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찍던 손목시계 사진을 깜박했다. 갤러리를 보던 중 늘 하던 루틴 중에 한 가지가 빠졌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아직까지 내게 매일 새벽 손목시계 사진을 찍는 건 중요한 과정이다. 내가 일어난 시간, 활동한 시간이 한눈에 보이니까. 언젠가는 새벽 기상이 너무 당연해서 인증 사진 찍는 일도 그만하게 되는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은 의식하지 않으면 일어나는 일도, 사진을 찍는 일도 너무나 쉽게 까먹게 되고 만다.
선선한 가을 새벽이 되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의 공기가 계속해서 바뀐다. 한 시간을 기분 좋게 달렸다. 운동을 끝냄과 동시에 버스 정류장으로 내달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집에 도착하니 6시 40분이 조금 넘어 있었다. 나의 기분은 왠지 묘해졌다. 아직도 6시 40분! 시간을 버는 일은 이렇게 쉽다.
새벽에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주된 이유는 바로, 운동을 위해 나의 다른 스케줄을 양보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오늘 저녁에는 달리기를 할 거야. 그런데 오늘 야근을 하네?(실패) 오늘은 얼른 가서 근력 운동을 해야지. 그런데 오늘 갑자기 친구가 만나자고 하네? 그런데 싫지 않잖아? (실패) 하루의 숙제처럼 운동을 마지막으로 미루어놓고, 치고 들어오는 다른 스케줄로 인해 운동과 일정을 저울질해야 하는 상황들이 싫다.
만약 내가 프리랜서이거나, 또는 오후 시간을 좀 더 유동적으로 보낼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면 괜찮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육아 휴직 중에는, 상대적으로 오후에 여유가 있으니 항상 운동은 점심 식사를 한 직후 해치워버리곤 했다. 아이에 얽매여 오도 가도 못하던 시기에 얻은 한 가지 장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고, 나는 복직을 했다. 개인적인 시간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새벽 4시 30분, 누군가는 일어날 것이라 염두에도 두지 않는 시기, 일어나 운동을 한다. 운동을 끝내도 여전히 꼭두새벽. 나는 시치미를 뗀다. 오늘 아침에 내가 뭘 했게? 물어보지 않으니 말을 할 일도 많지 않다. 일상에 운동이 녹아드는 그 과정이 좋다. 밥을 먹는 것, 양치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생색을 낼 일도 없다.
나는 왜 이렇게 남몰래 운동하는 걸 좋아하는 걸까? 아니, 남몰래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남에게 공공연히 드러내는 게 부끄러운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운동해요? 그래서 그렇게 건강한가 보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괜히 숙연해진다. '그렇게 안 건강한데...' 또는 '근데 딱히 운동신경은 없는데...' 부지런함에 비해 내세우기 민망한 아웃풋. 누군가에게 나의 한결같음을 뽐내며, 더불어 운동 신경조차 한결같음을 들킬까 괜히 두려워 그저 말을 아끼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을 지속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결국 주변에 알리는 것이기에, 나는 꾸준히 SNS에 나의 새벽 운동 기록을 올리고 있다. 지인들은 새벽 4시 33분이 적힌 내 사진 피드에 좋아요를 누르며 조용히 호응해 준다. 몰래 하는 운동보다 누군가 알아주는 운동은 즐겁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운동 기록을 남기는 것일 테다.
모두가 자고 있는 새벽, 운동을 끝낸 뒤 시치미를 뚝 떼고 SNS에 올린다. 누군가가 내 피드를 보고 나의 '새벽 작당'을 눈치채 주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내 일과는 변수 없이 흘러갈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