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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준희 Sep 13. 2022

뇌에 있는 덩어리의 정밀검사를 기다리며

출산 후 어지럼증, 허리와 관절 통증, 체력 저하 등등 몸이 여러 가지로 안 좋았지만 출산 후에는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버텨 왔는데, 턱에 온 마비 증상이 3일이 지나도 그대로라 가까운 개인병원으로 향했다. 개인 병원에서 뇌졸중일 수도 있으니 큰 병원 응급실에 가보라는 소견을 받았다. 지금 이사도 해야 하고, 시부모님 이사도 도와드려야 하고, 새로운 직장도 준비해야 해서 바빠 죽겠는데 별 것도 아닐 것 가지고 시어머니께 아기를 맡기고 응급실에서 시간 낭비를 하는 게 너무 짜증 나지만, 만에 하나 별거인 경우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몇 달간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서 귀찮아도 검사하기로 결정했다. 응급실에선 나이와 건강상태를 봤을 때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CT를 찍어서 확인하겠다고 했다.


병원에서 기나긴 응급실 대기 시간이 심심해서 한국의 엄마 아빠와 통화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부모님도 번거롭더라도 병원에 가기로 잘 결정했다고 했다. 그런데 의사가 들어와 농담을 몇마디 하더니 조심스럽게 CT 촬영 결과 뇌가 비대칭이고 덩어리가 보인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기분이 들었다. 친절한 의사를 앞에 두고 애써 감정을 추스렸다. 다발성 경화증일 수도 있고 뇌종양일 수도 있고 별게 아닐 수도 있는데 정밀검사를 해야 정확히 알 수 있어서 입원해서 검사해야 한다고 했다. CT 결과가 나왔냐며 전화하는 엄마에게 별 이상이 없어서 집을 향해 운전하는 중이어서 전화를 못 받는다는 카톡을 남기고 남편에게만 입원 사실을 알렸다. 담담히 이야기 한다고 했는데 놀란 남편의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남편은 헐레벌떡 병원으로 왔지만 함께 병실에 들어가는 건 허락되지 않는다고 해서 입원 전에 잠시 얼굴만 볼 수 있었다. 남편은 충혈된 눈으로 웃으며 걱정 말라고 했다. 걱정 말고 어떤 병이든 열심히 치료해 보자고.


사지가 멀쩡한데도 병원 방침대로 휠체어에 타서 병실로 들어가면서 이제 내 인생을 어떻게 정리할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 딸 생각이 제일 먼저 났다. 최악의 경우 시한부 선고라도 받게 된다면 아직 6개월도 되지 않은 딸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가장 걱정이다. 방긋방긋 잘 웃는 딸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고 너무 보고 싶다. 평소에 어디 갈 일이 있어서 딸이 보고 싶으면 동영상을 보는데, 지금은 동영상을 보면 마음이 감당이 안될 것 같아서 상상만 했다.


지난 1년 동안 세계 시장이 안 좋아지고 재산이 줄어들어서 힘들어하며 '아이도 낳았는데' 라며 돈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그게 가장 후회스럽다. 일상에 그닥 영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은행 계좌의 숫자를 걱정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미래를 준비한답시고, 아이를 위한답시고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아등바등 사는데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데 ‘미래'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했다. 스트레스받으며 살다 병을 얻어서 딸이 엄마 없이 자라게 한다면 물질적인 모든 게 무슨 소용일까. 지금 당장이라도 팔 수 있는 자산을 팔아서 딸아이와 세상을 구경하고 경험해야겠다. 가진 부동산과 주식, 코인을 모두 떠올려서 어떻게 빨리 처분할지, 처분하면 얼마일지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웠다. 부동산을 처분하면 내 비즈니스 파트너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그는 좋은 사람이기에 아프다고 하면 이해할 것이다. 아니면 그에게 값이 더 나가는 부동산을 양도하고 싼 것들을 내 몫으로 돌려 현금화시켜야겠다. 모두 현금화시키면 적어도 1~2년 정도는 딸아이와 여기저기 다니며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것 같다. 단, 딸이 너무 어려서 내가 오래 못 산다면 나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가장 걱정되는 시나리오는 내가 오래 아프는 걸 보면서 딸이 자라는 거다. 만약 내 몸이 안좋은게 딸에게 유전되면 어떡하나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문다. 어찌되었건 검사 결과가 나쁘게 나오던, 좋게 나오던, 앞으로 반드시 삶의 방향을 바꾸리라.


장성한 후 내가 없다면 나를 궁금해할 딸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 네가 태어나자마자 너는 즉시 내 삶의 가장 큰 부분이자 중심이 되었어. 너를 안고 있으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세상을 얻은 기분이었어. 너를 안으면 너무 행복해서 따뜻함이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물리적인 느낌이 들었어. 너를 너무 사랑하고 너는 내 가장 큰 기쁨이었어. 사후 세계가 있다면 나는 죽어서도 너를 지켜주고 기다릴거야. 내가 세상에 있건 없건 너는 누군가에게 가장 사랑받는 사람인걸 잊지 마. 네가 자신을 소중하게 여겼으면 좋겠어.


생전에 비디오를 많이 찍어놔야겠다. 공개 영상으로 해 놓으면 다른 부모를 일찍 잃은 아이들도 위안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이 연로하시기 전에 비디오를 많이 찍어 놓으라는 조언을 들었었는데, 그게 참 좋은 조언이었던 것 같다. 다만 내 부모님이 내가 먼저 가고 나서 내 동영상들을 보신다면 많이 슬프시겠지.


내가 없어도 남편이 최선을 다해 딸을 열심히 키울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남편과 함께 하는 동안 정말 힘든 일들도 많았고 사실 검사 결과 직전까지도 여러 가지 일로 힘들었지만 남편과 보낸 시간이 후회된 적은 한순간도 없었다. 남편을 정말 사랑하고 남편을 만나서 행복했다.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함께했어서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을 만나 삶을 함께 보내고 사랑했단 것만으로도 꽤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딸을 제외하면 지금 가더라도 좋은 삶이었다고 만족한다. 남편과 원래 한날한시에 같이 가자고 약속했었는데 이제는 딸이 있어서 그럴 수가 없다. 남편은 만약 내가 죽는다면 딸이 성인이 되는 즉시 자기도 따라가겠단다. 그래서 무슨 소리냐고, 우리는 30세를 넘기고 자식까지 낳은 지금까지도 부모님께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고 있는데 너도 재혼해서 오래오래 살면서 딸이 필요할 때마다 도와주라고 했다. 다만 재혼해도 우리 딸을 천덕꾸러기로 만들지는 말라고 했다.


며칠 전 시부모님과 사소한 일로 언성이 높아지고 큰 다툼이 있었다. 그런데 병원 침대에 앉고 나니 세상에 애를 써야 될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서로 사랑하고 아껴야 할 가족 간에 조그만 불화가 있다고 해서 서로를 적으로 돌리고 미운 마음을 품었던 게 후회된다. 서로 아끼고 좋은 경험을 하면서 보내도 아까운 인생의 순간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는데 보내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왜 몰랐을까. 조금 더 멀리 보고 마음을 넓게 가졌다면 다툴 필요가 없는 사소한 문제였는데, 그땐 그걸 몰랐다. 남은 시간 동안엔 절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 시부모님들은 정말 좋으신 분들이시다.


돌아보면 나는  부모도 자주 적으로 돌리고 미워했다. 부모님과 친구 같고 매일 통화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데도 항상 엄마 아빠가 내게 부족하게   것처럼 작은 문제를 찾아내어 불평하곤 했다. 그때마다 엄마 아빠의 마음이 아팠을 텐데 엄마 아빠가 나를 사랑한단 이유로  마음을 저당 잡아서 일부러 상처   후회된다. 사실은 엄마 아빠의 딸로 태어나서 행복했고,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만들  있었던 것도 부모님이 내게 사랑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가르쳐  덕분이다. 부모님께 건강에 조그마한 적신호라도 보인다면 번거롭더라도 과잉진료라고 생각하지 말고 반드시 정밀 검사를 해보라고 해야 겠다.


인생은 무한하지 않은데 우리는 건강을 당연하게 여기고 중요하지 않은 고민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게 얼마나 어리석고 잘못됐었는지 그때는 모르는게 아쉽다. 언젠가 책에서  암환자가 '시한부 선고는 내게 가장  '이라고 표현한 글을 읽고 여운이 남았었다. 그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나서 비로소 인생을 바로 마주하고 여생의 방향을 정확하게 잡고    있었다고 했다.  글을 떠올리며  또한 최악의 경우에도 좌절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마음의 평화를 지키며 남은 현재를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걸 최우선으로 해야겠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던  후회되는  아니지만 아쉽다. 미국에 와서 남편을 만나고 딸을 낳고 많은 소중한 인연을 만났기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부모님과 지지고 볶고 가까이 살면서  수도 있었는데 미국에서 살기로 결정한 결과로 부모님과의 시간을  부분 잃은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미국에 와서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행복했지만, 한국에 남았다면  삶은 어땠을까 싶다. 그래도 행복했을  같다. 유학과 이민은 세상 견문을 넖히지만 당사자와 가족들을 외롭게 하는 길인  같다.  세상을 보긴 했지만 글쎄 그게 의미가 있을까? 내게 세상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중요한  같다.




정밀검사 결과 더욱 정밀한 검사를 요하는 약간의 문제 빼고는 당장 걱정할 부분은 없다고 나왔다. 종양이 아니라고 했다. 영겁같던 시간 후 병원에서 나와서 집에 가자마자 병원 기운을 씻듯이 몸을 닦고 딸의 자는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내가 없는 동안 끝없는 걱정을 하며 아이를 봐주신 시어머니께 고마움과 죄송함을 전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엄마 아빠에게도 전화해서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말하고 지금까지 응석 부리느라 불평했던 거지 사실은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나서 너무 행복하다고 전했다. 엄마는 울음을 터트리며 어쩐지 집에 간다는  문자를 받고 뭔가 이상했다고 한다. 아프더라도 한국에서 아프라고 이제라도 한국에 들어와서 살라고 했다. 진지하게 싱가포르나 태국이나 아시아  국가로 이사  계획을 세워야겠다.


더 정밀한 검사 결과 문제가 없다면 나는 아마 언젠간 다시 건강을 당연하게 여기게 될 것이고 지금의 깨달음을 잊게 될 것이다. 그러지 않고 싶다. 앞으로 내가 어떤 식으로 세상을 떠날지, 사고일지, 병일지, 내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았을지, 5년 일지, 50년 일지 모르겠지만 그게 얼마이던 지금 결심한 것들과 지금의 심경을 계속 새기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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