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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Feb 20. 2024

아이와 부산 여행 - 해운대 편


“부산에 가보고 싶어요!”

아이가 토요일 아침부터 던진 한 마디에, “그래! 가자!” 하고 움직였다. 가장 먼저 ktx 예매 가능 여부를 검색하고, 두 자리가 간신히 있는 걸 확인한 뒤 숙소 어플을 이용해 호텔을 검색했다. 부산 하면 역시 해운대지. ‘해운대’라고 검색어를 입력하자 아이가 좋아하는 고층 호텔들이 주루룩 나온다. 그 중에서 꽤 저렴한 곳을 골라 아이에게 보여줬다. 바다뷰가 아니면 안된다는 아이의 말에 “그러면 너의 용돈을 보태야 해.” 라고 말해준 뒤 몇 만원을 더 얹어서 바다뷰 호텔을 예약. 이래도 되나 싶도록 모든게 충동적이고 일사천리였다.


퇴촌에서 서울 강동구까지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나온 뒤, 암사역에서 천호역으로, 천호역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으로, 거기서 다시 서울역으로. 이동에 이동이 이어져 아이는 벌써 지친 듯 하지만 아직 ktx를 타지도 않았다. 서울역에서 국밥 한 그릇 후루룩 먹고 기차에 올랐다. 처음 타보는 역방향이지만 멀미 없이 무사히 부산에 도착. 지난 번 광주 여행에서 ktx를 겪었던 터라 그때만큼 긴장되지는 않았다. 역시 경험치는 중요하다.


아직 이동이 끝나지 않았다. 부산역에서 빨간 버스를 타고 해운대까지는 한 시간 거리. 버스 번호를 잘못 봐서 한 번 갈아타는 우여곡절 끝에 해운대 바닷가에 도착했다. 아침에 집에서 나와, 이 곳에 도착하기까지 몇 시간이 걸렸을까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우리가 해운대에 서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마침 해가 떨어지는 시간, 푸르고 검고 붉은 빛들이 보여주는 장관을 보니 기어이 여길 왔구나 싶다. 휴대폰 속 유튜브영상이나 tv 화면으로 세상을 보는 아이에게 진짜 해운대 바다를 보여주고 모래를 밟게 하는 일에 나는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앞으로도 쭉 그렇게 하고 싶다.


바닷가에서 한참을 놀고, 버스킹 구경도 한 뒤 식당을 찾았다. 부산에서 먹을 거리는 돼지국밥, 밀면, 부산어묵. 아이와 나는 그 지역의 유명한 음식을 먹어보는 걸 의미있게 생각하지만 숨은 맛집이나 현지인 맛집 따위를 정성스레 찾아보는 재주는 없다. 포털사이트 검색 상위 두세 개 가게 안에서 고르는 편. 광고에 속거나 유명세에 비해 섭섭한 경우가 많지만 딱히 미각이 발달한 사람들이 아니어서 ‘먹었다’에 의미를 두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 찾은 밀면 식당은 대체로 만족. 물론 만두 대장인 아이는 밀면보다 만두를 (내 몫까지) 더 많이 먹었지만 말이다.

드디어 숙소로 간다. 사실 여행의 반은 숙소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몇만 원 더 주고 고른 바다뷰 호텔은 꽤나 좋았다. 앞쪽 호텔들에 바다 일부가 가려지긴 했지만 자고 일어나 만나는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의 풍경은 우리가 부산에서 눈을 떴음을 실감케 했다. 이 좋은 곳에서 하루만 묵는 게 아쉽긴 하지만 짧은 여행일수록 여운이 남는 법이다.


아침으로는 역시 국물인 아이를 데리고 찾아간 두번째 식당은 수십년 역사를 자랑한다는 돼지국밥집. 오래 고아 찐득한 국물이 보약이나 다름 없다고 식당 곳곳에 적혀있었지만 국밥 자체가 특별한 느낌을 주진 못했다. 옆자리 손님들이 먹는 것을 보고 입맛이 당겨 순대도 한 접시 시켜 먹었다. 아이가 커서 이제는 각자 한 그릇씩 주문해야 하고 사이드 메뉴도 먹으려면 식비가 제법 나간다. 그래도 여행중의 나는 호기롭게 자꾸 주문을 하고 세상이 끝날 것처럼 먹곤 한다.


짧은 여행을 마무리할 시간이 되어간다. 아침의 해운대 모래사장을 다시 밟고, 어제와 같은 빨간 버스를 타고 부산역으로 돌아간다. 마지막 여행 미션이었던 어묵 식당은 완전 망했다.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간 카페 스타일의 매장이었지만 가격은 사악하고 분위기도 애매했다. 아이가 시장에서 즐겨 먹는 꼬치어묵과 종이컵에 담긴 따끈한 어묵 국물이 그리운 시간을 보내고 부산 여행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다시 서울역으로, 암사역으로, 퇴촌으로.


저녁은 해운대 근처 가성비가 탁월한 작은 빵집에서 사온 빵들로 때운다. 여행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와 여행지에서 사온 빵과 간식을 먹으며 여운을 달래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제는 여행의 그 모든 것을 아이와 함께 나눈다. 열 살 나의 아이는 이제 훌륭한 여행 메이트가 되었다. 다음은 어디로 갈까. 다음 여행에서는 또 무엇을 배울까. 다시 설레는 질문이 시작됐다.



먼 길을 돌아 드디어 해운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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