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Div Dec 31. 2020

영화를 보며 생각한 것들... 넷플릭스 신작 영화 <맹

데이빗 핀처가 각 잡고 만든 영화에 대한 사랑고백

 얼마 전 데이빗 핀처의 신작 영화가 조용히 공개가 되었다. 조용하 다는 건 아마도 우리나라 기준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많은 영화팬을 거느리고 있는 거장의 영화가 너무나 반응이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극장가가 그리고 영화계가 이슈가 없는 것도 있지만 어차피 이 영화는 처음부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제작됐기 때문에 이 영향은 아닐 것 같다. 넷플릭스 영화이고 스타 배우가 등장하지 않고 흑백영화이기 때문에 그냥 선택을 받지 않는 게 아닐까. 과장하자면 넷플릭스 영화라서 굳이 사람들이 찾아보지 않는 느낌이다. 그곳에는 정말 수많은 콘텐츠가 존재하고 매 순간 이슈가 되는 콘텐츠들이 전면에 배치가 되니 열심히 찾아보지 않는다면 이런 영화가 공개되었는지 모르고 지난 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학습의 효과 때문인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에 대한 넷플릭스 유저들의 기대감이 그리 크지 않은 부분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머릿속으로 그동안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중에서 사람들에게 회자가 된 영화를 한 번 떠올려 보면 된다. 지금 바로 떠오르는 건 봉준호 감독의 <옥자> 정도. 하지만 넷플릭스에서는 인지도 있는 감독들과 함께 많은 오리지널 영화들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흥행을 크게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마케팅을 대대작으로 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나마 많은 마케팅을 쏟아부은 넷플릭스 영화라고 하면 마이클 베이의 <6 언더그라운드>, 넷플릭스의 딸 밀리 바비 브라운이 주연을 한 <에밀라 홈즈>, 샤를리즈 테론이 나온 <올드 가드>, 크리스 헴즈워스가 나온 <익스트랙션> 정도. 이 중에서 평단과 관객에게 호평을 받은 건 <익스트랙션> 정도가 다이다. 나머지 영화들은 기대 이하의 만듦새로 혹평을 받거나 주목을 받지 못하고 관객들 관심 밖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반면 흥행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작가들에게 전적인 권한을 부여함으로 인해 흥행은 되지 않았지만 평단과 영화광들에게 호평을 받은 넷플릭스 영화들은 정말 많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는 하지만. 간단히 언급하자면 <결혼 이야기>, <아이리쉬 맨>, <로마>, <언컷 잼스>, <두 교황>, <카우보이의 노래> 등을 들 수 있겠다. 얼마 전 공개된 데이빗 핀처의 새 영화 <맹크>도 이런 영화들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넥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

 <맹크>는 데이빗 핀처가 오랜만에 극영화로 복귀하는 작품이다. 그의 마지막 극영화 <Gone Girl>(개봉명: 나를 찾아줘)가 2014년 작품이니 6년 만에 새로 나오는 영화이다. 그동안 넷플릭스에서 걸작 드라마 <마인드 헌터>를 제작, 연출했고 중간에 브래드 피트와 <월드워 Z>의 후속 편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있기는 했지만. 시즌2까지 진행된 <마인드 헌터>의 차기 시즌을 미루고 돌연 <맹크>라는 영화를 제작한 것이다. 이 영향인지 아니면 낮은 뷰어수 때문인지 데이빗 핀쳐의 골수팬들에게 최고의 드라마로 찬사를 받은 <마인드 헌터>는 시즌2를 끝으로 쇼가 결국 취소가 되었다. 팬의 입장에서 다시 쇼를 부활시켜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데이빗 핀처가 <맹크>를 만들기로 결정한 것은 아마도 넷플릭스의 전적인 지원과 권한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뒤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극장 흥행을 생각해야만 하는 스튜디오에서는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데이빗 핀처와 넷플릭스와의 끈끈한 관계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넷플릭스 하면 누구나 아는 OTT 플랫폼의 선두주자이지만 처음 등장할 때는 낯선 매체와 배급 형태였다. 이런 인식을 한 방에 바꾼 것이 데이빗 핀처가 제작과 연출을 맡은 넷플릭스의 대표 오리지널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이다. 마지막 시즌이 주요 출연진의 이슈 때문에 엉망진창으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그전까지는 최고의 정치 드라마라는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다. 그리고 시즌 전편을 한 번에 공개하는 공격적인 배급 형태를 통해서 OTT 사용자들을 긴 시간 동안 잡아둘 수 있는 전략을 만들기도 했다. 요즘에는 이런 전략이 조금 바뀌어서 구독형 플랫폼 시대에 맞게 초반에 일부 회차를 공개하고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를 릴리즈 하는 형태로 진화하기도 했지만 <하우스 오브 카드>로 시작된 이러한 릴리즈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고 시장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데이빗 핀처는 넷플릭스의 시작부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최근에 계약을 갱신하면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넷플릭스에서 자신의 작품 활동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데이빗 핀처가 참여한 넷플릭스 시리즈들]

 다시 <맹크>의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맹크>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영화사에 길이 남은 걸작인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의 시나리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스토리는 간단하지만 영화 안에는 무수히 많은 뒷 배경이 담겨 있고 이런 사전 지식이 없으면 지루한 영화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여기에 데이빗 핀처의 욕망까지 더해져서 <시민 케인>이 나온 1941년에 만들어진 것 같은 영화와 같이 고전적인 스타일을 그대로 구현해 놓았다. 영화를 좋아하는 시네필 중에서도 이런 흑백 영화를 많이 접해본 사람이 어느 정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처음 접하는 요즘의 관객에게는 너무나 낯선 관람 환경일 것이다.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부분은 고전적인 흑백 화면이다. 요즘은 촬영 장비들이 너무나 좋아지고 이를 재현할 수 있는 스크린들도 좋아지고 있어서 비현실적인 사실감 때문에 놀라는 경지까지 이르렀지만, 이 영화는 그걸 반대로 돌려서 가장 최신의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고전적인 흑백 화면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데이빗 핀처 하면 예전부터 디지털카메라 사용에 선도적이었던 감독이었고 ‘레드원’이라는 기종을 가지고 디지털 화면은 계속 실험해 왔는데 이번에도 ‘레드원’을 만든 회사와 협업해서 가장 최신 기종을 가지고 가장 고전적인 흑백 화면을 재현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직 스테레오 사운드 트랙이 개발되지 않은 1940년대의 영화 속의 사운드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서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운드를 하나의 트랙으로 믹싱을 했다. 이런 과정 때문에 이 시기 흑백 영화의 사운드는 들었을 때 먹먹한 느낌이 나는데 최신의 영화인 <맹크>의 사운드가 바로 이런 느낌을 그대로 재현해 낸 것이다. 이런 고전적인 관람 환경 때문에 흑백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당혹스러운 경험이 될 수 있다. 데이빗 핀처의 영화적 욕망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데, 이 영화의 스토리 설명에 언급한 <시민 케인>이라는 영화를 그대로 가져온 부분이다. 영화 초반 오프닝 크레딧이 올라갈 때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이름이 나온다. 바로 시나리오 작가 이름에 데이빗 핀처와 같은 성을 쓰는 잭 핀처(Jack Fincher)라는 크레딧이 뜨는데 바로 몇 년 전 돌아가신 감독 자신의 아버지이다. 평생을 에세이스트와 칼럼니스트로 여러 지면에 글을 기고하던 분이었다고 하는데 은퇴 후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다른 할리우드의 유명 인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대본을 집필 중이었는데 아들인 데이빗 핀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손 웰즈의 걸작인 <시민 케인>의 공동 각본가로 이름이 올라와 있는 ‘허먼 맹키위츠’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한다. 원래 데이빗 핀처도 자신의 4번째 영화로 연출을 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순서대로 하면 <에일리언 3>, <세븐> 그리고 <더 게임> 이후에 이 <맹크>를 연출하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 40년대의 흑백영화를 그대로 재현하고 싶어 했던 그의 욕망을 스튜디오에서는 허락해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포기하고 만든 게 그 유명한 <파이트 클럽>이다. 어쨌든 돌고 돌아서 데이비드는 넷플릭스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받고 본인의 영화적 욕망을 다 담아낼 수 있는 <맹크>를 만들게 되었다.


 <맹크>가 놀라운 점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데이빗 핀처가 영화에 대한 주도권을 모두 가지고 영화를 연출했다는 부분이다. 이것은 영화의 주된 스토리인 <시민 케인>의 제작 과정과 일치한다. 20대의 젊은 천재 작가였던 오손 웰즈에게 RKO라는 스튜디오는 전권을 쥐어준다. 이는 <맹크>의 영화에 간략하게 언급이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요즘은 거의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세기가 바뀔 때 아니면 영화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었을 때 여러 유력 언론들에서 역대 영화 베스트를 뽑은 적이 있다. 어떤 조사를 하든지 간에 <시민 케인>이라는 영화는 무조건 top 5에 들던 영화이고 아마도 가장 많이 1위를 한 영화로 기록되었다. 그 이유는 현대 영화의 시작이라고 할 만한 혁신적인 연출과 시나리오 그리고 촬영 기법을 1940년대에 구현해 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20대의 젊은 감독이. 하지만 이렇게 역대 영화 순위 1위에 자주 거론이 되는 영화지만 그래서 많은 영화광이나 시네필들이 무조건 알고 있는 영화이지만 실제로 이 영화를 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냥 주요 장면만 본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그도 그럴 것이 지금에 와서 이 영화를 보면 새롭다고 느낄 만한 부분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리고 스토리 상으로도 흥미로운 게 그렇게 많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영화가 손꼽히는 이유는 시대를 앞서갔던 천재의 역량과 현대 영화의 시작이라고 할 만한 요소들을 보여준 첫 영화로 평가를 받기 때문일 것이다. <맹크> 영화 자체가 그리고 제작 과정은 <시민 케인>과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다. 1940년의 <시민 케인>의 시나리오를 쓰려고 고뇌하는 주인공 맹크의 모습과 1930년대의 잘 나가던 시나리오 작가였던 맹크의 모습이 플래쉬백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교차하는 구조. 그리고 마지막으로 갈수록 이런 교차의 리듬이 점점 빨라지면서 전체적인 사건의 의문점이 해결되는 구조 등이 어느 순간 <시민 케인>과 닮아 있다는 것을 불현듯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심지어 몇몇 장면은 구도를 그대로 가져온 듯한 연출을 보여 준다. 이게 관객들에게 정확히 전달이 되려면 이를 보는 관객들이 <시민 케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선택을 한 부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전 영화에 대한 사랑을 그리고 이를 구현하고자 하는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한다. 이게 데이빗 핀처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가 아닐까. 다른 예로 데이빗 핀처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마돈다의 <Vogue> 뮤직비디오도 이런 고전 영화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들어낸 작품 충 하나이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시민 케인>을 사전에 관람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미리 알고 있다면 더 재미있게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 <맹크>를 재미있게 보게 된다면 반드시 <시민 케인>이 어떤 영화인지 찾아보게 될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극장에 가는 것이 어려운 시기이고 그래서 OTT를 통한 개봉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를 통해서 많은 영화들이 공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가 가지 전에 데이빗 핀처의 <맹크>를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작가의 이전글 코만단테 그라인더로 바꾸고 달라진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