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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뉴 Sep 27. 2023

전시하는 삶

새벽 4시 30분의 삶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운동하겠어!' 마치 신년 목표와도 같았던 나의 결심은, 별다른 이유도, 계기도 없이 찾아왔다. 예전의 나였다면 한 가지 대단한 결심을 위해 주 초를 노리거나, 못해도 월 초를 노리거나 하며 새로운 도약을 도모했을 텐데, 그때 그 결심만큼은 한 주가 기울어가는 목요일, 8월의 어정쩡한 중순에 이루어졌고, 그것은 그만큼 내가 간절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무엇이 그렇게 간절했을까? 그것은 바로 '방해 없이 나의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매일 저녁 육아에 찌들어 오후로 미루어 두었던 운동을 또다시 내일로 미루는 것이 싫었다. 찌들어 있는 것도 본인, 일을 미루는 것도 본인임에도 그렇게 자꾸만 명분을 만들어 내는 게 싫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야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벽 기상 습관을 이루어내는 초반, 매일매일 글을 썼다. 이렇게나 열렬히 '새벽 기상 너무 좋고요? 운동을 매일 하면 활력이 솟는데요...'라고 구구절절 읊어놓고 갑작스레 글이 뚝하고 끊기면 분명 누군가는 '엇, 이제 이 사람 더 이상 안 일어나나 봐...' 하고 짐작할 것이라 생각했다. 매일매일 글을 쓴 지 만 30일이 지나자 더 이상 매일의 단상으로는 짜낼 수 없는 감상들이 많아지면서, 나의 기록의 텀은 조금씩 늘어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남기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SNS에 업로드하는 나의 '기상 운동 기록'이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운동하는 나를 전시하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지 않던 시기에도 나는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종류는 다양했다. 아웃도어 러닝, 등산을 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집에서 러닝머신(마이마운틴)을 하거나 닌텐도를 이용한 홈 트레이닝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종종 운동 기록을 SNS에 올렸다. 하지만 곧이어 모든 운동을 올리는 것을 멈추고, 등산 또는 야외 달리기 등 거창해 보이는 것들만 올리기 시작했다. '집에서 하는 운동은 업로드해도 멋이 없다'는 게 제멋대로 정한 이유였다. 집에서 내가 얼마나 열심히 운동했다고 올려 보았자 누가 알아주나? 스마트 워치와 닌텐도 기기의 기록이 다 남아 있는데. 그렇게 나는 그럴싸해 보이는 기록들만 멋진 인증샷과 함께 업로드했다. 같은 시기, 같은 공간에서 운동해 본 적 있는 이들의 좋아요가 눌리면 기분이 좋았다.


그러던 내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운동을 하던 기록을 매일 올리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나의 부지런함을 떠들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애초부터 나만의 공간으로 정의된 SNS에서만큼은 내가 몇 시에 일어났고, 내가 얼마나 힘든 역경(?)을 거치며 아침 운동을 해냈는지를 구구절절 읍소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쉽게 해내기 힘든 기상 목표를 꾸준히 하고 싶다는 소망도 물론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대단한 나'를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제일 컸다.


전시하고 싶은 마음. 그것은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과시였다.


전시하는 삶, 누군가는 나를 보고 있다


나의 SNS에 많은 팔로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인과의 친목을 위한 계정이 아니다 보니 대부분의 팔로워들은 각종 운동을 취미로 삼은 이들이 많았고, 그마저도 적극적인 SNS 홍보를 하지 않는 내 성격 탓에 100명도 채 되지 못한 이들이 나의 SNS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잘 알지 못하는 그들이 나의 계정을 보며 '좋아요'를 눌러주는 것은 엄청난 응원이 되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나의 오늘 운동 기록을 보며 내일의 운동 기록을 기대하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오늘의 운동 기록에 좋아요가 쌓이는 것을 보며, 내일도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원동력을 갖기에는 충분했다. 새벽 기상을 몇 번 뛰어넘었을 때, 팔로워들의 기대(?)와는 상관없이 나는 괜스레 오늘의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는 반성을 했다. 내 SNS에 피드가 올라오지 않은 것을 보고, '아, 그분이 오늘은 일찍 못 일어나셨나 보다' 하고 예상을 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 나는, 나를 기다리는지 기다리지 않는지도 모르는 팔로워들을 생각하며 다음날은 좀 더 부지런해지리라 결심하곤 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것은 꽤나 큰 효과가 있었다.


기록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나를 소개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처음 새벽 기상 기록을 올릴 땐 당찼다. "동네 사람들, 내가 오늘 몇 시에 일어났는지 보세요!"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고 가끔씩 위기도 찾아왔다.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란 원론적인 의문점도 생겨났다. 피로가 누적돼 이젠 좀 자야겠다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러한 모든 과정들은 내가 새벽 기상을 시작하며 남긴 SNS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이젠 누군가가 나의 SNS피드를 보게 된다면, 일사불란하게 나열된 나의 기상 시각 인증을 볼 수 있을 테고, 그것은 굳이 나의 자신감과 자존감의 근원을 굳이 1에서부터 읊지 않더라도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속하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많은 습관을 체득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느낀 것은, 습관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보다 그러한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한 가지 일을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감상을 나열하는 것은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고, 사진 또는 숏폼의 시대에 걸맞게 영상으로까지 남기는 것은 어마어마한 시간과 정성이 드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록으로 남기는 것보단 스스로의 기억에 남는 것으로 만족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간단한 사진과 몇 구절의 기록을 일기 삼아 남긴 인증이 켜켜이 쌓이면서, 나는 그 기록들이야말로 어쩌면 스스로를 소개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정받고 싶다면, 누군가가 나를 알아줬으면 한다면, 몇 가지의 단계를 더 거쳐야 할지라도 발자취를 남겨야 하는 것이다.


전시하는 삶. 누군가가 알아주는 삶. 그리고 그러한 삶을 위해서는 꾸준히 우리는 기록해야 한다.


(+)저의 인스타 아이디는 train_4good 입니다. 제 새벽 기상 기록이 궁금하시다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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