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교사의 죽음을 보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무거운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역시나 주제는 교사들의 이기심이다. 고인이 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죽음이 교사의 업무과중의 증거가 되고 사례가 되어 교사들의 이기적인 주장에 논거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하기에 글을 쓴다.
1. 1만 보의 걸음 - 그게 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관련 기사들은 모두 '1만 보'에 힘을 싣고 있다. 죽음을 다루는 기사이므로 댓글을 지원하지 않는 기사가 많긴 하지만, 댓글을 지원하는 기사에서는 사람들이 1만 보가 많으냐 적으냐로 논쟁 중이고.
댓글이 지원되는 머니투데이의 기사. 클릭하면 보실 수 있다
대부분 1만 보는 과중한 노동의 증거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일부는 '교사'니까 1만 보는 과중한 것이 맞다는 의견도 있었다.
1만 보를 일부러 채우기 위해 점심시간에 산책을 나서곤 하던 교사들의 무리와 함께 일한 적이 있고, 스스로도 당구만 2,3시간 쳐도 1만 보는 우습게 채워지는 경험이 있던 터라 이 기사들의 1만 보 논쟁이 개인적으로는 같잖기만 한데.
그렇더라도 뭔가 근거는 찾고 싶어서 조사를 좀 해봤다.
중년의 걸음 수에 대한 조사 결과를 좀 찾아봤는데
나이와는 크게 상관없이 분당 100에서 130걸음으로 본다는 결론이 나왔다.
출근과 퇴근을 자차로 하느냐 도보와 대중교통으로 하느냐에 따른 차이가 심하게 날 수 있다는 데이터다. (도보 20분 거리의 직장이라면 출퇴근 만으로도 4000에서 5200보가 채워진다)
또한 교사라는 직업, 특히나 중등교사라는 직업이 어디 가만히 앉아있는 직업이던가?
기본적으로 '서서'하는 수업에 수업 간 이동, 학생지도 등 사무직에 비해 1.5배~2배의 활동량을 보이는 직업이다.
1만 보라는 걸음 수 자체도 신체에 무리가 갈 수준이 아님은 물론이고 오히려 권장되는 편이라는 점. 중등 교원의 업무활동에 당연히 필요한 걸음 수만 카운트해도 상당한 수준일 수밖에 없다는 점과 출퇴근, 일상생활 습관도 걸음 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1만 보를 걸었다는 것은
어떠한 업무과중의
증거도 되지 않는다.
2. 근데 왜 1만보를 들먹일까?
상상의 나래를 펴서 소설을 써 보자면,
교사의 이기심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떼고
오히려 교사 업무경감의
레버리지로 사용하려는 수작.
이라고 생각한다.
기사에서 다룬, 고인이 되신 교사의 업무과중은 세 가지이다.
60여 개 교실을 오고 갔다는 1만 보 (방송장비 노후)
교권침해 학년의 임시 담임
정보부장 부재로 인해 일을 떠맡음
아무리 생각해도 방송장비 노후로 인해 교실을 오가며 '1만 보'를 걸었다는 것이 다른 업무에 비해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60개 교실을 가진 대형 학교에서 교사 수도 상당할 텐데 , 일을 나눠서 할 교사가 없어 임시 담임에 정보부 업무까지 홀로 떠맡게 된 것이 주요해 보이는데 나만 그런가?
방송송출의 업무와
임시담임의 업무와
정보부의 업무를
한 사람에게 맡기고는
뭔가 일이 있을 때마다
머슴 부르듯 교실마다 호출해서
본인 스스로는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알아서 조치해 주기를 바라는 모습들이
눈에 그려져서 오히려 슬프다.
교사의 과로사를 확신한다면, 그 가해자는 공교육 시스템인가? 아니면 홀로 그 일을 떠맡게 한 동료 교사인가?
'1만 보'를 운운하며 마치 교사에게 어울리지 않는 육체적 혹사를 당한 것이 원인인 것처럼 죽음을 재구성하고 '공교육 시스템'을 들먹이면서 교사 개개인들의 잘못에는 면죄부를 주는 행태는 참람되기 그지없다.
도의적으로라도.
지금 주변에 과도하게 많은 업무를 맡고 있는 동료교사가 있지 않은지, 업무의 불평등이 심하지는 않은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너무 무관심하게 지낸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하지 않나?
3.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교사단체는 '업무과중으로 인한 순직'으로 빠르게 결론내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전쟁 중에 돌아가신 군인마저도 순직을 인정 받기 위해선 '조사'가 필요하다.
교사단체들의 주장은 '답정너'이며
평소에 그들이 얼마나 특혜 속에
살아왔는지를 증명한다.
짧은 기사에 정보가 많이는 없지만, 여러 기사들에서 볼 수 있는 '업무과중'의 증거는
1만 보의 걸음 수
임시담임, 정보부 업무 등 고인이 맡은 업무
유족이나 동료의 증언
정도가 있다.
야박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업무과중의 증거로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1만 보의 걸음 수는 앞서 말했듯 어이없는 근거이고, 중첩된 업무라는 것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를 묵인하고 방조한 기관과 동료의 무능과 이기심이 원인이지 업무가 과중하다 말하긴 어렵다.
무엇보다
초과근무를 했다는 내용이 없다
학교에서 업무를 했다면 초과근무신고와 초과근무대장으로 확인할 수 있고, 재택근무로 퇴근 후에 업무를 했다면 vpn 접속기록과 공문기안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수 있는 일이긴 한데,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그냥 꺼내보자면
많은 업무를 맡고
책임을 지고 있었지만
업무과중이라고 할만한 단계는 아니
라는 게 내 생각이다.
다만, 짐작하기로는
60개의 교실을 가진 대형학교에 수많은 정교사들이 근무할 텐데, 고인이 되신 분을 적극 도와주는 사람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어떤 업무를 할 사람이 필요하게 되면 모두들 사색이 되어 ,
'나는 못한다.'
'나는 해 본 적 없다'
'나는 이런 거 잘 못한다.'
'ㅇㅇ씨가 이런 거 잘하잖아'
와 같은 말들로 빠져나가기 바쁜 교사들을 겪어본 경험이 있어서 고인은 좀 외로우셨겠구나 싶다.
만약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거라면 (기사에는 '쓰러졌다'라고만 나와있다) 원인은 업무과중이 아니라 외로움과 서러움일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글의 처음에도 말했지만
나는 이번 사건이 교사들의 업무경감의 레버리지로 사용되길 원하지 않는다. 진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