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장 청춘
일요일 아침을 먹자 마자 명수는 인철의 집으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인철의 아버지가 마당을 쓸고 있다. 명수는 꾸벅 인사를 하고
"인철이 있어요?"
라고 하면서 문간 사랑채에 있는 인철의 방으로 들어갔다. 인철이는 벌써 일어나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여친 만났냐? 좀 알아봤냐?"
"자식, 아주 안달이 났구나.."
"아, 얼른.."
"응, 시화반이래"
"그게 뭔대?"
"시 쓰고 그림그리고 전시회하고.. 뭐 그런거"
"그럼 윤주가 하는 도서반이랑 비슷한건가?"
"무식한 놈, 그게 어떻게 같아?"
"씨발, 난 그런데 딱 취미가 없는데.. 난 좀 운동 같은거 활동적인게 딱 좋은데.."
"그럼 관둬라"
"아니야 아니야 알았어. 고맙다. 나 간다."
명수가 돌아서서 나가려고 하자
"지랄하네, 어디 가는데?"
인철이 붙잡지도 않고 실실 웃으며 말했다.
"윤주한테"
"왜?"
"아무래도 윤주가 그런데는 잘 알 것 같아서 좀 물어보려고.."
"자알-해봐라"
인철이 하는 말을 들은척 만척 귓가로 흘리며 명수는 방을 나서서 바로 대문으로 향했다.
"벌써 가냐? 밥 먹고 가지.."
인철이 아버지가 하는 말에
"아닙니다. 밥 먹었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고 명수는 바로 윤주의 집으로 달음박질을 쳤다. 너른 들 논 위에서는 제비가 벌레를 쫒아 날쌔게 이리저리 곡예를 하듯 날고 있었고 명수는 논길을 따라 멀리 쏜 화살처럼 가볍게 달려갔다. 윤주 집까지 한참을 달렸지만 숨도 별로 차지 않고 즐거운 기대에 오히려 신바람이 났다. 윤주의 집에 도착한 명수는 인기척도 내지않고 벌컥 윤주의 방문을 열었다. 윤주는 방 바닥에 반듯하게 누워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야, 뭐냐? 뭐하냐?"
"응, 음악 좀 듣느라.."
윤주가 주섬주섬 일어나 앉으며 대꾸했다.
"뭔 음악인데?"
"응, 요즘 클래식 좀 들어."
"아이고, 졸리지 않냐?"
"처음엔 좀 그런데 자꾸 듣다보면 좋아. 요즘엔 클래식 전문 방송도 생겼어."
"그래? 난 아예 들어본 적도 없다. 난 가요가 좋아. 나 요즘 기타 배우고 있지 않냐! 멋있쟎아!"
"짜식, 겉 멋만 들어가지고..."
"야야, 애늙은이처럼 청승맞은 클래식인가 뭔가 보다는 훨 좋다. 신나고.."
"알았어. 잘 해봐라. 근데 아침부터 웬일이냐? 밥은 먹었냐?"
"응. 근데, 부연이 있쟎아, 걔 시화반이래. 너도 시 좀 쓰지 않냐? 영동여고 시화반 중에 아는 얘 없냐?"
"글쎄? 작년에 공동시화전 할 때 안면을 튼 얘들은 있는데.."
"잘됐다. 그럼 걔랑 인철이 여친이랑 같이 미팅 좀 주선해 봐라."
"왜, 직접 부딛쳐보는게 더 좋지 않나?"
"한 번 시도해 봤쟎냐? 그 쉽지 않더라."
"흠, 알았어. 한 번 알아볼께."
"오케이. 좋아 좋아. 부탁한다. 그럼 난 간다."
"오자마자 가려고? 놀다 가."
"안돼. 늦게 가면 아버지한테 혼나. 오늘 출하 상차 해야 돼."
"알았어. 고생이 많다. 수고해라."
"응, 너도 놀지만 말고 공부 좀 해라. 넌 공부 하나도 안 하는 데 성적 나오는 거 보면 신기하다. 인철이는 열심히해서 그렇다고 치고.."
명수의 잔소리에 윤주는 대꾸없이 빙그레 웃는 눈으로 돌아서는 명수를 배웅하고 도로 자리에 누웠다. 라디오에서는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윤주의 마음도 음악을 따라 어디론가 영원히 아름답고 맑은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 온 명수는 아버지 몰래 가만히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어머니와 누나만 밭에서 장미를 수확하고 있었다.
"어디 갔다와?"
"응, 잠깐 친구 집에.."
어머니의 말에 대충 대꾸를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안방 문이 벌꺽 열렸다.
"야,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어딜 자꾸 싸돌아 다녀?"
아버지가 열린 방문을 한 손으로 잡고 앉아서 명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명수는 대꾸도 못 하고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야, 사람 말이 말 같지않냐? 왜 대꾸가 없어?"
"예, 친구 집에 잠깐..."
"친군 왜?"
"뭐 좀 물어볼게 있어서..."
"쓸 데 없는 짓거리 하지 말고 저기 가서 장미나 따라. 오늘 12시에 상차다."
"예"
명수는 순순히 밭으로 가서 목장갑을 낀 다음 전지가위를 들고 장미를 수확하기 시작했다. 초여름이었지만 햇살은 뜨거웠고 비닐 하우스안은 높은 온도와 습도로 숨이 쿡쿡 막혔다. 몇 시간 동안 허리를 숙이고 왼 손으로 장미 가지를 잡고 오른 손에 쥔 전지 가위로 밑둥을 잘라 차곡차곡 상자에 담는 작업은 지리하고 힘이 들었다.
이 순간 명수에게는 장미가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한 돈벌이 수단이며 저주스러운 삶의 무게였고 마음 속으로 하루빨리 이 지겨운 삶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수없이 다짐하며 감각이 없어진 손아귀로 기계처럼 가위 손잡이를 움켜쥐고 또 쥐었다.
그렇게 세 사람이 4시간 정도를 꼬박 작업을 해서 오늘 출하 할 장미 백 상자를 다 채워갈 무렵 바깥에서 오늘 물건을 싣고 갈 화혜농협 트럭이 들어오는 소리가 ‘부릉부릉‘ 들렸고 그제서야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나와서 장미가 담긴 골판지 상자를 들고 트럭에 옮겨 싣기 시작했다.
장미는 꽃이 상처가 나지 않아야 하기에 심하게 눌러 담지도 못하고 신문지로 빈 공간을 채우기 때문에 골판지 상자는 그다지 무겁지 않아서 옮겨 싣기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그래도 아버지는 그것만이 힘 쓰는 남자의 일이라도 되는 듯 후다닥 그 일만 하고 트럭 조수석에 올라타고 공판장으로 가 버렸다.
이제 오늘 수매 금액이 얼마인지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는 아버지 만이 알 것이고 명수나 누나나 어머니가 돈이 필요할 때는 일일이 아버지에게 구걸하듯이 사유를 대고 한참을 기다렸다가 몇 번을 이야기 해야만 힘겹게 타서 쓸 수 있었다.
명수는 학교 기성회비나 책 값이 밀려서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독촉을 받는 것도 싫었지만 아버지에게 돈을 달라고 하기는 더 더욱 싫었다. 하지만 오늘 분명한 것은 동네 남자들에게 돈이 생겼으니 명수네 집에서 노름판이 벌어질 일이었다.
저녁이 되자 예상대로 동네 아저씨들이 하나 둘 씩 명수네 집으로 모여 들었다. 오늘 수매한 돈으로 주머니가 두둑한지 모두들 한껏 들떠고 의기양양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아직 주머니에 돈이 있는 초저녁에는 심부름값이나 안주 값이 후하게 나왔고 분위기도 좋지만 밤이 깊어면 돈을 잃은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고 결국 돈을 따서 기분 좋아서 한 잔, 돈을 잃어 기분 나빠서 한 잔씩 마신 술에 모두들 거나하게 취기가 오르면 한 판이 끝날 때 마다 거친 쌍소리와 욕이 터져 나오고 분위기에도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야, 명자야. 아저씨 오늘 기분 좋다. 여기 술 한 번 따라 봐라."
한참 끗발이 오르고 있는 박씨 아저씨가 손에 만원 짜리 지폐를 쥐고 흔들며 부엌에서 어머니가 안주 만드는 일을 돕고 있던 명수의 누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방 안에서 되지도 않는 공부를 한다고 책만 펴 놓고 앉아있던 명수는 이 소리를 듣고 열이 받아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누나는 어쩔 줄 몰라서 부엌에서 엉거주춤 서서 아버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돈을 잃었는지 인상을 쓰며 답배를 뻑뻑 빨면서 화투판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명자야, 이리 와 보래도!"
박씨 아저씨가 명자에게 손짓을 하며 불렀다.
"씨발, 누나 이리 들어 와 얼른!"
명수가 명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뭐? 씨발? 너 누구한테 지금 씨발이라 그랬냐? 이 새끼가 겁대가리가 없네! 어른들에게 버르장머리가 뭐야?"
박씨가 벌떡 일어나서 명수에게 삿대질을 했다.
"예, 어른이면 어른답게 처신하셔야지요!"
명수도 지지않고 고개를 쳐들고 맞받아 소리를 질렀다. 화가 너무 나니까 무서운 것도 눈에 보이는 것도 없었다.
"어어어, 저 놈이.."
박씨가 기가 막힌지 말도 못하고 발로 아버지의 엉덩이를 쿡 찔렀다. 그러자 명수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명수에게 성큼성큼 다가와서 다짜고짜 명수의 뺨을 후려 갈겼다.
"버르장머리없이 어디 건방지게...내가 이렇게 가르쳤냐? 동네 챙피하게! 막 돼 먹은 놈!"
명수의 아버지는 내뱉듯이 말을 하고는 다시 노름판으로 돌아갔다.
억울했다. 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뺨이 얼얼하고 붉게 부풀어 올랐지만 뺨은 아프지 않고 마음이 더 아팠다. 놀라서 다가온 어머니와 누나에게 명수가 조용히 말했다.
"나가자. 짐 싸라 누나, 서울로 가자."
"무작정 서울에 가서 우짤낀데?" 명자가 겁 먹은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대꾸했다.
"아무려면 이따위로 사는 것보다는 낫겠지."
"너 학교는?"
"그까짓 학교.. 어차피 대학도 못 갈 거, 그냥 올라가서 일하면서 기술이나 배우는 게 더 나아."
"엄마?" 명자가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걱정마라. 엄마. 이제 우리도 얼라가 아니고 다 살 구실이 있으니까 엄마나 잘 챙기고 있거라. 내가 담에 꼭 성공해서 이 원수를 갚고 엄마 호강시켜 줄끼다. 알았제?"
"아이고 내가 못나서 어린 니들 고생시키는갑다. 우짜면 좋노? 빈 손으로 객지에 가서 어찌 살라꼬 그라나? 여서 좀만 더 참다가..."
"엄마! 제발 이제 고만 하소! 이게 어제 오늘 하루 이틀 일인가? 허구한 날... 더 기다려봐야 아버지 사람되긴 다 틀렸다. 하루라도 빨리 결단을 내는 게 득이다." 명수의 언성이 높아지고 얼굴이 붉게 상기되면서 입술과 손 끝이 파르르 떨린다. 울화가 다시 치밀어 오르는 명수의 서슬에 어머니도 기가 질려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다.
"내일까지 기다릴 것도 없다. 당장 나가자. 아직 밤 차가 있을끼다. 얼른 짐 챙기라." 명수가 채근을 하자 명자는 옷장을 열고 가방에 옷가지를 주섬주섬 담기 시작했다.
"이거 얼마 안되지만 차비나 될랑가 모르겠다. 아이고 돈이라도 풍족해야 굶지는 않을텐데..."명수의 어머니는 장롱 속을 뒤적이더니 숨겨 두었던 만원짜리 서너 장과 천원짜리 몇 장을 꺼내서 명수에게 내밀었다. 눈물이 또 뚝뚝 떨어진다.
"걱정마라. 모자라는 거는 윤주한테 좀 빌리면 된다." 명수는 어머니가 내미는 돈을 받아들며 서랍에서 자신의 속옷을 꺼내고 옷걸이에 걸려있는 츄리닝을 걷어서 대충 자기 배낭에 쑤셔넣고 벌떡 일어섰다.
"다 챙겼나? 가자 그만!" 명자에게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하자 명자도 주춤주춤 일어섰다.
세 사람은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부엌을 통해서 작은 비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바깥은 어느새 밤 공기가 서늘했다.
"들어가라. 그만."
명수는 어머니 손을 잠시 잡으며 작별을 하고 달 빛도 없이 깜깜한 밭두렁 길을 어림짐작으로 한 발 한 발 더듬으며 앞장서서 걸어갔다. 비닐 하우스 안에서는 희미한 불 빛과 함께 노름꾼들의 왁자지껄 상기된 목소리와 긴장된 짧은 침묵이 반복되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우스에서 조금씩 멀어지자 눈이 차츰 희미한 별 빛에 적응이 되어 논두렁 길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다니던 잘 아는 길이라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멀리 읍내의 깜박이는 불 빛을 바라보며 성큼성큼 발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다짜고짜 돈을 빌려달라는 명수에게 윤주는 별 말 없이 돈을 좀 융통해주었고 대전 가는 막차도 가까스로 탈 수가 있었다. 일단 대전까지만 가면 거기서 밤이 새기를 기다렸다가 새벽에 서울 가는 기차를 타면 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