 일이 아직 일상은 아니어서 '일상 공감' 카테고리에 묶을 수 있을지 잠시 생각한다. 강연 여행이 일상이 될 만큼 많은 강연 의뢰가 들어오기를 기대하면서.
이런 날은 일찍 눈이 떠지기 마련이다. 아이들 아침으로 유부초밥을 해 놓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지난번에 2~3분 늦었을 뿐인데 기차가 벌써 떠나 버린 기억이 있어서 서둘러 용산역으로 향했다. 참가가 불투명해서 뒤늦게 예매한 탓에 광명까지만 좌석표, 그 뒤부터는 입석표였다. 그런데 뭐 두 정거장밖에 안 되니까. 광명 다음 역이 천안아산역이고 그 다음 역이 오송역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시간이 총 45분밖에 안 걸린다는 것도. 게다가 천안아산역에서 오송역까지는 10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니... 예전 무궁화호를 타고 다닐 때와 비교하면 이건 뭐 총알을 타고 다니는 거나 다름없었다. '라떼는(나 때는)' 영등포에서 천안까지 1시간반인가 2시간인가 걸렸었고 입석 승객도 객차 안에 가득 차서 움직이기도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오송역은 웬만한 공항에 버금갈 만큼 크고 현대적이었다. 느낌상 동선도 자연스럽게 설계되어 있는 듯했다. BRT를 타러 역사 밖으로 나가는 동안의 내 움직임이 조금도 불편하거나 복잡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BRT라는 건 뭘까? 왜 버스라 부르지 않고 BRT라 부르는지 모르지만 그 이름 역시 첨단 도시의 느낌을 주었다.
다른 작가들이 20분 후, 30분 후, 40분 후에 한 사람 한 사람씩 도착할 예정이라 해서 나는 바로 BRT를 타고 1차 모임 장소인 식당으로 향했다. 어차피 만날 텐데 추운 역에서 기다릴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런데 작가들이 두고두고 나를 이상하게 보는 눈치였다. 자기들이 공동으로 기차표를 예매할 때도 거부한 뒤 혼자 따로 끊고, 도착해서도 모여서 함께 가지 않고 혼자 가고, 나중에 일정이 다 끝난 뒤의 일이지만 돌아올 때도 왜 다른 칸을 끊어서 혼자 가는지 자꾸 물었다. 같은 칸에 자리가 없었다고 대답했는데도 몇 번을 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그냥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갔다. 그런데 잘난 척하고 혼자 가다가 벌을 받았는지 그만 하차할 정류장을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느낌상 좀 더 가야 할 것 같아서 천천히 노선을 확인해야겠다 생각할 즈음에 기사 아저씨가 종점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벌써? 난 좀 황당해 하며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그래도 뭐 시간은 넉넉하니까. 온 길로 되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간다 해도 내가 조금 빨리 도착할 터였다. 만약에 내가 헤매다가 늦게 도착했다면 꼴이 좀 우스워질 뻔했다. 왜 혼자 가느냐고 물은 작가들이 자기들보다 늦게 도착한 날 보고 얼마나 우스꽝스러워 했겠는가. 그러나 그럴 염려는 없었다. 조금 헤맸어도 내가 더 빨리 도착했으니까.
식당에 들어가 예약을 확인하고 잠시 앉아 있으니 작가들이 한 무리씩 들어왔다. 반갑게 인사하고 우리는 수다를 떨며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전염병으로 인해 행사가 중단되었다가 겨우 다시 속개된 터여서 몇 년 만에 다시 만나는 건지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몇 년만에 본 그들은 서글프게도 다들 좀 늙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표현하면 안 될 테니 무의식마저도 단속해야겠다 싶었다.
점심 식사 후 우리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들을 들고 각자 배정된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가면서 이 지역이 Y작가가 교장으로 근무하는 학교 부근이라는 걸 알았다. 이제 40대인 Y작가가 교장이라니, 내가 깜짝 놀라자 공모 교장이라나 뭐라나 새로 생긴 제도에 따라 지원해서 당선된 교장이라고 한 작가가 설명해 주었다. 전에 세종시 각 학교 선생들로 구성된 동화 창작 모임에서 창작 강연을 한 적 있었는데 이 지역 선생님들은 거의 20대가 주류이고 30대 중반만 해도 나이 든 편에 속한다고 전해 들었다. 그런 사정을 감안하면 40대 선생이 교장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다 싶었다. 나는 '세종시는 참 젊은 도시구나', 하고 생각했다.
도서관에 가 보니 그 생각이 맞는다는 듯 사서 선생들도 모두 20대의 젊은 여성들이었다. 사서 선생의 안내에 따라 건물 곳곳에 있는 강의실에 들어가 보니 시설이 너무 훌륭했다. 강의실뿐 아니라 2층 옥상 위에 있는 무대며 객석 등과 건물 내의 각종 시설과 커뮤니티 공간 들이 주민 수에 비해 차고도 넘쳐 보였다. 나중에 Y작가에게 세종시 인구가 얼마나 되냐고 물으니 40만이라고 대답했다. 차를 타고 다니며 시내 여기저기를 바라본 소감은 세종시는 현 인구의 두 배 이상은 더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도시 같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성인반, 청소년반, 초등 고학년반, 초등 저학년반 강의실로 각자 흩어져서 강연을 하기로 했다. 난 각 반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주고 저학년반 강연이 끝난 뒤 사인회 때 합류해서 어린이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 주기로 했다.
도중에 재미있는 소동도 있었다. 내가 J작가의 강의실로 들어가 사진을 찍어주고 나와 다음 강의실로 들어갔는데 거기에 또 J작가가 있지 않은가? 난 잘못 들어왔구나 싶어 허둥지둥 돌아나왔다. 강의실 문이 앞쪽에만 있어서 청중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나와서 다시 살펴보니 내가 같은 강의실에 두 번 들어간 건 아닌 게 분명했다. 휴대폰을 켜서 사진을 확인해 보니 A작가가 찍혀 있었다. 분명 J작가를 찍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머릿속에서 에러가 난 것이었다. 내가 A작가를 찍으면서 J작가를 찍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고는 다음 강의실로 들어갔는데 거기에 또 J작가가 있었으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나중에 생각하니 알 것 같았다. 내가 쓴 안경이 2미터 내의 근거리용 안경이었기 때문에 사람을 잘 못 알아본 것이다.
저녁때 숙소로 돌아와서 강연 결과를 발표할 때 그 얘기를 하니 작가들이 모두 웃었다. 옛날 같으면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졌겠지만 이제는 뭐 그럴 수 있지, 하고 생각하며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별일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 난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런 소동도, 기차표를 함께 끊거나 따로 끊는 일도, 먼저 가거나 기다렸다가 함께 가는 일도, 함께 앉아 나란히 가거나 다른 칸에 앉아서 가는 일도 내게는 이제 별일 아닌 일이었다. 아직 젊은 작가들은 그런 디테일한 일들이 중요한 일이고 큰 차이로 느껴지는 모양이었지만 내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처럼 여겨졌다. 감각이 둔해졌고 더 큰 일들에 비하면 삶의 그런 사소한 감정들은 무시해도 좋을 일이 되어 버렸다. 서글프게도 그들은 아직 삶의 한가운데 있고 나는 삶의 끝부분에서 안쪽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J작가는 내가 다시 사진 찍으러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다는데 난 다시 강의실로 들어가지 않았다. 도중에 그 강의실에서 나온 사서 선생에게 J작가의 사진을 찍었느냐고 물으니 찍었다고 해서 그렇다면 내가 다시 찍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때 저학년 강의를 맡은 작가가 전화를 해서 나를 불렀기 때문에 나는 얼른 저학년 강의실로 가서 사인회를 했다. 어린이들에게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이라는 설명을 해 주고 테이블에 쌓여 있는 내 책에 사인을 해 주었다.
강연을 마치고 우리는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어느 신도시나 호수 공원이 있기 마련인데 세종시의 호수 공원은 유난히 깔끔하고 청량해 보였다. 공기가 맑아서일까, 널찍널찍하게 떨어져 있는 건물들 때문일까.
호수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우리는 간단히 장을 봐 가지고 숙소로 갔다.
거실에 둘러앉아 다과를 나누며 우리는 오늘 있었던 강연에 관한 평가를 하고 다음 행사 일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회의가 끝나고 술을 마시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나만 늙고 다른 작가들은 도서관 사서처럼 젊다고 생각했는데 아니구나. 나에 비하면 아직 젊지만 이들도 이제는 많이 기울고 있구나 하고. 그 증거가 바로 술을 마시는 내내 나누는 대화였다. 그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계속해서 죽음과 건강에 관한 이야기만 나누었다. 중간에 행복했던 일, 기뻤던 일 쪽으로 화제를 돌리려 애썼으나 한두 마디 나누다가 다시 죽음과 건강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전염병이 휩쓸고 지나간 그 사이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중년의 수굿해진 모습으로 나타난 작가들이 이 젊고 화창한 도시에 모여 앉아 밤이 깊도록 나누는 대화를 듣자니 세월의 강을 건너기 전의 활기찼던 모습들이 언뜻언뜻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러나 이제 보니 이들도 어리지 않았다. 나보다 젊었기 때문에, 아니면 젊은 시절의 활기찬 모습이 내 머릿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젊다고만 생각했을 뿐.
우리는 새벽 세 시까지 어두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을 자고 아침 8시에 일어나 빵과 시리얼,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고 수목원에 가 한 시간쯤 산책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Ktx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번 강연 여행의 일정과 작가 한 명 한 명을 떠올려 보았다. 예민했던 사람이 둔해지고 활기찼던 사람이 차분해지고 건강했던 사람이 약해지고 목소리 높았던 사람이 낮아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디테일을 잘 못 느끼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발견했다. 열차가 도착하자 플랫폼에서 뒷칸을 향해 걸어가는 나에 관해 "야, 이제 혼자다! 하고 좋아할 거야."라고 K작가가 자기들끼리 말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우스갯소리인지, 조롱인지 디테일하게 해석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내가 디테일을 잃고 있구나, 하는 것과 나이 먹는 일은 디테일을 잃는 것이구나, 하는 것과 나이 먹었다는 티를 내지 않으려면 디테일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야겠구나 하는 것과... 그 비슷한 생각들, 그와 관련된 감정들을 먼 풍경처럼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