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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과 상상 Apr 25. 2020

제주해녀 항일운동과 4.3

빗장을 읽고

5학년 3학년 유치원생이 4.3 사건을 설명한 들 이해하겠나만은 우리 여행의 목표는 제주 4.3 사건을 위시한 역사투어였다. 차 안에서 열심히 설명했지만 장난치며 깔깔대기 바빴던 아이들이 너븐숭이 4.3 기념관 밖 위령비 앞에 서자 조용히 묵념을 했다.


너븐숭이, 뜻은 몰랐지만 참 예쁜 말이다. 뜻을 찾아보니 '넓은 돌밭'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너븐숭이 4.3 기념관이 있는 북촌은 1949년 1월 17일 주민 3백여 명이-아이는 물론이거니와- 군인에 의해 학살당한 곳이다.


한창 관광객이 한창일 6월, 저 날의 기념관과 그 주변 마을은 고즈넉하기 그지없었다. 푸른 하늘과 선선한 바람, 눈앞에 펼쳐진 바다와 들을 보니 그날의 참상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 다섯 가족이 기념관 안에 들어서자 관리자 분이 적잖이 놀라더라. 단체 관광객도 아니고 성인들끼리 온 것도 아닌, 어린애들을 데리고 온 우리 부부가 평범해 보이진 않았나 보다.


아내 반갑다는 표정으로 바뀐 관리자 분께서 텅 빈 기념관을 가리키며 직접 설명을 해줘도 되겠냐고 하셨고 우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응했다. 덕분에 아이들도 짐짓 진지한 표정도 짓고 고개도 끄덕여 가며 둘러볼 수 있었다.


"관광지를 안 가시고 어떻게 여기로 오셨어요?"
"잊지 말아야 할 우리 역사니 까요."
"감사합니다. 저의 가족도 4.3의 희생자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 때 진심을 담은 사과도 하셨고 잊힌 4.3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가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네 저희 가족도 꼭 기억하겠습니다."

비 온 뒤 갠 하늘이 눈부시게 파랗다. 북적이는 관광지로 향하지 않고 여기로 온 걸 다시 한번 감사했다. 딸들도 동네가 너무 예뻐서 맘에 든다고 한다. 엄마가 계속해서 보호자 동행 학습을 신청하여 학교를 빼먹고 온다면 열심히 역사 투어 하겠다는 말과 함께.


음...

그래, 학교 땡땡이치는 맛 엄마도 잘 알지.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에서 기획한 '빗창'을 읽는 순간 나는 2016년 제주로 돌아가 있었다. 기념관의 사진과 글을 보며 왜놈들과 양놈들 둘 다 똑같다며 이를 갈았던 그때가 생각났다. 붓펜으로 그린 듯한 투박한 만화에 분노와 아픔, 고통과 슬픔 모두를 느꼈다. 그리고 매번 하는 생각을 또 한다.


'내가 일제시대로 돌아갔다면 만세라도 한 번 시원하게 부를 수 있었을까?'

'내가 4.3 사건으로 돌아간다면 미군정과 서북청년회를 향해 분노를 표출할 수 있었을까?'

'내가 4.19로 돌아간다면 부정선거와 독재에 반대하여 시위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

'내가 5.18로 돌아간다면 유신철폐를 외치며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힘을 보탤 수 있었을까?'

'내가 6.10 항쟁으로 돌아간다면 반독재 민주항쟁의 끝에나마 설 수 있었을까?'


확신할 수 없다.


'빗창'에도 등장한 제주 해녀들은 생존권 투쟁으로 시작해 일제 식민지 수탈 정책에 저항한 항일 운동 단체로 재평가받고 있다. 항일 운동에 참여했던 해녀들이 4.3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항일 운동의 정신을 지닌 해녀들을 4.3과 연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해녀들은 빗창(해녀들이 전복을 채취할 때 사용하는 도구)을 들고 부당한 탄압에 온몸으로 저항했으리라.


나는 어릴 때 5.18은 물론이거니와 4.3 사건에 대해 배운 기억이 없다. 소위 빨갱이들의 난동쯤으로 치부되던  일들을 스무 살 대학에 가면서 비로소 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이름도 없이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밀려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억하는 것, 내 자식에게도 올바로 가르쳐 주고 내 친구들에게도 알리는 것, 그래서 그분들을 잊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올바른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하여 이름 없이 백비(白碑)에 누워 계신 분들이 어서 빨리 역사적 평가를 받아 명예를 회복할 수 있길 바란다. 민주주의의 힘든 노정에서 목숨으로 지킨 그들의 노고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직 우리가 가야 할 민주주의의 긴 여정이 남아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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