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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Apr 15. 2024

[그래서 비트겐슈타인] 1장-철학, 2장-나



001 철학 -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발견 


비트겐슈타인은 '세계가 어떤지가 신비한 것이 아니다. 세계가 있다는 것이 신비한 일이다'(논고/6.44)라고 말했다.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세계의 어떠함에 대한 신비를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건 다른 분과학문에서 다룬다. 과학,사회,국어 등등 이 세계가 어떠함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은 따로 있다. 그런데 이 세계 자체에 대한 신비, 거기에 몰두하는 사람이 바로 철학자다. 

 이 세계 안에는 분명 신기한 것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인간이 연구하고 알아가며 답을 찾아야 하는 분야도 그만큼 많다. 그런데 철학이 관심을 갖는 것은 그 어떠함보다 세계라는 존재 자체에 있다. 

 애초에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세계의 존재 자체에 압도 당하는 것.  아무리 발버둥쳐도 꼼짝할 수 없는 그 감각. 

세계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이 감각을 경험하고 나면 삶의 의미가 엄청난 수수께끼로 둔갑하게 된다. 

분명 이전까지의 세계는 무엇이 맛있는지, 저 현상은 왜 나타나는지, 대학은 어떻게 가는지, 취업은 어디로 할지 등등의 고민이었다면, 세계 자체를 감각하고 나면 나의 삶 자체가 수수께끼가 된다. 

인생은 즐겁게 살면 된다식의 다짐이 갑자기 아무 의미없어보이는 당혹감과 절망감. 

이제는 사회 안에 북적북적 아웅다웅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되려 이해하기 힘들어지는 그 현상이 시작된다면 

철학이 시작된다. 


002 나- 세계의 탄생 


는 참으로 번거롭다.

아침에 일어나도 나이고, 온종일 쉼도 없이 이고, 밤에 의식을 잃을 때까지도 나이다.

에게서 도망갈 방법이 없다. 

이외의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냐고?

그런데 그 이외의 많은 사람도 나에게만 보인다. 즉 를 통해서만 존재한다. 

 외의 인간이 될 수 없다. 

는 이 세상에 단 하나이기에 그 무엇도 될 수 없다. 

다른 인간, 다른 동물들이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듯 에게 보이는데,

정작 그 가능성을 가 시험할 방법이 없다. 시대,지역,인종, 심지어 의 태어난 집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게 없다. 즉 세계에는 만 있는데 그런 가 아무것도 정할 수 없다는 무력감. 

가 되면 그 외의 가능성은 모두 소멸한다. 

타인이 어떤 마음인지, 와 다른 성은 어떤 삶을 경험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가능성은 무수하지만, 그 대상에 전혀 관여하지 못한 채 일생을 나로 살다가 끝내게 된다. 

이 세계는 얼마나 무자비한가. 또 얼마나 허무한가. 

부모가 없었다면 조차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기에, 자가분열 하지 않는 이상 라는 존재는 

분명 홀로가 아닌듯도 아니지만, 그러한 사실도 결국 나중에 익힌 지식에 불과하다. 

여전히 나는 나라는 좁은 방에 갇혀 있다. 좁은 방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그저 바깥을 바라보는 것이 삶이다. 

'나는 나의 세계이다'논고 5.63

(참고로 5.621 문장이 '세계와 삶은 하나다'이다)

라는 틀 안에서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세계의 탄생이라는 것은 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말할 수 있을 뿐. 

 내가 나라는 것은 논리학적으로 A=A라는 의미고, 이는 내가 나인 것에 대한 불쾌감을 가져온다. '자동률의 불쾌' 지긋지긋한 나. 

 비트겐슈타인은 '주체(나)는 세계의 일부가 아니라, 세계의 경계'라고 했다. (5.632)

세계 그 자체가 나이므로 나의 외부에는 아무것도 없다. 

  역시 다른 인간에게 '인간'으로 불리지만 결국 나=세계 안에 돌아다니는 '인간'의 꿈틀댐이지, 그것이  자체를 움직이지 못한다. 부동의 중심으로서 는 '인간'이 아니다. 

 혹시라도  자체가 변하는 일은 없을 지 상상해봐도  이외의 것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할 수 없으니 전혀 알수 없다. 상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라는 것은 곧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이 세계 자체인 셈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철저한 독아론은 순수한 실재론과 일치한다. 독아론의 '나'는 수축되어 연장 없는 점이 된다. 그리고 남는 것은 '나' 를 위해 조정된 실재다. - 논고 5.64


나=세계뿐이다. 여기에 있는 것은 하나의 실재뿐이다. 그래서 독아론은 실재론과 일치한다. 세계에  한사람 밖에 없다면 그 는 존재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이것은 곧 우리가 철저하게 고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계에 누구 하나, 자신과 같은 존재가 없으니.

 자신의 단칸방에 누구도 초대할 수 없고, 또 놀러갈 수도 없다. 단칸방이 곧 세계의 바깥 틀이므로 움직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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