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뒷마당, 그리고 떡진 머리의 기억
어릴 적 나의 집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뒷마당으로 나가서 담벼락을 따라 왼쪽으로 빙 돌면 쪼그려 앉아 볼일을 보고 줄을 당겨 물을 내리는, 그러니까 변소 혹은 뒷간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곳에서 용무를 해결했다. 밤이면 손전등을 켜고 캄캄한 어둠을 더듬어 찾아가 볼일을 봐야 하는데 그게 무서운 우리는 방 안에 있는 요강을 이용하곤 했다. (요즘 아이들은 ‘요강’이라는 물건을 아는지 모르겠다.)
세수는 아침 저녁으로 부엌 바닥에 쪼그려 앉아 대야에 물을 받아서 했다. 우리 집은 엄마가 장사를 하는 치킨집에 달린 방 두 칸짜리 공간이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치킨집의 부엌이었다. 하늘색 타일 바닥 옆에는 물을 끓일 수 있는 연탄 아궁이가 있어서 겨울이면 엄마가 더운물을 데워 바가지로 부어 주었다. 머리를 감거나 목욕을 할 수는 없었으므로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에 언니와 함께 목욕바구니를 들고 동네 목욕탕엘 갔다. 지금은 세신사라고 부르는 때밀이 아주머니께서 자매의 몸을 구석구석 (아프게) 밀어주셨다. 목욕탕을 생각하면 또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떠오르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고학년이 되고 처음으로 머리를 자주 감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된 사건이 있었다. 친한 친구가 같은 반 여자아이를 가리키며 "저 애의 머리는 항상 떡져 있어.“ 라고 했고 나는 ”떡진 게 뭐야?“ 하고 물었다. 그것은 머리를 자주 감지 않아 기름이 지는 것이라고 친구는 말해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에서만 머리를 감아온 나는 큰 충격을 받았고 그때부터 이삼일에 한번 꼴로 치킨집 주방 바닥에 쪼그려 앉아 대야에 정수리를 거꾸로 박고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그때의 충격이 어찌나 큰지 나는 지금까지도 머리가 떡진 채로는 생활을 하지 못한다.
4학년인가 5학년인가 여름방학이었을 것이다. 너무 더워서 언니와, 놀러 온 사촌언니와 뒷마당에서 등목을 하자고 했다. 마당이라고 해봐야 손바닥만 한 화단(한 때 키우던 병아리가 죽어 묻어주기도 했던)과 윗집으로 올라가는 계단, 시멘트가 발라진 바닥 쪽에는 엄마가 닭을 토막 내는 굵은 통나무도마, 그리고 수도꼭지가 있었던 것 같다. 깡마른 여자애 셋이서 웃통을 벗고 엎드려뻗친 자세로 서로의 등에 바가지로 푼 수돗물을 부어주었다. 목덜미부터 등줄기를 따라 떨어지는 물이 차가워서 까르르 소리 지르며 제법 시끄러웠을 것이다. 어느 순간 계단 위에서 윗집(아마도 주인집) 남자애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라도 무척 기분 나쁜 일이라는 것은 알았다. 여름날 소녀들의 순수한 놀이가 순식간에 불쾌한 세상과의 조우로 장르 전환을 하는 순간이었다.
한 달쯤 전 남편을 졸라 인천의 내가 살던 그 동네를 가보자고 했다. 전철역도 생기고 해서 재개발로 다 없어졌을 줄 알았던 그 동네가 지도를 보니 건재하다는 걸 알게 된 뒤였다. 주말에 아이를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삼십 년 만에 가는 동네였지만 시간으로는 한 시간여 밖에 걸리지 않았다. 너무도 멀고 또 생각보다 가까운 그런 곳. 시간과 공간이 아른하게 교차하는 곳. 동네는 생각보다 너무 그대로여서 또 놀랐다. 치킨 봉지를 들고 직접 배달을 다니던 그 골목이 그대로였고 또 생각보다 매우 좁았다. 너른 골목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치킨집이 아닐 내가 살았던 건물을 찾아보다가, 한 건물 앞에서 발이 멈췄다. 외관은 다른 업종으로 바뀌어 알아볼 수 없지만 건물 왼쪽으로 붙어있는 화장실 철문을 보고 그곳인 걸 알았다. 설명할 수 없이 아득한 기분. 시공간이 안개처럼 뒤틀리는 기분을 잠시 느꼈다가 곧 현실로 돌아왔다. 아이에게 시장 떡볶이와 호떡을 사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갑자기 굵은 비가 차 앞유리를 때렸다. 와이퍼가 흐려진 창문을 바쁘게 닦아내고, 나는 내 집 마당에 널어놓은 빨래들이 괜찮을까를 생각했다. 추억은 뒤통수에 어디께에 다시 접어놓고 앞을 향해 달렸다.
6월의 한중간인 오늘, 양산을 쓰고 걸어 다니다 어느 골목길의 철문을 보고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 누구에게나 추억 치트키가 되는 단어가 있을 것이다. 나에겐 치킨집, 뒷마당, 화장실, 목욕탕, 떡진 머리 같은 것들. 가끔은 냄새도 치트키가 될 것이다. 치킨 기름 냄새와 생닭 배달을 해주는 닭차가 오던 날의 냄새 같은 것. 그런 것들은 마치 문신처럼 아무리 좋은 목욕샴푸로 닦아도 지워지지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몸에 묻어있는 이것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슬픔과 기쁨과 해맑음과 어두움이 다 거기에서 나왔다. 죽을 때까지 갖고 갈 못생기고 아름다운 문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