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독, 맛 중독

by 이윤수

아름다운 것을 보면 즐겁다. 아름다운 사람과 교감하면 행복해진다. 따지고 보면 그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는 생산성이 없는데 왜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사람)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기까지 할까? 단순히 기분 좋은 자극을 넘어서 왜 외모를 보고 그 사람의 인격과 능력을 판단할까?

지금 인류는 아름다움에 중독되어 있다. 인터넷과 시청각 매체가 발달하여 시각정보가 대규모로 쉽게 멀리 전달되고 직접적 교류는 줄어들수록 사람들은 겉모습의 아름다움에 더욱 집착한다. 특히 한국은 성형으로 외모를 고쳐보려는 시도가 보편화되기까지 하고 어느 정도 효과를 보기도 한다.

이렇게 인간이 외모에 집착하는 이유는 시각이 발달했기 때문이고 시각이 발달한 이유는 인간의 잡식성과 사회성에 그 원인이 있다. 인간의 눈은 육식동물의 눈과 초식동물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즉 양안이 앞을 향하고 있어서 먹잇감과의 거리를 측정하는 데 유리한 것은 육식동물의 눈과 같으며 (초식동물은 거리감각보다는 넓은 시야가 필요하므로 두 눈은 각각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 다채로운 색깔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초록색 잎 사이에 숨어있는 익은 과일을 따먹는 데 유리한 초식동물의 눈과 같다.(대부분의 육식동물은 색맹이며 움직이지 않는 대상은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시각은 발달하지 않았다. 대신 예민한 후각과 청각으로 숨어있는 사냥감을 찾아낸다.) 이렇게 인간의 눈이 발달한 것은 인간이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다양한 먹이를 찾아서 먹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무리 속에서 성공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표정을 잘 읽어야 하기 때문에 시각정보에 삶을 의존하게 된 것이다. 만일 인간이 육식이었다면 미스 월드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라 가장 멋진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을 우리는 아름답다고 하는가? 이것은 내재적인 것인가? 학습된 것인가? 시공을 초월하여 불변하는 것인가? 아니면 문화적인 현상인가?

인간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의 특성은 젊고 건강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여성은 임신을 잘할 수 있는 가임기의 건강한 여성의 특성 즉 충만한 가슴과 엉덩이 그리고 잘록한 허리, 밝고 팽팽한 피부, 뚜렷한 이목구비를 의미하고 남성은 적이나 위험한 동물과 잘 싸우고 먹을 것을 많이 구할 수 있는 강인한 근육과 체력을 가진 사람의 특성이다. 그리고 남녀 공히 좌우균형이 잡히고 평균적인 비율을 가진 모습이 건강한 즉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대상에 성적으로 이끌려 상대방을 선택한 사람은 결과적으로 임신과 양육에 유리해져서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길 가능성이 많아진 것이고 이것이 누적되어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관념이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새들에게 길고 화려한 깃털이 살아가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짝을 유혹하기 위해 끊임없이 발달시킨 것처럼 인간도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과 경쟁의 결과 그 '아름다움'이 실제적인 경쟁력을 더욱더 가지게 된 것이다. 즉 아름다운 사람들이 승진과 취업과 결혼에 더욱 유리하게 되고 그 결과 또다시 더 아름다운 자식을 낳게 되는 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변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수렵채집 시대와 중세는 말할 것도 없고 60년대의 미인과 지금의 미인은 확실히 다르다. 60년대 인기배우는 지금 여배우보다 훨씬 통통하고 남자들은 덜 곱상하고 더 야성적이다. 전반적으로 풍만감이 줄어들었는데 그 이유는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역할 변화에 있다. 즉 이전에는 출산과 가사노동이 여성에게 있어서 가장 큰 사회적 경제적 역할이었지만 지금은 그보다는 활발한 사회활동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요즘 여성스러운 남성들이 인기를 얻는 것은 남성들이 더 이상 근육을 써서 육체노동이나 싸움을 할 필요가 없고 여성들을 존중하고 함께 협력하는 부드러운 특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대가 바뀌더라도 그 기준이 바뀔 뿐 아름다움 즉 시각 정보에 집착하는 인간의 특성은 집착하면 할수록 더욱 강해지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미적 감각 역시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인간의 특성상 사회적 문화적으로 형성되어서 학습되는 것도 있지만 타고 난 미감은 인간의 생존에 유리한 환경에 비슷한 시각적 자극과 비슷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아침햇살이 비치는 초원의 다채로운 풍경은 밤새 공포에 떨었을 초기 인류에게 정말 반갑고 행복한 풍경이 아니었겠는가? 반대로 우리가 추하다고 느끼는 모습은 병들거나 죽은 형태와 유사하다. 만일 우리가 구더기라면 진물이 흐르고 축축 늘어지고 거무티티하고 냄새나는 사람을 보면 성적매력을 느껴 흥분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화음이 맞는 음악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고 날카로운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맹수들에게 쫓기던 시절에 발달시킨 것이고 섬세한 미각 역시 그 어느 동물보다도 다양한 먹이를 먹기 위해서 영양이 좋은 것과 독이 없는 것을 골라내게 위해 발달한 것인데 지금처럼 먹이가 넘쳐나는 시절에도 남아서 탐식(먹방열풍)과 폭식으로 오히려 인류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더 이상 본능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다. 이성으로 우리의 감정과 행동을 통제할 수 있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행복해지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다. 우리는 성공하면 행복해진다고 믿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성공을 추구한다고 착각하지만 돈을 벌고 권력을 잡는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듯이 아름답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언제나처럼 중용이 답이다. 미와 맛을 부정하지 말고 즐기되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즉 미와 맛의 중독에서 벗어나 덜 자극적이고 더 가까이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활동과 일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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