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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Jan 16. 2023

내향인과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 쏟아지는 것

우리집은 6층. 엘리베이터는 14층에서 내려오고 있다. 13층, 12층… 엘리베이터가 7층을 지나기 전에 버튼을 눌러야 6층에 멈출 것이고, 14층에서 출발한 아파트 주민과 함께 1층으로 내려갈 수 있다.


그렇다. 그게 내가 5층을 지나고 나서야 버튼을 누르는 이유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와 호흡하는 순간, 그 정적과 어색함은 나이를 먹어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잡기 주저하는 이유는 밀폐된 공간이 주는 압박감 때문만은 아니다. 14층에서 1층까지 무사히 내려가길 바라는 누군가의 여정을 방해하는 죄책감도 한몫한다. 신체의 90% 정도를 엘리베이터에 욱여넣었을 뿐인데 벌써 닫힘 버튼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면 아, 이 사람 나 때문에 화가 단단히 났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손길을 한동안 마음에 담아둘 나다.


급한 순간에는 나 역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큰맘 먹고 잡기도 한다. 단, 한 가지 거쳐야 할 의식이 있다.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밀려오는 긴장과 함께 머릿속으로는 빠른 속도로 질문이 쏟아진다. 모든 질문에 성실히 답변한 후에야 엘리베이터에 무사히 탑승할 수 있다.


'그래도 같은 아파트 사는 이웃인데 눈 마주치면 인사를 건네야겠지? 대화가 길어지면 안 되니 목례 정도면 되려나. 에어팟을 낀 채로 대답하면 실례겠지? 노이즈캔슬링은 미리 풀어놔야겠다. 향수를 너무 많이 뿌렸나? 타자마자 구석으로 가서 내가 더 늦게 내려야지. 아, 그러다 나가는 문을 애매하게 잡아주기라도 하면 어쩌지?'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나에게 내려지는 결론은 하나.


'음… 그냥 계단으로 내려가야겠다.

운동도 되고 좋지 뭐...'


엘리베이터가 중간에 멈췄는데 아무도 없다고 당황하지 마세요. 고뇌하던 내향인이 다녀간 자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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