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꼬투리 May 10. 2024

메리지블루일까?

결혼 전 감정

본격적으로 독립한 건, 7년 전이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난 후, 한동안 나는 구겨진 얼굴을 하고 귀가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나를 따라와 무슨 일 있냐고 묻거나, 아무 말 안 하는 대신 눈치를 봤다.


나는 짜증 혹은 화를 내는 방식으로

엄마의 마음을 할퀴었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내 감정을 추스르는 것도 버거운데 엄마를 대하는 나를 미워하게 되는 건 더욱 싫었다. 연애가 끝나고 난 후, 누구나 그러하듯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연애의 끝이 곧 내 실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독립을 결심했다.


말로만 독립한다고 했을 뿐,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터에 실연은 좋은 핑계였다. 엄마는 설마, 설마 했던 것 같다. 집세를 비롯한 생활비를 이유로 나를 집에 붙잡아 두려 했지만 마감 때마다 녹초가 돼 서울-수원을 어가는 나를 생각하며 그 마음을 돌렸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독립생활.

결론부터 말하면, 독립은 나에게 역시나 잘 맞았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부터 엄마에게 독립을 말했다. 엄마는 아직 어린 자녀의 독립 결심을 서운해했다. 너무 빨리 곁에서 떠나려는 어린 딸. 그런 엄마 맘을 뒤로한 채 어린 내 눈에 TV 드라마에 나오는 싱글들은 너무나 멋졌다.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면 으레 그렇게 괜찮은 오피스텔에, 번듯한 차를 몰게 될 줄 알았다. 물론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생활비에 대한 압박은 있었기에 최대한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옥탑방이 아닌 척 하지만, 사실은 옥탑방인) 첫 집을 구했다.

양재시민의 숲 근처에 있는 상가주택이었는데, 겨울은 그럭저럭 지낼만했지만 여름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 집에서 3년을 지냈는데, 당시 집주인 할아버지가 내 이사의 이유를 듣곤 말했다.

"거기 여름이면 맞바람 불어서 시원한데 이상하네?"

(세상에 집주인들은 세입자가 살고 있는 그 집에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그런 말 좀 안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집에서 난 5년을 살았고, 3주 후면 이사 나간다.


내가 이 집을 구할 때 우선순위로 꼽은 건, 엘리베이터가 있을 것, 비교적 신축일 것, 큼지막한 가전제품이 옵션으로 들어가 있을 것.

모두 전 집이 갖추지 못한 것들이었다.

생각해 보면 집을 구하는 건, 연애 상대를 고를 때와 비슷한 것 같다.

전 연인이 갖지 못했던 혹은 단점이라 여겨졌던 것들을 보완한 새로운 연인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암튼 혼자 살기에 딱 좋은 신축빌라로, 이 집에서 5년을 살았다. 떠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멜랑꼴리 하다.


이 집에 사는 동안만 나는 무려 3번의 연애를 했고, 세 번째 연애 상대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이 집에 사는 동안 현재 다니는 회사로 전직 같은 이직을 했다.

또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준 고양이 조조와 3년을 살았다.


시공간이 분리될 수 없는 추억이 가득 담겨 있다. 나는 그 집에 살며, '이 정도면 괜찮은 삶이야'라고 되뇐 적이 꽤 많다.


재계약 시기가 왔을 때, 같은 조건으로 이만한 집을 구하는 건 어려웠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으며 뻔뻔한 집주인의 잇속을 더 챙겨주고라도 계약을 연장했다.


사실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걸 금지하고 있는 건물이라 다음 세입자에게 집을 보여주기 위해 조조를 다른 곳으로 대피시켜야 했다.

다른 곳은 곧 남자 친구의 집이었고, 덕분에 난 지금 두 집 살이를 하고 있다. 주로 고양이가 대피해 있는 남자 친구 집에 머물고 있지만, 한 번씩 내 자취집에 갈 때마다 야금야금 짐을 빼고 있다.


그러던 어느 주말, 그날도 옷가지 몇 개를 챙겨 오겠다고 남자 친구에게 말하고, 혼자 그 집에 갔다. 하필 그날 유독 저녁노을이 붉었다.

그즈음 조조는 남자 친구 집에서만큼은 단 둘이 살 때는 생전 하지 않던 분리 수면을 했고 내 마음은 조금 아쉽규 쓸쓸했다.

고양이와 보내던 둘만의 시간이 너무나 애틋하게 느껴졌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혹은 다시 재현될 수 없는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사들은 공감하겠지만 고양이는 집사와의 애착관계는 오직 둘만이 있는 시공간에서만 보여준다)

자기 전 내가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자신의 자리를 찾듯 내 머리맡에 스핑크스 자리를 하고 그르릉 대고 앉고, 불을 끄고 잘 채비를 하면 내 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자리 잡았다. 부드럽고 따뜻한 생명체는 기꺼이 나와 잠자리를 함께 했다. 짧은 시간 안에 형성될 수 없는 관계를 쌓았던 곳. 그곳에 더 이상 조조는 없다. 이 집보다 2배는 넓은 남자 친구의 집에서 조조는 밤만 되면 우다다를 이전보다 더 열심히 하며 적응하고 있지만 좀처럼 우리 둘이 자고 있는 침대 위에는 침범하지 않는다. 나는 그토록 기다렸던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됐다. 분명 우리 둘 모두에게 잘된 일인데, 어쩐지 마음이 허전했다.


자취집을 다녀온 그날 밤 나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울음이 터졌다. 당황하다 이내 토닥여주는 남자친구는 함께 본격적으로 살 집을 얼른 알아보자며, 어수선한 이 상황에 느끼는 혼란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의 사려 깊음에 고마운 한편, 처음 느끼는 이 감정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니, 이게 말로만 듣던 메리지블루(Marriage Blue)인가 싶다.


작가의 이전글 테니스 치듯 살아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