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15년 차에 접어
한동안 '무해하다'는 말에 꽂혔다.
여전히 형용사로 흔하게 사용돠는 '무해한'이라는 말이 썩 편하지 않다. 특히 사람 앞에 쓰일 때, 불편함을 느끼는데 그건 어쩌면
사람을 해를 끼치거나 끼치지 않거나하는 이분법적 분류에 대한 반발심 때문일 것이다.
물론 최은영 작가의 소설 <내게 무해한 사람>을 보며, 그 말의 뜻과 사용을 재고해 보려 애썼지만 쉽게 마음이 돌아서지 않는다.
그렇게 인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내가, 나의 쓸모를 끊임없이 생각한다. 요즘 세상에 나온 나는 유용한 인간인가, 무용한 인간인가를 생각하느라 괴로운 나날이다.
무해함과 유해함을 나누는 걸 불편해하는 내가 일관성을 가지려면 인간을 유용함고 무용함으로 나누는 것도불편해야 하는 거 아닐까?
사회생활 14년 차에 접어들어 지금껏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월급루팡'의 삶을 살고 있다. 자의는 아니지만 그 삶이 영 힘들다. 무엇보다 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이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왕 태어났으면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것은 기본, 최소한 1인분의 역할은 하고 싶다. 여유가 된다면 1.5인분까지도하면 좋을 것 같은데.
10년간 같은 일을 했고, 그 일이 쓸모가 있을 것 같은 곳을 찾아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는데 작년 말부터 이 회사에서 내 쓸모는 무엇인가, 더 나아가 쓸모가 있긴 한가 의심하고 있다. 내가 무용하다는 생각은 자기 효능감, 자존감, 자신감을 모두 동반하락 시키고, 열등감, 삐뚤어진 자기 객관화, 우울의 영역은 동반상승 시켰다.
자기 계발서 저자들은 누군가의 의지가 아닌 채로 세상에 태어났으니, 그것만으로도 제 몫을 다 한 거라고 말하지만, 삶이 어디 자기 계발서 같은가?
부모님의 의지로(?) 태어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는 부유하게, 건강하게 살고 싶은 욕심이 드는 걸.
사람을 두고 무해함과 유해함으로 나누는 건 불편해하면서도 무용함과 유용함에는 왜 쉽게 나를 분류하는 것일까?
고민은 계속된다.
어떤 회사든 메인이 되는 영역이 있다. 삼성전자는 전자기기 개발과 영업, 농심은 라면 뭐 그런 식으로. 보험회사는 압도적으로 영업이 중심이 된다. 그리고 나는 영업을 서포트하는 직무의 일을 한다. 메인 영역에 있다가 서브 영역에서 일하려니 영, 감질맛 나는 것일까? 어쩌면 일복 많은 소띠여서 일이 없으면 불안하고 허전한 것인지도. 직급에 ‘장’ 이 붙으면 시키는 일만이 아니라 일을 만들어야 한다는데.
한편으론 과장 나부랭이가 일을 벌려봤자 얼마나 벌릴 수 있을지. 무력감이라는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