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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뉴 Mar 21. 2024

육아에는 어른 셋이 필요하다

잠 없는 나의 첫째는 자라고 자라 벌써 초등학생이 되었다. '돌이 되면 나아지나요?' '어린이집은?' '유치원은?'을 거쳐 벌써 초등학생이 되어버린 것이다. "초등학생이 되면 나아지나요?" 향후 6년간 내가 갖게 될 희망의 끈이다.


초등학교는 워킹맘의 무덤이다. 나는 그 무덤을 좀비처럼 헤치고 나와 볕을 보고 있다. 내가 무덤에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친정엄마라는 영매가 있었던 덕분이다. 그녀가 사라진다면 나는 햇빛을 뒤늦게 깨달은 좀비처럼 녹아버리고 말 것이다. 그만큼 위태롭게, 우리 집은 삐걱거리는 톱니바퀴를 참기름 붓으로 기름칠하며 돌리고 있다. 벌써 3월이 끝나 가니 아주 실패한 것은 아닌 듯하다.


조부모 육아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남들처럼 조부모 근처에 사는 것이 어려운 우리는 결국 지방에서 사는 조부모를 '호출'하고야 말았으니까. 엄마는 나이 60 먹고 난데없이 아빠와 주말부부를 하기 시작했다. 최근 생업에서 은퇴하신 아빠가 집에 말뚝처럼 박혀 있으니 엄마는 기쁨과 혼란을 동시에 느끼셨을 것이다. 거기서 벗어난 것이 고작 딸네 집이라니. 이것은 효도인가 불효인가. "그래도 우리 집이 아빠 집(?) 보다 낫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하루종일 아빠가 있는 집은 고통스럽다. 아빠는 제멋대로니까.




이제 겨우 친정 엄마의 손을 뗀 육아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2월 내내 불안한 3월을 기다리며 떨었다. 가장 큰 이유는 '돌봄 교실'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돌봄 교실의 존재 이유는 단순하지만 명쾌했다. 학원은 가야 하지만 집은 갈 수 없는 아이들이 정류장처럼 머물다 가는 곳. '우리 때'의 학교와 요즘의 학교는 많이 달라져, 1학년에게는 이동의 자유와 머묾의 자유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일정 시간 전에는 교실에 머물 수 없고, 또한 수업이 끝난 뒤에도 교실에 머물 수 없다. 3월 한 달간은 개인 하교조차 불가능하다. 그러한 '정류장'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대기 11번. 입학 다음날부터 강제로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아이. 그런데, '혼자' 돌아올 수조차 없는 아이. 해답이 없는 망설임의 끝은 결국 '친정 엄마'가 되고야 말았다. "괜찮아, 원래 나 1년은 서울에서 살려고 했잖아." 엄마는 첫째의 1학년 기간 동안 등쌀에 치일 우리를 위해 서울에 원룸 한 칸을 알아볼 생각까지 하고 계셨다. 한이 없는 배려에 코끝이 시큰했다.


3월의 시작과 함께 어른 3인이 함께하는 육아가 시작되었다. 세 살 차이인 우리 집 남매는 각각 초등학교와 유치원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첫째는 유치원 때도 겪지 못한 이른 하교를 행복해했고, 그 모습 또한 나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유치원 때조차 연장반과 학원 뺑뺑이로 6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던 아이였다. 둘째는 예상보다 유치원 적응에 상당히 힘들어했다. 알고 보니 어린이집에 있던 뭣도 모르는 시절(?)을 지나, 자아가 생긴 뒤 본인이 모르는 공간에 툭 떨어진다는 것이 어색한 모양이었다. 하교가 빠른 첫째, 울음이 많아진 둘째를 달래느라 어른 세 명이 진땀을 뺐다. 남편은 어떻게든 퇴근을 빨리 하기 위해 시차 출퇴근을 시작했다. 그마저도 일주일에 두어 번 야근으로 의미가 없곤 했지만, 나름의 위안은 되었다.




3명의 육아 분담은 명쾌하게 진행되었다. 여전히 아득한 아이들의 6시 언저리 기상시간과 오전은 엄마가,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남편은 아이들의 간단한 옷 입히기를, 그리고 남편을 뒤이어 출근하는 내가 아이들을 모두 끌고 각각 학교와 유치원에 떨구어 주었다. 엄마는 첫째의 하교 시간에 맞추어 아이를 픽업해 귀가하였다가 다음 학원에 드롭해 주셨고, 이후 퇴근이 빠른 남편이 아이들의 태권도 셔틀 시간에 맞추어 나가 애들을 데리고 '진짜' 귀가를 했다. 이러한 사이클은 첫째의 학교 공백이 채워지는 3월 내내 계속되었다. 할머니의 존재에 응석을 부리는 아이들 탓에 가끔 등교가 늦어지고, 하원이 빨라지는 일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틀을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어른 3인체제로 돌아간 지 3주가 되자, 나는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육아하는 어른 1인, 집안일하는 어른 1인, 휴식하는 어른 1인으로 구성된 육아는 더할 나위 없었다. 모두가 적당히 쉬고 적당히 일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이 빠져도 비어있는 느낌이 없었다. 그가 빨리 본인의 위치에 복귀하기만 하면 되었다. '아, 아이를 키우려면 적어도 어른이 세 명은 있어야 되겠구나.' 나는 그 사실을 이제야 인정했다.


첫째의 돌봄 교실 탈락에 대한 후유증이 가시고, 비어있는 시간표를 각종 학원과 방과 후 수업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어른조차도 기억하기 쉽지 않은 스케줄이었다. 이 스케줄이 확정될 때쯤엔 3인 육아가 끝나고 엄마의 주말 부부 일상도 멈출 것이다. 나에겐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어른 셋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이 셋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른 셋이 한 가족이 되려면 어디에서 가족 일원을 빼오는 술수밖에 없는 걸 보니 여기에서부터 이미 육아의 난이도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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