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걍 Apr 07. 2020

부활절

당신은 그 날에 다시 살아났는데, 나는 아직도 회복하지 못했다.

평생을 크리스천으로 살아온 나는 신을 사랑하지만, 나와 같은 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모이는 곳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신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배제하고 상처 주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그들은 모임의 자리가 아닌 곳에서 ‘팀킬 하기도 한다. 나의 가장  아픔에 칼을 쑤신 말도, 나와 같은 신을 믿는 사람에게서 들었다. 나의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우울증을 알게  이가, 나를 공격하기 위해 자신의 신을 언급했던 것이다.

 그런 짓을 ? 크리스천이면 기도원 가서 기도나 .”

그녀는 내가 병원에 다니고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비슷한 류의 말을 계속해서 쏟아냈다.  모든 날카로운 말의 끝맺음은, 너는 ‘그런 니까 깊은 신앙심을 가진 자신이 관대하게 참고 넘어간다는 것이었다. 이미 일전의 일로 너덜너덜해진 마음에 쐐기를 꽂았다. 나는 그녀가 한 모든 말을 모아 <우울증 환자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101가지>라는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1년이 지난 일이라 괜찮을  알았다. 하지만  일을 생각하며 글을 쓰는데 손발이 .)

 잔인한 말과 더불어 나를 찢어놓았던 것은, 그녀의 분노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었다. 명백히 그녀가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와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피해자였고 가해자는 명백한 상황이었다. 이미 오랜 기간 가스라이팅에 지쳐있던 나는 그냥  분노를 받아냈다. 무기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는 당시에 무기력했던 나를 자책했다. 마음의 상처와 스스로에 대한 자책은 몸도 상하게 만들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거나 뛰는 것은 고사하고, 오래 걷지도 못하는 폐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도피했다.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날의 일과  분노를 떠오르게 했다. 그 일이 있은 뒤 두 달쯤 지났을까. 어느 날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국회의사당을 봤는데, 그 순간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공간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는 금세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공간에 억눌렸다. 왈칵 눈물을 쏟으며, 나는 여기서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반구로 갔다. 물리적인 거리를 두자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매일  울다 지쳐 잠들고 불안함에  번을 깨던 내가, 울지 않고 잠들었고 개운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타국에서의 삶이 불안정할 때에도 나는 여전히  먹고  잤고, 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힘들어했다. 여전히 뛰는 것은 힘들지만, 자전거도 타고 오래 걷기도 하고 가벼운 등산도 했다.

그렇게 반년의 도피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나를 도피하게 만들었던 ‘트리거 장소들’도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공간을 무심하게 지나칠  있게 되었다. 아니, 사실 여전히  날이 떠오르지만 무심한  지나갈  있게 되었다. 돌아오고 처음 며칠은 잠드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남반구에서 지내던 때만큼  자고  먹고  지내고 있다.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그녀가 나에게 날 선 말을 내뱉었던 때는 공교롭게도 부활절을 앞둔 주간이었다. 내가 믿는 신의 아들이 가장 힘든 고난을 겪은 주였다. 그는 고통을 받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는데, 나는 그가 살아난 날에도 여전히 죽음을 생각했었다. 부활을 기뻐하며 기도하는 사람들 옆에서, 나는 신에게 나도 당신처럼 그 날에 고통을 받았는데 당신이 부활한 날에 회복해야 하는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문득 생각나 달력을 보니 다가오는 일요일이 부활절이다. 신의 아들이 탄생한  만큼이나 내가 좋아했던, 그가 다시 태어났던 날이 다가온다. 당신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데, 작년 이맘때 죽었던  자아는 아주 천천히 살아나 올해 당신이 다시 살아난 날이 되어서도 아직  회복하지 했다. 그리고 회복하지 못한 마음을 가진 채, 작년 그날, 내가 죽었던 날을 생각하고 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그녀가 분노의 타깃으로 나를 잡은 것은 그녀 자신이  상처 받기 위한 방안이 아니었나 싶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친근하던 이에게 분노를 고스란히 전가 하기에는 자신마저 부정당하는 기분이었을 테다. 모종의 잘못이 내게 있다고 생각하며 밀려오는 배신감을 조금씩 줄였을 것이다. 그리고  줄어든 배신감은 그대로 나를 향한 분노가 되었고.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의 날 선 말도 이해가 간다. 당시 우리 모두는 연약했고 동시에 우리 모두가 각자의 아픔을 조금씩 전가하고 부담해줬던 것이다.  역시 오랜 시간 가해자보다 그녀의 날 선 말을  미워하고 증오하며 가해자의 배신으로 인한 상처에 위안을 주었으니까.

신의 사흘과 인간의 사흘은 다른 걸까. 나는 아직 부활할  있는 사흘에 도달하지 못해 이렇게  해가 지나 조금 회복하게  걸까. 아니, 나는 신이 아니기에 영원히 다시 살아있는 상태로 돌아가지는 못하는 걸까.

신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이는 곳을 싫어하는 나이지만, 여전히 나의 신을 사랑한다. 나는 차마 그의 성서를 이용해 누군가를 정죄할 배짱은 없어서, 그냥 나에게 퍼부어주는 그의 사랑 고백만 듣는다. 이해할  없는 신이지만, 이렇게까지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존재라면,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천천히 내가 죽은  날에서 나를 건져주리라 믿는다. 올해의 부활절이 오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남반구의 작은 헬조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