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을 열다

마흔 살의 아침 노트 9

by 수달씨


2023.06.05.

족쇄가 풀린 듯한 기분이다. 빗장을 연 것도 같고, 갑옷을 벗은 것도 같고. <진격의 거인>으로 치면 사람에서 거인이 되어버렸을 때의 후련함 혹은 자유로움이랄까?


일상이 고요하게 느껴져서, 평온하게 느껴져서 의사와의 상담 후 약을 줄였다. 괜찮고 안괜찮고 라기보다. 마음이 자연스러워서.


약을 줄이기 전부터인지 이후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식욕이 특히 자연스러워졌다. 식탐이 늘고 많이 먹는다. 살면서 이렇게 많이 먹은 적이 없다. 내가 이렇게 먹을 수 있는 인간이었나 싶다. 말 그대로 빗장을 열었다.


내가 가진 여러 가지 강박 중 몸에 대한 강박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원래 마른 편이긴 했지만 ‘말라야 한다’라는 말하지 못한 강박이 족쇄에서 풀려난 걸까. 최근 실내운동을 나름 꾸준히 한 덕도 있는 듯하다. 몸에 대한 이해랄까 인지가 조금 달라진 것. 그러자 먹는 양이 달라졌다. 나는 식욕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먹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조금씩 빗장을 더 여는 연습을 할 것이다. 소비에 대한 강박, 좋은 사람에 대한 강박, 성실에 대한 강박, 프로페셔널에 대한 강박... 그로부터 이어지는 죄책감의 빗장을 열고 자기혐오의 갑옷을 내려놓아 보려고 한다. 새롭고 낯선 나일지, 그것은 어떤 만남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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