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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로소 연 Mar 06. 2023

꼴 보기 싫었다가 안쓰럽다가

K고딩과 K고딩맘의 관계

“딸의 카톡을 차단했어.”

민사고에 다니는 H의 엄마 전화다.

"너무 화가 나서 하소연이라도 하려고 전화했어."

"그래, 전화 잘했어. 나도 S 때문에 기분 별로야."

"H가 기숙사에 있으니까 주로 카톡으로 대화하거든. 그래서 좋은 영상이 있으면 카톡에 공유하고, 좋은 글귀 있으면 캡처해서 보내주고, 뭔가 좋은 거 있으면 좀 봤으면 해서 보내주는데 대답은 ㅇㅇ 이거나 읽씹(메시지 확인은 하고 답을 안 함)이야. 전화통화도 자주 못하는데 그때마다 주절주절 다 말하기도 그래서 시간 날 때 보라고 보내주는데 하나도 안 봐. 그러면서 자기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보내달라고 카톡 하고. 너무 꼴 보기 싫어서 그냥 카톡 차단시켜 버렸어. H가 안 보는 거 뻔히 알면서도 또 보내고 있는 나도 너무 싫어서 그냥 안 보내고 안 받으려고."

자식의 싸늘한 반응에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인 엄마는 심통이 난다.


"떨어져 지내서 더 애타는 마음도 있지만, 안 보니까 오히려 다행이다 싶어. 입시는 점점 다가오고 경쟁자들은 눈에 불을 켜고 열심인데 내 새끼만 남친 생겨 연애하고, 동아리 장 맡아서 학교 행사는 죄다 나서고 있고. 그 꼴을 매일 봤으면 더 속 터졌을 거야. 담주에 기숙사 다시 들어가는데 얼른 가면 좋겠어."


"그런 꼴 매일 보면서 속 터지는 사람 여기 있다. 예비고 2가 하루 7시간 자면 적당히 아니, 잘만큼 잔 거 아니야? 그렇게 자고 스카 가서 또 졸았데. 점심 먹고는 식곤증 와서 졸고, 저녁에 국어학원 가서도 졸았다고 하니까 너무 화가 나는 거야. 그래서 정신 못 차린다고 화냈잖아."




현실감 없이 자기 내신 등급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 있는) 대학들은 붙어도 안 갈 거라 하고,

모의고사 등급은 공부 안 하고 시험본 등급이니까 공부하면 1등급 정도는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공부할 때 남들은 공부 안 하나, 수능은 재수생도 같이 본단다 이 녀석아!

엄마 속만 타들어간다.


입시는 '자리 바꾸기'라고 한다.

등급으로 점수로 줄을 세우는데 앞자리로 자리를 바꾸려면 그 자리 지키려고 꼭 붙잡고 있는 그들보다 더 노력해서 바꿔야 한다.

내어주기 싫어하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말로만 들어도 뒷목이 땅기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이런 상황을 내 새끼만 모르는 것 같다.




하루 7시간 자고 일어나 하루종일 졸았다는 S에게 뼈 때리는 말을 퍼부었다.

"입시는 자리 바꾸기야. 네 등급으로 갈 수 있는 학교랑 가고 싶은 학교랑 점수차이를 알기는 해? 가고 싶은 학교 간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해서 갔는지 찾아보고 물어봐.

서울대 간 사람들을 왜 대단하게 보는지 알아? 그 사람들은 자기의 모든 유혹을 이겨낸 사람들이야. 자고 싶고, 놀고 싶고, 쉬고 싶고, 왜 안 그랬겠어. 그런 유혹을 뿌리치고 고통스러워도 참고 이겨내서 대단하게 보는 거야.

유혹을 못 이기면 공부보다 재밌는 게 없도록 환경을 만들라잖아.

샤워를 1시간씩 하고, 유튜브 보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K대를 어떻게 가.

아니면 학교를 그냥 확 낮춰. 잘만큼 자고 놀만큼 놀면서 갈 수 있는 학교 가고 그냥 맘 편히 행복하게 살던가.

욕심만 있으면, K대 가고 싶다고 주문만 외우면 가냐? 지금하고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성적도 안 바뀌어."

S가 눈물 콧물 흘리며 운다.

"왜 우는 거야? 잠이 오면 잠을 깨려고 뭐라도 해야지 하루종일 졸고 와서 왜 울어. 여행 갈 때 비행기시간 놓친다고 하면 새벽 4시에도 벌떡 일어나서 놀면서. 공부할 때도 그런 정신력을 발휘해 봐."

"나도 잠 깨려고 했어."

"너무 졸리면 차라리 10분~ 15분 자고 일어나하던가."

"좀 자고 일어나려고 하면 자꾸 들어와서 깨우잖아."

관리형 스터디카페라서 모니터로 보고 있다가 조는 학생이 있으면 바로 들어와서 깨우는가 보다.

그럼, 쪽지에 '10분 뒤에 깨워주세요'라고 써서 붙여놓던가 하지, 그런 융통성도 없고, 졸았냐고 물어보는 엄마 질문에 솔직하게 다 말하는 S가 어이없게 웃기고 귀엽다.

좀 자려고 하면 자꾸 깨운다는 말에 웃음이 났지만 꾹 참고 다시 연설을 시작했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려고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야지. 회복탄력성이 있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거야. ’나는 잠이 너무 많아. 나는 단어도 금빵 까먹어. 외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안 되는 사람이야‘ 하고 속상해만 하면 뭐가 바뀌냐. 몇 시간 정도 자야 졸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자기만의 공부법을 찾아야지. 그냥 하던 대로 하면 계속 그 자리지.

너 지난번에 공부를 언제까지 해야 하냐고 했지? 네 신분이 학생이잖아. 학생은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 사람이야. 공부하는 게 학생의 일이야.

그냥 공부해야 하는 이 시기에 내가 얼마 큼까지 할 수 있는지 인내하고 견디면서 열심히 해보는 경험도 필요한 거야. 공부가 제일 힘들고, 어른들 사회생활은 편할 것 같지? 사회 나오면 더 힘들어. 돈 한 푼 벌기도 힘든 게 세상이야. 누가 거저 주는 줄 알아? 아빠가 집에서 장난치고 방귀 뀌고 그러니까 우스워보이겠지만 밖에서는 얼마나 열심히 일하시는지 알아? 집에서 맨 먼저 나가고 밤에도 늦게 들어오잖아.

남한테 싫은 소리도 들으면서 영업도 하고. 상품 개발한다고 연구도 엄청 많이 해.

학생 때 공부만 하는 게 젤 속 편한 거야.

네 공부를 엄마가 대신해 줄 수 없어. 네 머리를 열고 지식을 넣어줄 수 도 없잖아. 결국 네가 네 방식을 찾아서 공부해야 사회 나와서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 수 있어.

기본 밑바탕 없이 무얼 쌓을 수 있겠어. 고등학교과정 까지가 사회 나가하고 싶은 일할 수 있는 기본 교육인 거야. 그러니까 그냥 공부 언제까지 해야 하냐고 고민하지 말고 꾸역 구역 그냥 하면 돼. 공부가 금방 성과가 나는 것이 아니잖아. 김연아도 인터뷰에서 그랬다잖아. 힘든 훈련 할 때 무슨 생각하냐고 물어보니까 생각 안 하고 그냥 하는 거라고. 언제 100도가 될지 모르니까 그냥 열심히 하는 거라고. 지금이 60도인지 90도인지 모르니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거야. 99도에서 포기하면 얼마나 억울하겠어. 1도만 더 하면 물이 끓는 건데. 공부도 그냥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가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는 거야.

내가 들어왔던 모든 공부자극 대사들도 쏟아부었다.


"내가 너무 한심해서 눈물이 나. 계획도 못 지키고... 계속 졸리고... 잠도 못 깨고..."


'헉! 자기가 한심하다니......'

순간 정신이 확 들고 화가 안쓰러움으로 변했다. 주책맞게 눈물이 찔끔 나오려는 걸 꿀꺽 삼켰다.


“그럼, 내일은 알람 끄고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일어나. 몇 시간이든 실컷 자고 일어나.

12시간 자고 12시간 깨어있으면 밥 2끼만 먹어도 되겠네. 밥 먹는 시간대신 잠을 더 자면 되겠네. 얼른 자. “


다음날 토요일 정오가 다 되어 일어났다. 진짜 12시간을 잤다.

그래, 이런 날도 있어야지.




토요일 오후, 민사고 H의 엄마를 만났다.

"방금 치과 다녀왔어. H가 이가 아프다 해서 갔더니 목디스크 때문에 이가 아픈 거래. 목디스크 때문에 턱관절이 제대로 못 움직이고 그래서 입도 크게 못 벌리고 그래서 이가 아프게 느낀 거래. 지금 해줄 수 있는 건 통증을 줄이는 치료뿐이라고 해서 물리치료받고 서점 갔어."

자세 바르게 하면서 저절로 좋아지게 놔두는 수밖에 없다는 의사 선생님 얘기를 전하는 엄마 눈이 빨개진다.

엄마가 보기에 딴 데만 신경 쓰는 것 같아도 공부하느라 책상에 얼마나 오래 앉아 고개 숙이고 있었으면 목디스크가 왔을까?


"S는 점심때  일어나서 밥 먹고 학원 갔지. 어젯밤에 폭풍 잔소리 했거든, 그랬더니 S가 자기가 한심하다고 하면서 울더라."  

S가 나름 열심히 해도 점수가 안 오르는 자신이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하면 그런 말을 했을까 마음이 헤아려져서 가슴이 아려왔다.


우리 둘은 결국 서로의 눈물을 봤다.

꼴 보기 싫었다가 안쓰러웠다가, 왔다 갔다 하는, 짝사랑하는 자식들 때문에.

마음껏 하고 싶은 것 하라고 말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저 흐르는 눈물만 찍어냈다.

현실을 탓하기엔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토닥이며 또 가던 길을 간다.

언젠가 입시는 끝이 날테다.

그냥 꾸역꾸역 최선을 다해보자.

맛있는 밥 해줄게 먹고 힘내보자.


*사진출처: 픽사베이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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