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집안이 눈이 안 좋아 매 방학마다 신경 써서 안과 검진을 한다. 코로나로 미루고 미룬 겨울 검진을 어제야 비로소 받았다. 그리고 삼 남매 모두 안경을 쓰라는 판정을 받았다.
심난하다.
그리고 '나쁜 건 니탓'을 또 한다.
친정 부모님께서는 노안은 올지언정 1.5 시력을 환갑이 넘어서도 유지하신다. 반면 어머니께서는 젊어서부터 안경을 쓰셨고 그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남편이다. 막내를 재우고 어두운 방에서 막내를 재우고 장시간 스마트 폰 하는 내 눈이 걱정되어 작년에는 아이들과 함께 검진을 받았는데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가 잊혀지질 않는다.
"눈이 너무 좋은데요? 와~"
눈 건강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다고 하셨지만 찔려서 그냥 미소만 날렸다. 이로소 '모든 건 유전발'이라는 내 지론이 또 먹혀들어가는 순간이다.
어머니께 말씀드리니 깊은 한숨에 이어 미안함의 말을 내뱉으신다. 블루베리랑 눈 영양제를 구해서 보내겠노라 말씀도 하신다. 미안하라고 드린 말씀은 아닌데 괜히 죄송스럽다.
이런 어머니의 말씀 속에서 냉탕과 온탕의 확실한 온도차가 있다. 애들이 밝고 명랑함을 넘어서는 오버액션을 할 때면 애들 아부지는 절대로 저렇지 않았는데 참 신기하다고 하신다. '너희들은 엄마를 닮았구나!'로 알아서 해석하지만 부정할 수 없기에 기분이 나쁘긴커녕 웃음이 난다.
애들이 건강하고 체력이 흘러넘칠 때는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신다. 조용하고 차분하고 젠틀했다는 아들에 대한 묘사가 그럴듯하지만 체력은 좋았다는 느낌은 없다.
애들이 공부를 잘하면 '느그 아부지 덕원중 입학 때부터 전교 1등이었다'는 얘기가 자동으로 나온다. '저도 잘했거든요?'라는 말은 차마 유치해서 입을 닫는다. 어쨌든 아이들 성적이 좋으면 '전교 1등' 단골 멘트를 날리시고 못하면 '고등학교 때 친구를 잘못 사귀었다'는 너무나 진부한 멘트를 하시는 우리 어머니.
나보다 남편 유전자가 강한지 발가락마저 닮은 정氏들인데 안경까지 씌어놓으니 빼다 박았다. 이럴 때마다 날리는 그의 미소는 뿌듯함 같다.
그런데 큰애 검진 결과를 보더니 의사가 깜짝 놀랐다. 예전에 비해 눈이 너무 좋아졌단다. 안경사님도 눈은 1단계 좋아지기도 힘든데 8단계는 기적이란다. 이런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안과 용어는 잘 모르지만 이번엔 내가 뿌듯한 미소를 날릴 차례다.
"봤지? 봤지? 너 눈이 나빠졌다가도 다시 좋아진 건 다 엄마 덕이야. 똑똑히 알아야 해. 알겠어? 응? 응?"
"나빠진 건 아빠 탓이고요?"
"그럼!"
"역시 오늘도 내로남불 우리 엄마.'
갑자기 떠오른. 예전 개그가 있다.
머리 나쁜 미스코리아 아내와 못생긴 의사 남편이
결혼을 하며 '부인 닮은 얼굴에 남편 닮은 머리'의 완벽한 아이가 태어나리라 생각했단다. 그런데 결과는 '엄마 닮은 머리에 아빠 닮은 얼굴'이었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