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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과 상상 May 14. 2020

사탕 세 개의 마음

마음을 전하는 쉬운 방법



며칠 전에는 자몽청을 보냈더니 오늘은 청포도 청을 보냈다. 올케는 요즘 모든 과일을 '청'화 하고 있다. 같이 보낸 막대 사탕을 보니 우리 올케 다워서 웃음이 빵 터졌다. 우리 올케는 사탕 세 개도 선물이라며 건넬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올케를 보며 많은 것을 배우는 데 그중 하나가 사소한 것도 웃으며 건넬 줄 아는 마음이다. 난 누군가에 게 선물할 일이 있으면 어떤 게 좋을지 엄청 고민을 한다. 주고도 욕먹을 짓은 안 하겠다며 항상 받는 이의 기대보다 과한 선물을 하곤 했다. 이왕 주는 거 통 크게 쓰고 두고두고 회자되기도 바랬다.


하지만 우리 올케를 만나고 연필 세 자루도, 사탕 몇 알도, 빵 몇 개도 정말 기분 좋은 선물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올케가 내미는 이런 소소한 선물들이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고 웃게 만드는지 본인은 알까?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올케는 뭐든 주고 싶은 사람이다. 결혼 전부터 물량공세로 점수 좀 얻으려고 이것저것 많이도 선물했다. 내가 바르기도 손 떨리게 비싼 화장품부터 옷, 음식, 외식상품권까지... 하지만  신혼 집들이에 초대받아 갔더니 내가 준 화장품들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화장대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그날도 화장품을 선물로 들고 갔는지라 올케에게 건네며 팍팍 바르라는 조언을 하며 내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동생이 한마디 한다.


"누나, 우리 경이는 존슨즈 베이비 로션만 발라."


아무리 쓰라고 해도 세수하고 베이비 로션 쓱 바르면 끝이란다. 그런 올케가 빨간 립스틱 짙게 바르고 한껏 꾸미고 다니는 형님을 보며 얼마나 어려웠을까. 동생의 결혼은 남편의 노력 덕분이었다. 남편 회사 직원이 남동생에게 올케를 소개해 줬고 동생은 그녀에게 첫눈에 뽕 갔다. 연애 숙맥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매형이 술 사주고 밥 사주며 둘을 연결시켜 준 것이다. 처남 결혼시키겠다고 자기도 안 가는 고급 식당에 돈을 얼마나 쏟아부었는지 모른다며 여전히 생색을 내고 있다. 아마 평생 낼 생색이지 싶다.


그렇기에 동생과 올케, 남편 세 명은 자주 만났었다. 나도 끼고 싶었지만 장차 형님이 될 수도 있는데 벌써부터 '시'자 노릇한다고 할까 봐 도둑이 제 발 저리더라. '남자 친구의 누나'는 듣기만 해도 불편해지는 느낌인 건 사실이잖아? 결혼 얘기가 본격적으로 오가고 나서야 올케에게 얼굴을 비췄었다. 좋은 첫인상을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세팅을 하고 나갔었는데 흰색 바지에 연두색 반팔 남방을 입고 있던, 화장기 없는 올케의 순수한 첫인상에 후광이 비쳤다. 장시간 풀 세팅한 것이 멋쩍어질만큼 맑은 아름다움이었다. 입을 닦는 척하며 냅킨으로 내 빨간 입술을 쓱 닦은 건 아무도 몰랐을 거다.


'저렇게 예쁜 애가 내 동생과?'


나는 내 새끼들에게도 고슴도치 사랑은 아니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보이고 예쁜 부분과 아닌 부분도 칼 같이 구분한다. 하물며 자식도 이런데 동생은 어떠랴? 동생은 키도 작고 머리도 크고 피부까지 안 좋다. 사춘기 때 여드름이 어찌나 많이 나는지 무서울 정도였다. 그런 동생은 항상 두 누나들에게 말하곤 했다. 누나들에게 좋은 피부를 주고 모든 저주는 본인이 다 받았다고. 동생은 농담이었지만 우리는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진짜 고마워도 했다. 저주가 아니고서야 어찌 한 배에서 난 남매의 피부가 백옥과 멍게로 나뉘냔 말이냐. 지금까지도 내 외모의 가장 큰 장점이 피부라고 여겨지기에 '피부의 저주(?)'를 다 가져간 남동생에게 한참을 미안해하고 고마워했다.


참, 저주가 하나 더 있었구나! 그것은 '머리통의 저주'였으니 머리가 작은 나와 여동생에 반해 남동생은 맞는 모자가 없을 정도로 머리 둘레가 컸다.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던 남동생의 사춘기 시절부터 대학 시절까지는 '저주'시리즈로 점철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만날 때마다 모든 저주를 안고 간 자기에게 고마워 하라며 본인의 희생정신을 강조하곤 했었다.


이젠 진짜 나이가 들었나 보다. 우리의 대화에는 더이상 피부의 상태도 머리 사이즈도 들어올 틈이 없다. 집안의 가장으로서 먹고 살 궁리가 가장 중요한 동생을 보니 어릴 때의 대화가 그리워진다.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들던 때가 좋았었구나 싶다.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지 않는 올케는 - 누나들의 저주를 모두 안고 갔을 만큼 착한- 이런 남동생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같이 있을 때 재밌고 편한 사람은 남동생이 처음이었다고도 했다. 나는 남편의 외모가 맘에 들어 만나기 시작했는데 올케와 나는 이렇게나 다른 사람이다.


처음에는 예쁘고 멋진 형님이 되고팠지만 올케의 성품을 알고 나서는 많은 것이 편해졌다. 아무 때나 쳐들어오는 그들을 이제는 생얼에 잠옷 바람으로 맞이하기도 한다. 산책 나왔다며 들러도 되냐며 전화가 오고, 외식 나왔다가 생각나서 먹을 거 사 간다며 연락을 주는 올케네 가족들이 왜 그리 고마운지 시어머니의 마음이 이런 건가 싶다.


올케의 청포도 청을 듬뿍 넣고 탄산수 콸콸 부어 마시는 지금, 맛은? 음... 포도를 너무 잘게 썰어 수분 빠진 풀을 씹는 느낌이지만 얼마나 정성 들여 예쁘게 썰었을지 눈에 선하여 웃음이 큭큭 난다. 앞으로도 아무 때나 쳐들어올 수 있는 편한 형님네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근사한 선물이 아닌, 올케가 보여준 상대방을 생각하는 그 마음으로 말이다.





며느리를 보자 친정아버지는 며느리가 차려주는 생신상을 은근히 원하셨다. 근사한 곳 예약해 놨다 해도 막무가내셨다. 나는 시아버지 생신상을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말씀이 있기 전까지 꼬박 10년을 열심히 차렸으면서 올케가 힘들게 차리는 건 왜 그리 싫던지... 하지만 아빠의 의견을 전하기도 전에 올케가 상을 차리겠다고 나섰다.  괜찮다고 해도 하고 싶다고 하는 올케를 보니 어설프지만 열심히 상 차리던 내가 시부모님 눈에 예뻐 보였겠구나 싶다.


이렇게 '퀵' 상차림은 시작되었다. 올케네 가서 도와주는 것도 답이 아닌 것 같아 내가 한 생신 음식을 퀵으로 보냈다. 사실 반찬 가게에서 산 것도 있다. 아니, 해가 갈수록 가게 표 음식이 늘고 있다. 친정엄마에게 슬쩍 말했더니 아~~ 주 잘했단다. 가족끼리 모여 밥 한 그릇 먹으면 되는데 한 사람 쌔빠지게(혀가 빠질 정도로 힘들다는 경상도 사투리) 고생해서 맛있게 먹는 거는 싫다고 하신다. 요즘 시대 밥 못 먹는 사람 없다며 앞으로도 열심히 사 오라고 이르는 역시 우리 엄마다. 쿨하지 못한 니들 아빠는 본인 스타일이 아니라며 마무리는 역시나 아빠 디스였지만 선한 거짓말로 모두 행복했으니 됐다.  


와 아빠! 며느리 본 보람 있네요? 상다리 부러지겠다. 좋으시죠?
좋다마다! 허허허


결혼을 한참 먼저 한 선배로서 어떤 때 속상하고 힘든지 아는데 손아랫사람을 봤다고 그 감정들을 모른 척하고 싶지 않았다. 동생과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그저 좋았다. 시집살이는 고되게 했으면서 자식들에게 대접은 받지 못하는 우리 엄마 세대를 지나, 시댁에서 대우받고 지낸 세대로서 '시'자 갑질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나는 외동에게 시집갔으니 시누이나 시동생으로 인한 어려움도 몰랐고, 외며느리가 자기편이 되길 바라셨던 어머니께서는 지금까지도 나의 가장 큰 바람막이가 되어 주신다. 그저 받은 대로 배운 대로 할 뿐


내가 잘해줘서 올케가 잘하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답은 모르겠다. 그저 닭이 앞으로도 선한 영향력의 순환이 계속되길 바랄 뿐. 올케와 나누는 사소한 일상이 행복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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