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들은 명함이 없다.
예술인들은 명함이 없다. 대신 무형을 노래함으로써 사람들 마음속에 각기 다른 모양의 명함을 꽂아주는 것이다. 좋은 감정을 가질지 나쁜 감정을 가질지는 그들의 몫이다. 이 책은 백승진 작가의 명함과도 같다. 책을 덮은 이후 내가 받은 명함은 기대감이라는 감정과 이토록 솔직하게 풀어냈다는 것에 대한 존경심, 또한 글과 시를 대하는 마음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좋은 책은 사람 하나를 살린다. 아니 여럿도 살린다. 잠재된 내면을 깨우고 사람을 다시 살게 하는 힘이라고 말할까.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그렇지는 않다. 경험은 실로 중요하다. 경험을 해본 자만이 다른 누구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중 더욱 뼈저리게 느낀 사람들, 고된 삶과 거친 피부로 느낀 사람들이 예술의 중요성과 고마움을 알기에, 주최가 되어 문학을 잇고자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담겼고 나는 그것이 너무나 뚜렷하게 보였다.
블로그 습작을 하던 당시 마음에 꽂히는 글을 발견한 적 있다. 문화예술이 그저 사람들에게 취미로 불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글, ‘문화생활’이라는 말이 싫다는 글. 2년이 넘은 지금도 여직 그 글과 작가의 이름을 잊지 못한다. 이미 예술과 삶은 한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시인이자 작가는 말한다. 추상적인 예술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위대하기에 그것을 담아낸 예술이 위대한 거라고, 이것이 진리를 꿰뚫고 있는 게 아니면 무엇인가. 데미안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반갑겠다. 내가 그랬으니. 학생 때 우연히 카네기를 읽고 책의 세계에 입문한 나는 별로 없는 용돈을 모아 꾸준히 책을 샀고 그렇게 나의 알을 조금씩 깨트려갔다. 만약 지금 당신이, 지나가는 동네 아이의 웃는 소리가 거슬린다면, 너무나 듣기 싫어 앞니가 전부 부러질 때까지 아이를 때리고 싶다면. 이미 빠르게 달리고 있는데도 어딘가 마음 둘 곳 없이 허전하다면 이 책을 살포시 손에 쥐어주고 싶다. 자신만의 걸음 속도를 체감해보라고. 어떤 미디어들보다 ‘사유’가 재미있다는 걸 느껴보라고 말이다. 시를 좋아한다면 백승진 시인의 <어머니>, <어느 중국집>이라는 시도 읽어보길 추천한다. 책과 내용이 연결되어있어, 그의 시를 이해하는 데에 더욱 도움이 될 거라 확신한다. 이미 시의 존재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본 나로선 무엇을 먼저 보든 순서가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나 역시 모두의 머뭇거림을 응원하며, 오늘은 시원한 숲으로 산책을 가보고자 한다. 걸음걸이가 아닌 걸음거리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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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문단이자 시인으로서
책을 선물받고 서평을 남깁니다.