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이틀을 제외하고 매일 5킬로미터씩 달린 지 8개월이 되었다. 한 달에 100킬로미터씩 달렸으니 누적 거리 800킬로미터쯤 된다. 돌아보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뛰고 돌아와서 자녀와 친구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이놈의 달리기는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아."
매일 뛰어도 매일 힘들다는 말이다. 왜 이렇게 힘든가를 적어 본다.
첫 1~2킬로미터 구간. 이때부터 허덕이는 날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3~4킬로미터 구간에서 가장 많이 허덕인다.이 구간에서 '오늘 5킬로미터를 다 뛸 수 있을까' 의심하는 날이 많다. 심한 날에는 멈춰 설까 말까, 갈등하기도 한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프고 마음속에서 거부감이 일어난다. 마의 구간이다.
그러나 이 마의 구간이 지나고 어느새 5킬로미터 지점에 거의 다다르면 몸이 다시 가벼워져서 더 뛸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난 의문을 갖는다. 왜 그럴까? 왜 3~4킬로미터 구간에서는 힘들고 5킬로미터 지점에 이르면 몸이 다시 가벼워질까? 더 먼 거리를 뛰었는데.
가만히 관찰해 보면 이 일에 '마음'이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음이 몸을 무겁게도, 가볍게도 하는 것이다. 운동량을 늘려 7킬로미터를 달리기로 한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거리가 늘어나면 마의 구간도 이동한다는 것을. 7킬로미터를 뛰기로 마음 먹자 3~4킬로미터가 아니라 이번엔 5~6킬로미터 구간이 마의 구간이 되었다. 즉, 내 마음이 도착 지점인 7킬로미터를 기준으로 삼아 3~4킬로미터가 아니라 이제는 5~6킬로미터 구간을 고비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후 내가 다시 5킬로미터만 뛰어야겠다고 생각하자 마의 구간이 도로 3~4킬로미터 지점으로 바뀌었다.
마의 구간에 이르러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지금 여기서 달리는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일이 끝날 저 앞 1~2킬로미터 전방 어디쯤을 상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마음은 벌써 얼마쯤 시간이 지난 뒤에 도착할 다음 교차로에, 터널 입구에, 둥지쌈밥집 주차장 앞에 가 있다. 왜 달리기를 하러 나와서 앞의 어딘가를 떠올리며 빨리 끝내고 싶어할까? 달린 지 겨우 10~20분이 지났을 뿐인데 몸이 힘드니 운동을 멈추고 싶다는 간사한 마음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거기에 도착하려면 얼마나 남았나. 빨리 다 뛰고 이 달리기를 끝내고 싶다. 1킬로미터? 5백미터? 얼마나 남았지? 언제 끝날까? 오늘은 이쯤만 뛸까? 5킬로미터를 다 뛸 필요가 있을까? 조금 덜 뛰고 멈춰도 되지 않나? 이 정도만 해도 많이 뛴 거 아닌가?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그만 뛸까?
간사한 마음이 연신 운동을 그만둘 궁리를 할 때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앞을 생각하지 않고 우직하게 '지금 여기'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내 발 밑의 촉감, 지금 스쳐 가는 길가의 나무와 사물 들, 내 몸의 컨디션... 그런 것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내 앞 어딘가에 있는 도착점이나 중간 지점에 관한 생각을 잊게 되고, 마침내 '지금 여기'에서 진행되고 있는 내 움직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마의 구간에서 몸이 힘든 이유는 '지금 여기'에서 진행되고 있는 몸의 움직임을 거부하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앞의 어딘가를열망하기 때문이다. 즉,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착한 뒤의 결과에 욕심을 내는 것이다. 힘듦을 멈추고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 관한 생각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의 움직임을 받아들이기로 하면 달리기가 좀 수월해지는 것이다. 앞의 어느 지점을 미리 상상하지 않고 한 발짝 한 발짝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뛰다 보면 어느새 4킬로미터, 5킬로미터 지점에 이르러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달리고 싶어서 나왔으면 달리는 순간을 즐겨야지 왜 멈추기를 바랄까. 그러다가 막상 다 달리고 멈추면 좀더 달리고 싶어 아쉬워하지 않을까?
그렇더라도 내게 5킬로미터 달리기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 과제를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달리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하루이틀이 지나지 않아 다시 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