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를 떠올리면 생각하는 사람이 떠올라요. 그거 있잖아요. 로댕이 만든 조각상."
후배는 휴대폰으로 검색을 하더니 조각상 사진을 보여주었다.
술자리는 즐겁게 이어졌다.
물처럼 술처럼 대학시절을 꼴깍꼴깍 넘기고 나서도 그 말은 오래도록 남았다.
허리를 깊게 수그려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사람.
그렇다.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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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가장 나쁜 일'에서는 고통이 파도처럼 덮칠 때 마음에 못을 박으라고 한다.
떨어지고, 흩어지고, 흐려진 걸 붙잡아 걸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못과 같다.
나는 허물어질 것 같은 순간마다 생각에 나를 걸어놓고는 했다.
못 박힌 생각은 점점 늘어나 강박이 되었다.
20대를 그렇게 망치질하며 보냈다.
'눈에 띄게 잘하면서도 눈밖에 날 정도로 잘난 척하면 안 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귀담아 들어도 내 속마음은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돼.'
'누구에게나 믿음직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누구에게도 의지하면 안 돼.'
'실패에 초연하면서도 성공적인 결과를 내야 해.'
헐거워진 생각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후회가 밀려오면 울컥울컥 눈물이 솟았다.
베갯잇이 소리 없이 축축해졌다.
괜히 서러운 날들이었다.
별 이유 없이도 한참 슬펐다.
이제는 마음에 박힌 못을 뽑고 싶다.
절박하게 매달리지 않아도 괜찮은 삶을 살고 싶다.
좀 허술해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