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회 03 | 그런 상태

by 키코

누군가 나를 그런 상태라고 정의하면 정말 그래야 하는 걸까? 그게 주체의 확신보다 더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


학창 시절, 쉬는 시간에 아이들과 떠들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있을 때가 많았다. 친구들은 나를 '지금 잔다.' 혹은 '피곤한가 봐.'등으로 내 상태를 규정했다. 당시의 난 피곤했을지 모르지만 잠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상태'로 규정되고 나니 그들의 기대를 깨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친구들의 대화가 멀리서, 그러나 내용만은 선명하게 들려왔다. 재밌어 보였다. 그렇지만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아무렇지 않은 상태로 대화에 참여하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겠지. 이것저것 해명하는 것도 귀찮고, 내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게 낫다 싶어서 난 가만히 있는 선택을 했다. 10분밖에 안 되는 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었다.


어느 날은 친구들과 함께 펜션으로 여행을 떠났다. 잘 놀다가 난 잠시 피로해져서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을 했는데, 나를 뺀 나머지 친구들 간의 대화가 시작됐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휴대폰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데 점점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나도 껴야 하나? 고민이 됐다.


사실 이때는 학창 시절의 사례와 달리 딱히 그 대화에 참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 혼자 너무 소외되는 것 같고, 대화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뭔가 혼자 머쓱해지는 감정이 우상향 곡선을 그리다 보니 괜히 더 불편하고 초조해졌다.


아 여기서 말 안 한 부분이 있는데, 침대와 친구들이 대화하는 공간 사이에 파티션같이 간이 가림막이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내가 쉰다는 것만 알지 뭘 하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나는 고민하다가 '자는 척' 하는 선택을 했다.


그 이유는 친구들이 대화를 하다가 내가 뭘 하나 슬쩍 봤을 때,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휴대폰만 하는 걸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기 때문에 (별생각 없을지 모르지만 앞서 말했듯 그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싶었다) 눈을 감고 있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잠에 든 상태로는 대화에 참여가 불가능하다. 이건 어떠한 해석의 여지없이 분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조금 달라져도 봤었다. 직장에서의 일이었는데, 동료들이 일하다 말고 어떤 주제로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내 할 일도 바빠서 굳이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는데, 대화가 계속 길어지고 있었고 우리 팀 동료 중 나 혼자만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게 뭔가 이상한 그림으로 그려질 것 같았다.


순간 달라지고 싶었다. 막상 말을 걸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더 높았다. 어른들의 말이나, 인터넷의 짤막한 줄글 - 일단 해보면 별 거 아니다 등 - 여러 삶의 지혜로 채택됐을 것이 분명한 것들에 따라서도 그렇다. 어떤 식으로 대화에 참여했는지는 기억 안 난다. 기억에 남는 건 갑자기 불쑥 대화에 참여한 '나'라는 존재에 대해 어쩔 줄 모르겠는, 조금은 당황한 듯한 반응뿐이었다. 아, 이런 상황에서는 '바쁜 일이 있어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남는 게 편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이후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땐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떠올려보니 나는 '그런 상태'에 중독된 사람인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꽤 어린 시절부터 난 남들의 평가를 잘 갖다 붙이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나한테 똑똑하다고 했던 어느 순간부터, 재밌어서 했던 공부를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 수준으로만 하게 됐다. 조금만 해도 어느 정도 성적이 나오니, 못한다는 소리만 듣지 않게 하는 걸 기준으로 삼았다.


예쁜 옷을 좋아해서 자주 입고 다녔는데, 친구들이 나를 '잘 사는 애'로 바라보는 선망의 눈빛을 즐겼다. 아닌 척 거짓말도 몇 개 흘렸다. 적당히 잘나 보이는 내 모습을, 몇몇 질투 어린 시선을 즐겼다. 어린 시절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또래에 비해 내실이 꽉 찼던 아이로 기억됐던 나는 점차 평가와 기대를 남에게 위임하고 위선적이며 게으른 삶을 살게 됐다.


별 뜻 없이 남들 따라 대외활동을 여러 개 했을 뿐인데, 미래와 커리어에 탄탄한 비전이 있는 사람처럼 보길래 그냥 날 그런 상태로 봐주는 걸 즐겼다. 정규직이 아니지만 메이저 한 방송국을 여러 곳 다녔다고 멋있다고 해주는 사람들에게 변명을 하지 않고 그냥 잘난 사람인 척했다. 겉치레뿐일지라도 나는 믿어야만 했다. 어느 시기부터는 그 평가가 동아줄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렇게 난 적당히 그들에게 보여주는 방식으로만 행동을 취해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런 타이틀을 '유지'시키는 정도만. 정작 난 집에서 나를 발전시키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만 공부하는 척하고 집에서는 단 한 번도 펜을 잡은 적이 없다. 열심히 취업 준비하는 척 하지만 귀찮다고 몇 달간 지원서조차 넣지 않고 탱자탱자 놀았다. 남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정말, 진심으로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내가 아닌 남들의 시선으로 나를 규정하는 건 사실 무책임한 짓이다. 나에 대한 평가조차 남에게 떠넘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스스로를 발전시킬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나를 진정으로 마주 볼 줄 알아야 한다. 까마득한 시절부터 시작된 지독한 회피 성향은 조금씩, 천천히 나라는 사람을 갉아먹고 있었다.


지금은 일개 취업 준비생일 뿐인 내게 다들 나를 꿈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하지만 아직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인 상태라고 포장한다. 이건 아니다. 이제는 '그런 상태' 중독에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한다. 사실 시도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하고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이런 글을 씀으로써 나의 치부와 마주하고 싶었을 뿐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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