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빠사쥬 그랑 쎄르프 (Passage du Grand Cerf)
한 소녀가 어른들을 놀리며 긴 아케이드를 뛰어가고 있다. 어른들은 속수무책 이 아이한데 당하는 듯이 쫓아가고 있다...그 아케이드는 그랑쎄르프 빠사쥬...
아주 오래 전 본 영화가 있다. 천방지축 여자아이가 파리 전체를 들락날락 난리 법석을 치는 영화인데, 황당하지만 보다보니 빠져드는 영화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프랑스 누벨바그의 대표적인 감독 루이 말 (Louis Marie Malle, 1932-1995)감독의 영화 '지하철의 소녀' (Zazie dans le Métro: 1960)였다. 이 말썽꾸러기 여자아이는 영화 내내 정신없이 1960년의 파리를 종횡무진한다. 특히 좋았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 Philippe Noiret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점 (쌩 쉴피스 성당 씬에서)
Philippe Noiret의 모습: 영화에서 캡쳐 Galerie Vivienne에서의 유명한 씬: 영화에서 캡쳐
그리고 이 영화는 특히 두 군데 빠사쥬에서 촬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군데는 다음에 소개할 비비엔느 갤러리 (Galerie Vivienne)와 다음은, 이번에 소개하는 그랑 쎄르프(Passage du Grand Cerf)였다.
그랑 쎄르프 빠사쥬의 역사는 1825년으로 올라간다. 원래 호텔이 있었던 자리에 아케이드 상가를 짓게 되면서 생겼다고 한다. 그렇지만 현재의 남아있는 유리 천장, 철재 주물 기술이나 인테리어 양식들은 아마 기술적으로 가능해 진, 1845년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랑 쎄르프 빠사쥬는 내가 제일 많이 이용하던 메트로 4호선 Étienne Marcel 역에서 걸어갈 수 있다. 인근에 제일 좋아하는 박물관 중의 하나인 Musée des Arts et Métiers (국립 기술 공예 박물관)이 있어서 같이 방문하기도 좋다.
앞에 소개한 빠사쥬들 처럼 휘양찬란한 샹젤리제나 루브르 근처에 있지는 않지만 2구의 조용한 그래도 중심지인 옛 파리를 즐기기에 적당하다.
규모를 보면 그랑 쎄르프 빠사쥬는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서 높이 12m의 멋진 통로를 보이고 있으며 폭 3m, 길이 117m로뻗어가는 당당한 빠사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빠사쥬 안에는 꽃집, 고서점, 골동품점 등이 있어서 꽃향기와 함께 과거 파리지앵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과 같은 기운을 받을 수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회주의자 정치가이며 작가, 세번이나 수상을 지냈고 어쩌면 프랑스 진보 정치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Léon Blum (1872-1950년) 이 바로 이 빠사쥬 끄트머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2차세계 대전 전의 프랑스 정부의 수장이었던 그를 내가 기억하는 것은 어쩌면, 세계 최초 유급 휴가 즉 '바캉스'를 제도화 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뭐, 바캉스와 영화, 서로 어울리기는 하다.
그리고 파리 지하철 파업에 전 시내를 뛰돌아 댕기던 소녀 처럼 그랑 쎄르프 빠사쥬에서 시작해서 종횡무진 파리를 휘젓고 다닐 기회가 오기를 기대하면서 추운 봄날 서울의 퇴근후 저녁에 이 글을 올린다.
(월요일 화이팅! 그리고 바캉스를 위해 일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